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Taste
완연한 봄은 항상 창밖에 있다.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마감 사무실 창밖을 오가는 이들의 화사한 차림. 이 봄엔 비일상적 공간과 생활을 꿈꾼다. 여행을 앞둔 달뜬 마음으로 편집부가 남긴 봄날의 끄적거림.

플라스크에 대한 단상
영화 속 인물들은 플라스크를 사용한다. 군복이나 케이프 포켓에서 꺼내 술을 마신다. 폭격이 쏟아지는 참호 속이나 집필 작업이 한창인 서재에서, 파리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테라스에서 우아하게 마개를 열고 목을 적신다. 위스키나 보드카, 브랜디, 와인 등 어떤 술이건 플라스크에 담아 마시면 기가 막힌 맛으로 바뀌는 듯 달게 마신다. 그 맛이 궁금했다. 우아하게 주머니에서 꺼낸 뒤 빙그르르 마개를 열고 술을 마시는 맛.
20세기 초반 미국엔 야만과 낭만이 공존했다. 록펠러와 포드, 채플린이라는 영웅이 세상을 변화시켰고 한편으론 마피아가 도시의 밤을 점령했다. 무성영화와 빅밴드, 사교 클럽과 라디오방송까지 현대 문화의 모든 것이 그때 태동했다. 플라스크는 우아하고 피비린내 나는 시대가 남긴 유물이다. ‘힙 플라스크(hip flask)’는 아이러니하게도 금주법 시대에 탄생했다. 바와 레스토랑은 물론, 경마장이나 클럽까지 단속이 심해지자 몰래 술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 마피아가 고안했다. 납작하고 굴곡져 재킷 주머니에 넣으면 감쪽같다. 밀주를 제조해 돈을 벌던 그들의 사업을 지키기 위해 고안한 꼼수였던 셈이다. 처음 플라스크를 사용하는 사람을 본 건 6년 전쯤 LA에서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찾은 호텔 근처 베니스 해변에서 헤밍웨이 풍으로 생긴 중년의 백인이 백사장에 앉아 가끔씩 플라스크를 입으로 가져가는 걸 봤다. 그러곤 귀국 전날 LA 상점을 돌다 지포(Zippo) 매장에서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플라스크를 샀다.이후 4~5개의 플라스크를 샀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캐주얼 스타일부터 도쿄 오모테산도 생 로랑 매장에서 산 가죽을 덧댄 플라스크, 파리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용기까지 몇 개를 모아놓곤 선물로 주거나 캐리어에 담아뒀다. 플라스크는 사실 쓰임새가 그리 좋지는 않다. 20세기 초반이라 몰라도 근래엔 주류도 다양한 사이즈의 용기로 출시된다. 굳이 좁은 입구로 위스키를 흘려 담고 번거로운 세척까지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쯤 번듯한 플라스크를 갖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어떤 공간에 도달했을 때 자신을 위한 보상으로 우아하게 플라스크를 꺼내 빙그르르 마개를 돌려 열고 한 모금 마시고 싶다.에디터 조재국

현지적 시선
선배는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포틀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에도 기타를 치고 서울 곳곳을 달리던 그녀는 포틀랜드에서도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길을 가는 데 주저함이 없던 그 모습 그대로! 가끔씩 프리랜스 에디터로서 포틀랜드라는 미지의 도시에 대한 소식을 전하던 선배는 3년 차 포틀랜더가 되었고, 10년의 피처 에디터 경력과 포틀랜드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최근 < Very Portland >라는 책을 엮었다. 누구보다 맛있는 술과 음식을 많이 접하고 좋은 곳을 누빈 사람이지만, 지금도 이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녀의 생생한 경험과 취재가 온전히 녹아들었다. 책에 담긴 숍과 서점, 카페, 레스토랑, 와이너리, 숙소, 공원은 이웃과의 대화, 친구들과의 일상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기록해둔 스크랩북을 들춰보는 느낌을 준다. 포틀랜드를 알지 못하는 사람, 알고 있는 사람, 알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다. 단정하게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내린 소녀의 뒷모습과 상냥하고 경쾌한 오렌지 컬러가 어우러진 표지를 뒤로하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자 푸릇푸릇한 마음이 차오른다. 도심부터 숲이 있는 자연까지 푸른 나무가 가득한 포틀랜드의 모습을 마주하니 자연히 이 책 한 권과 함께 이 도시로 떠나는 여름휴가를 그리게 된다. 에디터 정유민

해변에서
입지도 않을 옷을 사곤 한다. 그중 하나가 하와이안 셔츠다. 언젠가 떠날 휴가를 위해서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만 막상 휴가지에서도 한 번도 입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유는 차치하고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위시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이 셔츠다. 지난 3월, ‘해변에서(by the seaside, 부제: 사계절을 만난 어느 하루)’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버버리의 서머 컬렉션 중 하나로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사진은 컬렉션 이름 그대로 영국의 한 ‘해변에서’ 보낸 세 청춘의 하루를 담아낸 룩북 중 한 컷이다. ‘살다 살다 내가 이제 이런 꽃무늬 옷을 탐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셔츠의 매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으뜸은 언뜻 보면 그냥 꽃무늬 셔츠지만 기본 골격은 하와이안 셔츠라는 점이다. 밑단을 일자로 처리한 디자인으로 본디 바지 밖으로 내어 입는 옷이기 때문에 밑단을 바지 안에 넣을까 뺄까 고민할 필요가 없고, 반소매인 덕에 소매를 몇 번이나, 얼마나 접어 올릴지 고민할 일도 없다는 말이다. 거기에 낙낙한 피트와 오픈칼라가 주는 여유로움, 그리고 가끔 손이나 집어넣을 양쪽 포켓이 주는 귀여움까지 겸비했으며, 밝은 기운을 담은 소박한 데이지 프린트는 하와이안 셔츠를 정의할 때 늘 등장하는 ‘화려하고 대담한’ 프린트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 셔츠를 어떻게 입을 거냐 묻는다면 장담컨대 10분 내내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옷을 샀느냐고? 비밀이다. 에디터 정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