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 Dior
지난가을부터 디올은 일본에서 대대적인 이벤트를 펼쳤다. 올가을을 위한 프리폴 컬렉션이며 하우스 역사의 핵심만 모아 구성한 전시, 새로운 인테리어 컨셉을 더해 재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전통적 우아함과 여성스러우면서 화려한 미학을 추구하는 메종의 아이디어로 도시 곳곳이 반짝이는 도쿄로 향했다.
디올과 일본. 가끔 디올의 아카이브 북을 보며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이 동양의 문화에 관심이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둘의 관계에 특별한 에피소드가 존재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한데 지난 12월 11일, 디올의 라프 시몬스가 파리가 아닌 도쿄에서 디올의 첫 프리폴 컬렉션을 선보인 날 도쿄에서 만난 디올은 서로의 기억에서 잊지 못할 다양한 추억을 풀어놨다. 무슈 디올이 샘솟는 창작 활동으로 찬사를 받던 20세기 중반부터 영민하고 매력적인 수장 라프 시몬스가 함께하는 지금까지, 그들이 사는 프랑스와 사뭇 다른 아시아의 이국적 정취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들의 컬렉션에 적용하며 소통해온 것! 2014년 가을과 겨울, 그들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써 내려간 디올이 도쿄에서 펼친 총 3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 쇼가 열린 고쿠기칸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 쇼의 피날레 장면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룩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룩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룩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룩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룩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룩
Story 1 / Show
라프 시몬스라는 새로운 수장의 합류로 승승장구 중인 디올이 지난 12월 다가올 가을을 위한 프리폴 컬렉션,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쇼를 공개했다. 한데 그 장소가 파리가 아닌 도쿄다. 쇼장 역시 일본인이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전통 스포츠 스모 경기장인 고쿠기칸(Kokugikan). 최근 많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거대 마켓을 고려해 중국에서 이벤트를 여는 것과 달리 참신한 선택 같았다.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 끝없이 펼쳐진 사각형 모양의 공간에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파이프로 연출한 천장에서 눈송이가 흩날리는 쇼장은 적막했지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을 품게 할 만큼 신비로웠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취재진과 VIP 그리고 셀레브러티 등 게스트들이 너나없이 동영상으로 그 모습을 담아낼 만큼!
“도쿄는 나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장소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옷을 입을 때 발휘하는, 그 놀라운 자유로운 감성! 세상 어디에도 이만한 곳이 없죠. 자유분방한 스타일, 새로운 옷의 형태···. 이곳은 극단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라는 라프 시몬스의 설명과 더불어 선보인 새로운 컬렉션은 매트하면서 샤이니한 질감이 대조를 이루고, 은은하고 남성적인 컬러 팔레트와 리치한 여성이 떠오르는 화려함이 공존했다. 두툼한 울과 워싱 레더, 코팅 코튼 같은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의상 아래 작은 금속 장식을 부착한, 마치 미러볼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언더웨어를 매치했는데 무척 이색적이다. 현실 감각 충만한 실용적인 스타일의 대표 디자이너로 꼽히는 라프 시몬스가 반짝이라니,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물론 내용물이 요란해도 특유의 심플한 실루엣으로 이를 감싸 그만의 정제미가 돋보였지만, 그래도 이는 꽤 놀라운 변화가 아닌가! 디올의 우아함과 클래식의 정수로 꼽히는 바 슈트와 레이디 디올 백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우선 바 슈트는 기존의 여성스러운 요소를 모두 걷어냈다. 유연하게 흐르는 곡선의 구조는 좀 더 각진 형태로 바뀌었고, 왁스 코팅 코튼이나 영국 정통 울 같은 실용적인 패브릭을 사용해 보다 일상적이면서 웨어러블한 형태로 변모했다. 레이디 디올 백 역시 앙증맞은 미니 사이즈에 스터드 혹은 비즈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후 핸들 사이에 와이드한 벨트를 달아 연출한 언밸런스함의 조화가 귀엽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렇듯 흥미로운 변화로 가득한 컬렉션의 이면에 숨은 재미난 사실 하나가 있으니, 이 모든 아이디어가 일본의 전통 회화 양식 우키노에의 바탕인 쾌락을 탐닉하는 도시 분위기를 뜻하는 우키요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다시 말해 거대도시 도쿄가 지닌 양면성, 현실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낮 그리고 환락과 유흥으로 흥청거리는 밤의 모습을 패션을 통해 재현한 것인데, “점점 확장하는 도시가 지닌 화려하고 도시적인 것과 자연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진 것을 상상했어요. 이러한 대조가 아이코닉한 실루엣을 선사하며 미래를 반영하는 착상이 되죠”라는 라프 시몬스의 설명처럼 현시대의 특징을 대변하는 동시에 한발 앞선 스타일을 제시하는 듯했다.
대비되는 특징의 소재를 믹스매치한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액세서리 디테일
대비되는 특징의 소재를 믹스매치한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액세서리 디테일
대비되는 특징의 소재를 믹스매치한 에스프리 디올 도쿄 2015 컬렉션의 액세서리 디테일
<에스프리 디올> 도쿄 전시장
<에스프리 디올> 도쿄 전시장
<에스프리 디올> 도쿄 전시장
“우리 시대 최고로 영민한 이 천재의 마법 같은 이름에는 ‘신(dieu)’과 ‘금(or)’이 모두 들어 있다.” _장 콕토
<에스프리 디올> 도쿄 전시가 열린 긴자 3-5-8 다마야 AS 빌딩
파트리크 드마르슐리에가 촬영한 이미지로 꾸민 전시장
글라스 월 파사드가 환한 빛을 발하는 오모테산도 플래그십 스토어
Story 2 / Exhibition
레이스 베일을 쓴, 모던한 블랙 슈트를 입은 여성이 정면을 응시하는 흑백 포스터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 곳곳을 돌며 전시 중인 <에스프리 디올(The Esprit Dior)> 도쿄 전 포스터다.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올 1월 4일까지 도쿄 긴자 3-5-8 다마야 AS 빌딩에서 전시가 열려 이 사진으로 건물 입구를 가득 메웠다. 그간 <노블레스>를 본 이라면 과거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펼친 전시 소식에 대한 기사를 접했을 터. 에디터 역시 전시 소개를 했을 뿐, 실제 이를 관람한 것은 처음으로 전시장에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기대가 대단했다. 전시명 그대로 디올의 정신을 보여주는 행사는 디올의 특별한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1947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 의상을 선보인 이후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할 때마다 모방 불가능한 실루엣을 제안하는 빼어난 재능, 성대한 무도회를 사랑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을 웃게 하는 법을 안 무슈 디올의 과거 작품부터 현재 라프 시몬스의 손끝에서 태어난 모던한 의상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오트 쿠튀르 하우스를 지향해온 하우스의 드레스, 향수, 액세서리, 역사적 자료,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주제의 전시물은 프랑스의 우아함과 시크함이라는 이중적 매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또 전시물은 무슈 디올이 하우스를 떠난 후 거쳐간 그 어떤 디자이너보다 라프 시몬스와 관련된 것이 많았는데, 이는 과거 무슈 디올이 추구한 디자인 세계와 현재 라프 시몬스의 그것이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포토그래퍼 파트리크 드마르슐리에가 포착한 이미지와 그간 하우스와 협업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풍성한 볼거리는 비단 유명 패션 디자이너 하우스의 역사를 보는 것을 넘어 20세기 패션사의 한 장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1959년 디올이 디자인한 웨딩 드레스를 입은 미치코 왕세자비의 결혼식
무슈 디올의 고향집 ‘레 럼(Les Rhumbs)’의 벽면에 장식된 일본풍 벽화
Story 3 / Dior X Japan
디올과 일본의 인연은 무슈 디올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대 초반 서구인은 오리엔탈리즘의 유행으로 일본 문화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부유층인 그의 어머니 역시 집 안 곳곳을 일본풍 회화로 꾸몄고, 이는 노르망디 절벽 꼭대기에 사는 어린 소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여성 초상화와 풍경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은 그에게 영원한 그리움이자 원동력이었고, 특히 꽃과 새 등을 수놓거나 그린 기모노는 상상력의 촉매가 되었다. 그 때문에 그는 1952년 도쿄 드레스, 1953년 일본식 정원 드레스, 1954년 우타마로 플리스와 드레스 등을 선보이며 어린 시절 꼭 가보고 싶어 한 나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슈 디올의 뜨거운 사랑은 일본 여성의 지지를 얻었고, 1959년 아키히토 왕세자와 미치코 왕세자비의 결혼식에서 왕세자비가 세속 예식 때 입을 세 벌의 드레스를 모두 디올의 디자인으로 선택하며 일본에서 디올 하우스의 위상은 치솟는다. 이후 존 갈리아노는 2007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오리가미, 기모노,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 잠자리, 벚꽃, 게이샤 등 일본을 상징하는 다양한 요소를 차용했다. 라프 시몬스 역시 2013년 4개 대륙을 주제로 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기모노처럼 겹쳐 입는 울 코트와 일본 전통 홀치기염색 방식인 시보리(shibori) 기법을 이용한 드레스를 선보이며 디올 하우스의 역사, 더 나아가 패션사에 잊히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한편 지난해 10월 30일 디올은 도쿄 오모테산도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재오픈했다. 2003년 처음 문을 열 당시 설계한 글라스 월 파사드는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파리 몽테뉴 가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의 모던한 컨셉에 맞춰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변화를 준 것. 부티크에 어울릴 만한 아트 워크 디자인을 위해 다수의 현대미술가에게 작품을 의뢰, 플로어 중앙에는 테런스 메인의 벤치가 자리하고 꽃을 곁들인 오요람의 비디오 아트 월로 1층 벽면을 장식하는 등 세심하게 꾸민 이곳에서는 여성과 남성 컬렉션 전 라인을 비롯해 재오프닝을 기념하는 리미티드 에디션도 함께 소개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1954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우타마로 드레스
2013년 라프 시몬스가 선보인 오투 쿠튀르 컬렉션
2007년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수줄카-산(Suzurka-San) 코트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제공 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