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Burgundy
요즘 아시아의 많은 와인 애호가가 부르고뉴산 와인에 주목하고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피노 누아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난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게 하기 때문. 양질의 포도밭 몇 곳과 몇몇 생산자의 이름을 기억하면 당신도 성공적으로 부르고뉴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본 로마네 마을의 그랑 크뤼 빈야드. 십자가 뒤쪽이 로마네 콩티 포도밭이다.
최근 홍콩에서 열린 와인 경매 결과를 살펴보니 부르고뉴 와인이 아시아 와인 컬렉터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각종 경매 기록을 갈아치우고 최고가를 경신한 와인은 보르도가 아닌 부르고뉴산이었으며, 로마네 콩티가 가장 많이 찾는 부르고뉴 와인 브랜드가 되었다. 몇몇 브랜드가 그 뒤를 쫓고 있지만 아직 로마네 콩티의 가격과 명성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로마네 콩티의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인 르루아 여사가 이끄는 도멘 르루아(Domaine Leroy)도 품질 면에서 월등하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뒤자크(Dujac), 아르망 루소(Armand Rousseau), 콩트 조르주 드 보귀에(Comte Georges de Vogue), 메오 카뮈제(Meo-Camuzet), 프레드리크 뮈니에(Frederic Mugnier), 퐁소(Ponsot), 크리스토프 루미에르(Christophe Roumier) 같은 일부 생산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지난 25년간의 기후변화는 부르고뉴 와인 생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예전에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대륙성기후로 인해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을 숙성시키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1988년 이후 흉작의 빈도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1990년, 1993년, 1999년, 2002년, 2005년, 2009년에는 최상급 빈티지가 생산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남호주 지역과 캘리포니아 연안, 오리곤, 뉴질랜드 등지에서 부르고뉴 와인의 벤치마킹을 시도했지만 아직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르고뉴 와인은 시원한 기후, 쥐라기 시대의 석회암과 점토, 수 세대에 걸쳐 축적해온 까다로운 피노 누아를 다루는 기술 등이 융합된 고유의 산물이다.
수확을 앞둔 잘 익은 피노 누아
부르고뉴의 주요 와인 생산지로는 샤블리(Chablis), 코트 도르(Cote d’Or), 코트 샬로네즈(Cote Chalonnaise), 마코네(Maconnais)가 꼽힌다. 특히 황금빛 언덕이라 불리는 코트 도르에 최상급 도멘과 그랑 크뤼 포도밭이 대거 포진해 있다. 부르고뉴 지방에는 현재 600여 개의 프리미에르 크뤼와 33개의 그랑 크뤼가 있으며 여기에 수많은 개인 와인 생산자와 도멘, 네고시앙이 가세해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게 전개된다. 부르고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상급 포도밭과 마을의 스타일을 먼저 파악한 후 개별 생산자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부르고뉴 와인을 접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뫼르소, 제브리 샹베르탱, 샹볼 뮈지니, 포마르 같은 마을 단위 재배지가 약 33%를 차지한다. 프리미에르 크뤼는 부르고뉴 와인 총생산량의 10% 정도이며, 피라미드의 맨 위에 있는 그랑 크뤼는 1%에 불과하다. 몽라셰, 샹베르탱, 코르통, 클로 드 부조, 뮈지니 등이 가장 희귀하고 훌륭한 와인에 속한다. 등급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진정한 와인 애호가라면 포도밭 등급보다 생산자를 더 중시한다. 코트 도르 지역에서 가장 큰 그랑 크뤼 포도밭인 코르동의 경우 다수의 생산자가 서로 다른 기법과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또 다른 그랑 크뤼 포도밭인 클로 드 부조는 50헥타르를 82명의 재배자가 나눠서 소유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와인 역시 같은 밭에서 나지만 결과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도멘 르플레브나 도멘 르루아 같은 최상급 와인 생산자가 만든 저가 와인이 일부 프리미에르 크뤼 와인보다 좋을 때도 있다.
사실 부르고뉴 와인의 인기가 근래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도 번역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덕에 2000년대 중반 서울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 부르고뉴 와인 열풍이 한 차례 분 적이 있다. 만화책에서 부르고뉴 와인은 최상의 와인으로 손꼽힌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멋진 이미지로 소개하고 있다. 만화를 통해 부르고뉴 와인이 인식되었고, 고인이 된 앙리 자예(Henry Jayer) 같은 양조자를 신격화하기도 했다. 봄꽃이 만발한 가운데 한 아름다운 여성이 뮈지니 와인을 소개하는 장면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훌륭한 와인을 음미할 때 느끼는 경험을 연상시킨다. 현재 홍콩과 중국의 부르고뉴 와인 시장이 성장한 연유는 보르도에 대한 소비자의 실망(품질 대비 너무 높아진 가격), 부르고뉴 와인 수입량 증가, 잘 숙성된 부르고뉴 와인이 경매에 등장한 데에서 기인한다. 한국에서도 2008년과 2009년 불황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들이 도쿄와 상하이, 홍콩, 서울 등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수확량이 많지 않아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 우려된다. 지난 3년 동안 부르고뉴 와인 생산량은 그전에 2년 정도 생산한 양에 불과하다. 따라서 최상급 부르고뉴 와인의 경우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부르고뉴 와인 애호가라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수량을 미리 확보해두는 것이 좋다.
필자는 부르고뉴 와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그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와인이다. 나는 와인 애호가들이 나이가 들고 미각이 성숙해짐에 따라 부르고뉴 와인으로 취향이 옮아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보다 건강하고 가벼운 음식을 찾는다. 이런 음식에는 타닌이 적은 부르고뉴 레드 와인이나 미네랄 풍미를 더한 상큼한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이 안성맞춤이다. 개인적으로 내 미각과 마음을 사로잡은 와인이 있지만 부르고뉴 와인은 감성적으로 다가와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1 도멘 퐁소 샹베르탱 클로 드 베즈 그랑 크뤼 2 도멘 메오 카뮈제 본 로마네 프리미에르 크뤼 크로 파랑토
Top Burgundy Wine
지니 조 리가 추천한 부르고뉴 와인 리스트. 테이스팅 노트와 함께 그녀가 매긴 평점을 참고할 것.
2002 Georges Roumier_Chambolle-Musigny 1er Cru les Amoureuse 환상적인 아로마를 지닌 아름답고 우아한 와인이다. 와인 자체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복잡미묘한 꽃향기와 함께 말린 잎, 포푸리 등 가을을 연상시키는 향취도 느낄 수 있다. 맛도 부드럽고 섬세하며 여운이 길다. 아직 어린 와인임에도 표현력이 강렬해 인상적이다. 97점.
1990 Dujac_Echezeaux Grand Cru 장미와 말린 제비꽃, 재스민의 향기가 더없이 매혹적이며 견고한 산미와 더불어 부드러운 타닌이 입안을 감싼다. 지금 즐기기에 좋고, 앞으로 더 숙성시켜도 될 만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와인이다. 96점.
2010 Ponsot_Chambertin-Clos de Beze Grand Cru 섬세한 꽃향기와 잘 익은 베리 향, 혀끝에 와 닿는 알싸한 향신료 향도 기분이 좋다. 무게감과 집중도 면에서도 우수하다. 95점.
2011 Denis Bachelet_Charmes-Chambertin Grand Cru Vieilles Vignes 아주 진한 색 와인. 꽃향기가 지배적이지만 향신료와 체리 같은 검은 과일의 뉘앙스도 느낄 수 있다. 피니시가 강렬하지만 아직은 다소 떫게 느껴진다. 앞으로 4~6년 후, 2017년부터 2027년까지가 최적의 시음 시기가 아닐는지. 94점.
2010 Meo-Camuzet_Vosne-Romanee 1er Cru Cros Parantoux 향신료와 허브의 향긋함이 매력적인 와인이다. 타임, 라벤더, 인동초 등의 향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한 모금 마시면 겹겹이 맛의 층이 펼쳐지는 것도 흥미롭다. 벨벳 같은 타닌이 부드럽게 혀를 자극하며 오랫동안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95점.
2011 Vougeraie_Nuits-Saint-Georges 1er Cru les Damodes 코끝에 와 닿는 장미 꽃잎과 재스민, 제비꽃의 향취 등 봄꽃 부케의 아로마가 가득하다. 이어 시나몬 같은 달콤한 향신료와 흙냄새, 삼나무 향이 차례로 퍼져나온다.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여운이 강렬한 와인. 오크통 3개 분량만 만들었다니 희소성 면에서도 점수를 주고 싶다. 시음 시기는 2019~2027년을 예상한다. 94점.
Jeannie Cho Lee MW
아시아인 최초의 와인 마스터로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평론가, 교육자. 영국판 <디캔터>의 컨트리뷰팅 에디터이며 싱가포르 항공의 와인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니 조 리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그녀의 웹사이트 www.AsianPalate.com을 방문해볼 것.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글 지니 조 리(Jeannie Cho Lee 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