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mgreen& Dragset 엘름그렌 & 드락세트
만약 동시대 미술을 위한 성대한 시상식이 열린다면, 코미디와 드라마 부문의 주인공은 엘름그렌 & 드락세트가 차지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듀오로 활동한 그들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미국 텍사스 사막의 프라다 매장, 땅에 파묻힌 트레일러,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상의 컬렉터, 트래펄가 광장에 느닷없이 등장한 목마 탄 소년, 인어 왕자 등 그들의 작품은 이미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오는 7월 플라토에서 그들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린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삶의 페이소스를 진하게 담아낸 그들의 작품을 먼저 만나보자.
2015년 4월 16일~5월 23일까지 갤러리 페로탱 뉴욕에서 열린 < Past Tomorrow >전 전경. 노먼 스완이라는 가상 인물의 침실을 연출했다. / Photo by Guillaume Ziccarelli. Courtesy of the Artists and Galerie Perrotin

뉴욕 전시장에서 만난 덴마크 출신의 미샤엘 엘름그렌(왼쪽)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아르 드락세트(오른쪽) / Photo by Guillaume Ziccarelli. Courtesy of the Artists and Galerie Perrotin
지난봄에 갤러리 페로탱 뉴욕에서 개인전 < Past Tomorrow >가 열렸죠. 이 전시는 당신들의 최근 작업 경향을 압축하고 있어요. 전시장을 특수한 환경으로 개조하고, 그 안에 많은 내러티브를 담았죠. 문화적·사회적· 정치적·시각적 상징 요소도 복잡하게 얽혀 있고요. 작가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 Past Tomorrow >전은 2013년 빅토리아 & 앨버트(V&A) 뮤지엄에서 열린 < Tomorrow >전의 연속선상에 있어요. 우리는 < Tomorrow >전을 위해 원대한 이상을 품었지만 정작 이룬 것은 없는 노먼 스완이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었죠. 그는 거주민의 삶을 향상시킬 공공자원주택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가상 디자인으로 여러 경합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시간제 강사에 그치고 말죠. 우리는 V&A 뮤지엄의 갤러리 다섯 곳을 부유한 가족이 살 법한 호화 아파트로 개조하고 거실, 침실, 주방, 서재를 만들었어요. 그 방에 뮤지엄 소장품, 우리 작품, 골동품, 기성품 등을 선택해 채워 넣었어요. 관람객이 그곳에 놓인 물건을 보면서 노먼의 삶과 성격, 이야기 등을 직접 느낄 수 있게요.
무대 연출자나 큐레이터, 영화감독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이네요.
맞아요. 우리는 루키노 비스콘티와 잉마르 베리만 같은 영화감독에게 영향을 받아 영화 세트와 같은 환경을 만들었어요. 극 중 인물이 실제로 그곳에 있지 않아도 그 캐릭터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전시에 온 관람객이 가져갈 수 있는 영화 대본도 직접 썼습니다. 관람객은 전시와 대본을 보면서 노먼이 집안의 재산을 점차 탕진하고 결국 파산해 런던에 있는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을 하나 둘 알게 되죠. < Past Tomorrow >전은 그가 1980년대에 살던 뉴욕에 다시 돌아가기로 한 시점과 이어집니다.
이 전시는 노먼이 뉴욕에 돌아온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췄고, 당시 그의 침실만 설치했죠. 관람객은 그의 책장, 사진첩, 벽에 걸린 그림 등을 보면서 그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플라토에서 첫 한국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로댕의 드라마틱한 근대 조각과 대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유리 파빌리온과 강렬한 햇빛, 작품이 작아 보이는 높은 천장 등 여러 가지 방해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당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기엔 최적의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플라토는 지금까지 우리 작품을 선보인 다른 기관의 공간과는 현격히 달라요. 그곳의 독특한 공간에서 굉장한 영감을 받았어요. 우리는 보통 처음 공간을 방문하고 전시에 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거든요. 천장부터 바닥까지 유리로 된 플라토에서 공항 터미널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중앙 전시실을 ‘Aéroport Mille Plateaux’라는 이름의 공항으로 바꿀 겁니다. 제목은 미술관 이름과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가 쓴 < 천 개의 고원 >을 뒤섞었어요. 전체 공항은 들뢰즈의 철학을 반영하고, ‘무장소(無場所, non-place)’인 실제 공항의 이상한 점을 드러내는 설치가 합쳐질 거예요. 보안 검색대, 체크인 카운터, 광고판, 수하물 포장 기계, VIP 라운지 등 공항에 있는 모든 요소를 만들었어요. 어느 특정 국가를 떠올리지 않으면서, 지정학적 위치에 상관없이 해외여행을 할 때의 표준화된 경험을 구현하도록 모든 요소를 디자인했죠.
1995년부터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해왔습니다. 저는 둘의 만남을 ‘시’와 ‘연극’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작가가 되기 전 엘름그렌은 시를, 드락세트는 연극과 연기를 공부했다.) 연인에서 친구로, 동료로 오랜 세월 함께해온 당신들의 관계 변화가 작품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작품 제작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요. 잉아르는 이걸 하고, 미샤엘은 이걸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이 고정돼 있지 않아서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네요. 대신 둘이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발전시켜요. 각자 베를린과 런던에 있어서 끊임없이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 통화나 스카이프로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해요. 물론 직접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같이 자주 여행을 다니고요. 두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합치는 게 가장 어렵지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건 큰 기쁨이죠.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압박감을 견디는 데도 둘이라는 점이 도움이 됩니다.
2003년 니콜라 트루사르디 재단이 지원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선보인 ‘Short Cut’. 땅을 파서 트레일러를 박아놓았다. / Photo by Jens Ziehe. Courtesy of the Artists and Galleria Massimo De Carlo

Powerless Structures, Fig. 101, 브론즈 캐스트, 411×174×442cm, 2012 런던 시와 영국예술위원회가 함께 진행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 ‘네 번째 좌대(The Fourth Plinth)’ 프로그램에 선정돼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설치한 작품이다. / Photo by James O Jenkins. Courtesy of the Artists

2013년 V&A 뮤지엄에서 열린 < Tomorrow >전 전경. < Past Tomorrow >전에 등장한 노먼 스완의 이전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전시 공간을 호화 아파트로 개조했다. / Photo by Anders Sune Berg. Courtesy of the Artists
미셸 푸코의 저작에서 영향을 받은 연작 ‘Powerless Structures’는 미술에 관한 미술 작품처럼 보여요. 흰 페인트 200리터를 12시간 동안 전시장에 칠한 초기작은 미니멀리즘 혹은 잭슨 폴록이나 리처드 세라 같은 대단히 남성적인 작가의 제스처에 대한 성적 농담 같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두 사람이 미술을 공부하면서 혹은 미술계의 일원으로 점차 적응하는 과정에서 ‘화이트 큐브’에 관해 던지는 초현실적 유머 같다고 할까요. ‘temporary art museum’ 같은 단어의 직접적 등장이나 미술관 가드를 활용한 작품에서는 동시대 미술의 시스템에 관한 비판적 메시지도 읽힙니다.
미술사나 제도 비평을 어떻게 우리의 작업에 통합했는지 살피기 좋은 작품들을 언급했네요. 확립된 요소들을 새로운 맥락에 두어 연계성을 유지하고, 동시대적 담론으로 끌어들이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식이 아니라 이런 식인가?’ 작품을 다른 맥락에 위치시킴으로써 역사 전반과 미술사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작품 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업은 무엇인가요? 과거 작품을 다시 살펴보니까 2003년의 ‘Paris Diaries’가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이 작품은 이후 작업에 주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작가의 ‘게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발언이나 관람객까지 작품의 일부로 전환하는 퍼포먼스적 성격, 전시장에 연극 무대나 리얼리티쇼 같은 ‘인공적 리얼리티’를 조성하는 것을 봤을 때 말이죠.
‘Paris Diaries’는 2003년 갤러리 페로탱 파리에서 선보였어요. 5명의 청년이 전시 기간에 일기를 쓰죠. 관람객은 갤러리에서 이들이 일기를 쓰거나 휴식을 취하러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정체성 이슈나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수행적 측면 같은 모티브를 잘 지적했네요. 활동 초기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는 미술계나 그 시스템을 주로 다뤘죠. 중요한 전환점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 The Collectors >전 이었습니다. 그 이전 작품처럼 미술계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견지하지만, 처음으로 관람객이 실재하지 않는 인물을 알아가는 가정 환경을 만들었죠. 동시에 관람객을 허구 속 주인공의 집에 초대된 손님으로 만듦으로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흐렸어요. < The Collectors >전 이후 ZKM 카를스루헤에서 대규모 아파트 블록을 만들어 이 주제를 이어갔습니다. 로테르담의 서브마린 워프와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에서는 밤의 도시 환경을 디스토피아적으로 다뤘죠. V&A 뮤지엄의 < Tomorrow >와 < Past Tomorrow >전도 화이트 큐브에서 집으로의 전환을 알렸다고 할 수 있어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덴마크와 노르딕 파빌리온에서 선보인 < The Collectors >전 전경 / Photo by Anders Sune Berg. Courtesy of the Artists

2014년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에서 열린 < Biography >전 전경 / Courtesy of the Artists

2014년 오슬로의 아스트루프 페아른레위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 Biography > 전경 / Courtesy of the Artists

2003년 갤러리 페로탱 파리에서 열린 < Paris Diaries >전 전경 / Photo by Andre Morin. Courtesy of the Artists and Galerie Perrotin

Powerless Structures, Fig. 187, 혼합 재료, 80×140×150cm, 2002 / Photo by Jens Ziehe. Courtesy of the Artists and Galerie Perrotin

2002년 바르셀로나 푼다시오 라 카익사에서 열린 < Museum >전에 출품한 ‘Museum/Powerless Structures, Fig. 345’ / Courtesy of the Artists and Galerie Perrotin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당신들이 기획한 덴마크와 노르딕 전시는 정말 최고의 화제였죠. < The Collectors >에 등장한 요소나 작업 방법론이 시리즈 영화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어느 순간 당신들의 전체 작업이 누군가의 거대한 ‘컬렉팅’처럼 보이겠다는 이상한 상상도 했습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요. 잘 차린 세트와 영화에 자주 나오는 가구에서 영감을 받곤 하죠. 최근엔 19세기 화가 빌헬름 함메르스이가 영감의 원천입니다. 덴마크 작가로 스스로 설명하는 텅 빈 방을 주로 그렸어요. 우리는 사물·디자인· 가구 등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이미지 혹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지, 어떻게 다른 방향을 향하는지에 관심이 가요. 우리의 모든 작품을 누군가의 거대한 ‘컬렉션’으로 보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멋진 발상이네요. 다만 그 모든 걸 한자리에 모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이디어가 있나요?
고민해볼게요. 섹시하면서 유머러스하고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에는 파괴와 죽음의 충동 같은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요. 관처럼 땅에 묻혀 있거나 파괴된 공간, 병원과 시체 보관실을 떠올리게 하는 왁스 더미가 있습니다. 성, 관습, 계급, 부와 권력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가 작품 속 공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상상의 존재로 나타나죠.
파괴와 죽음을 향한 충동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언급하셨는데, 우리 작품은 대부분 유머러스한 것으로 분류되죠. 실패나 패배처럼 사람들이 얘기하길 꺼리는 삶의 어두운 부분도 인간의 경험 중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덜 화려한 순간을 설명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관람객이 한 측면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사실 그 반대죠. 관람객이 우리 작품을 볼 때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들에게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부분은 영향을 미치겠죠. 우리 전시에 오기 전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들의 작품은 늘 어떤 시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미래’에 해보고 싶은 상상의 작업 이미지나 상황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우리의 ‘미래’ 작업에 대해 지금 얘기하는 건 어렵겠네요. 지금까지 우리는 다음 단계를 예측하거나 계획을 세워 작업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때그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죠. 하지만 지난 20년간 우리의 작품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술 기관이나 화이트 큐브에 관한 작업을 많이 한 2000년대에, 당신이 우리가 미술관을 개인의 집으로 전환한 전시를 선보였다고 말했으면 놀랐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작업이 변화를 거듭하고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 알 수 없다는 점 자체가 더 자극이 되고 신이 나죠. 우리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갈지는 기다려봐야겠죠. 10년 후쯤 다시 확인해봐주세요.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갤러리 페로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