e스포츠, 게임 아닌 산업
아직도 컴퓨터 게임을 청소년과 일부 마니아의 비생산적 취미로 여기는가? 오늘날 e스포츠의 달라진 위상을 소개한다.

1 e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 관중. 2 리그 오브 레전드의 대표 캐릭터 카타리나. 3 세계 1위 팀을 가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전경.
지난 5월, 한국e스포츠협회는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의 e스포츠 시범 종목에 출전하는 국가 대표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총 6개 종목에 선수 16명이 출전하는데, 그중엔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이상혁, RTS(Real-Time Strategy) 게임 스타크래프트2의 조성주 등 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프로 게이머도 있었다. 8월에 시작하는 아시안게임까지 시간이 꽤 남았지만, 호사가들은 이미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한국인이 게임을 잘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그간 수많은 e스포츠 대회에서 우승을 밥 먹듯 해왔기 때문이다.
이 소식에 놀란 사람이 꽤 많다.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컴퓨터 게임이 아시안게임 종목이라고? 시범 종목이라도 그렇지, 말이 돼?”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e스포츠는 이미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확정됐다. 2024년 파리 올림픽조직위원회가 국제e스포츠연맹과 함께 e스포츠의 종목 채택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2000년대 초반 e스포츠가 태동하던 시절, 과연 몇이나 이런 상황을 상상했을까?
e스포츠가 짧은 기간에 그 위상을 달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규모가 커졌기 때문. 게임과 e스포츠 리서치 사이트 뉴쥬에 따르면, 올해 e스포츠 시장의 규모는 작년보다 약 38% 성장한 9억600만 달러(약 1조 원) 정도다. 이들은 2020년이면 그 규모가 14억 달러(약 1조5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이 정도로는 수십조 원의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축구나 야구 등 메이저 스포츠에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선 이미 이들의 아성을 뛰어넘었다. 예컨대 작년 11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 ‘LoL 2017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의 시청자는 5760만 명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7차전을 시청한 4000만 명을 가뿐히 뛰어넘은 수치다. 또 스포츠 마케팅 전문 기업 스포츠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인기 e스포츠 게임단 SKT T1의 가치는 약 500억 원이다. e스포츠 산업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700억~800억 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국내 프로야구의 구단 가치와 맞먹는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선수 연봉. 스타 프로 게이머 이상혁 선수의 연봉은 30억 원으로 국내 프로야구 연봉왕 이대호 선수가 받는 25억 원보다 많다.

4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오버워치 플레이 모습. 5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 스타크래프트2 플레이 모습. 6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트로피.
e스포츠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는 시청자 수의 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재 e스포츠의 글로벌 시청자 수는 3억8000만명으로, 2021년엔 5억5000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엔 시청 방식의 변화가 한몫했다. 최근 몇 년간 트위치, 후야TV 등 e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대중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게임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게 된것. 쉽게 말해 e스포츠 대회를 보기 위해 예전처럼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기존 e스포츠 시장에서 미미한 수준이던 광고와 마케팅이 주요 수익 모델로 떠올랐고, 이는 자연스레 기업의 투자로 이어졌다. 여러 종류의 투자 방식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게임단 창단이다. KT와 한화 등 이미 많은 기업이 e스포츠 게임단을 운영 중인데, 그 이유는 ‘가성비’가 뛰어나서다. e스포츠 게임단은 선수단 규모가 10명 내외고 별도의 대규모 시설이나 전지훈련이 필요 없어 큰돈이 들지 않는다. 반면 잘만 운영하면 그 효과가 엄청나다. 예컨대 SK텔레콤은 앞서 소개한 e스포츠 명문구단 SKT T1을 통해 한 해 250억 원의 브랜드 광고 효과를 보고 있다. 이 정도면 꽤 수지 맞는 장사 아닌가? 해외에서도 연이어 e스포츠 게임단 창단 소식이 들려오는데, 특히 개인의 적극적 투자가 인상적이다. 대표적으로 LA 레이커스 출신의 전 농구 선수 릭 폭스(Rick Fox)는 2015년 자신의 이름을 딴 e스포츠 게임단 에코 폭스(Echo Fox)를 만들었고, 중화권 톱스타 저우제룬도 2016년 타이베이 어새신스를 인수, J Team으로 이름을 변경해 운영 중이다.
몇몇 기업은 아예 e스포츠 대회를 직접 개최한다. CPU 제조사 인텔은 IEM(Intel Extreme Masters)을 13년째 후원 중이다. 전 세계 최장수 e스포츠 투어 기록을 세운 권위 있는 대회로, 올해 초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스타크래프트2 종목으로 IEM 평창 대회가 열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스포츠 대회 개최 이유에 대해 인텔 측은 “게임에 필요한 최신 기술을 개발하는 우리가 e스포츠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이를 통해 기존 시장을 공고히 하면서 미래 시장을 개척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블리자드, 라이엇게임즈 등 유명 게임 제작사는 자사의 게임으로 e스포츠 대회를 직접 운영, 게임 홍보와 유저 확산에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e스포츠에 대한 중국 기업의 막대한 투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에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e스포츠의 시장 확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총 1000억 위안(약 16조80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으로 대회 유치를 위한 경기장 건설, 협회 창단 및 유지비 지원, 예비 선수 육성, 테마파크 건설이 포함된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e스포츠가 진정한 스포츠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자회사 알리 스포츠를 통해 총상금 550만 달러(약 59억 원)의 국제 e스포츠 대회 WESG(World Electronic Sports Games) 2016을 개최했고, 지난해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주도했다. 최종 목표는 2028년 LA 올림픽에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행보는 모두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쯤 되면 e스포츠를 어린애 장난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e스포츠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터. 하지만 아직 이 땅에선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등 관련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장애물은 결국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늘날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게임과 e스포츠, 이제 우리도 색안경을 벗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제공 라이엇게임즈, 블리자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