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 the Artist
자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한국 관람객을 만나는 회화 작가 줄리 커티스.
내년 1월 10일까지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깃털로 만든 여인〉을 앞두고
〈아트나우〉와 작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전시 제목 ‘깃털로 만든 여인(Maid in Feathers)’은 아이를 낳은 후 내적 변화를 상징한다고 했는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처음부터 ‘깃털’을 하나의 콘셉트로 설정해 작업을 진행한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모두 마무리하고 나서야 새, 깃털, 털 같은 소재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죠. 전시를 위해 처음 완성한 작품은 이면화(diptych) 형식의 ‘두 요람(Cradles)’이에요. 한쪽에선 흰 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검은 유모차 안 아기를 보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검은 부리 펠리컨 두 마리가 등장하죠. 저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아이를 낳았어요. 그곳에는 펠리컨이 정말 많아요. 위풍당당한 흰 깃털의 그 새에게 매료되었죠. 엄마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새’가 모성을 가장 잘 상징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둥지에 알을 낳고, 새끼를 보호하는 이미지가 모두 모성과 연결되더라고요. 또 모피코트를 입고 쓰레기봉투를 든 ‘스프링 클리닝(Spring Cleaning)’이라는 작품도 선보이는데, 그 모피코트 역시 마치 깃털처럼 묘사했어요. 이런 디테일이 모여 전시 전체를 대표하기에 적합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전시에는 펠리컨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이 새가 기독교 도상학, 연금술, 융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상징을 어떻게 해석했고, 개인적 경험과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지만, 프랑스의 성당에 가보면 펠리컨을 도상으로 남긴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어미 새가 자기 가슴을 부리로 쪼아 흐르는 피를 새끼에게 먹이는 모습을 담았는데, 가톨릭에서는 이를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성화로 보기도 합니다. 이방적인 동시에 종교적 의미를 함께 지닌 상징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최근 한 작가가 카를 융의 글에서 펠리컨이 ‘변형(transformation)’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펠리컨을 그렸어요. 남편이 “이 새는 원래 모성의 상징이야”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정말 흥미로웠어요. 형태적으로는 백조와 펠리컨이 닮았다고 생각해서 그 둘을 비교해보고 싶어요. 백조가 이상적 여성성을 상징한다면 펠리컨은 그 반대의 이미지를 지닌 것 같습니다. 플로리다에서 펠리컨이 나는 모습을 보면, 로봇처럼 정밀하고 단단한 자세를 취하죠. 여성적이진 않지만 강하고 힘 있는 존재예요. 엄마가 바로 그런 존재 아닐까요? 백조에서 펠리컨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여성적이고 연약한 소녀가 엄마가 되며 강인해지는 전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요. 그래서 원래 노란색인 펠리컨의 부리를 일부러 큰 검은색의 반짝이는 형태로 표현하면서 그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습니다.

오른쪽 Woman with a Whisk, Acrylic and Oil on Canvas, 101.6×83.8cm, 2025. Photo © White Cube (Frankie Tyska). © The Artist.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이들은 익명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인물의 얼굴을 지우거나 단편화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아이디어, 원형, 개념, 관념 같은 것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물을 그릴 때 얼굴 표정을 정교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열린 상태로 두죠. 그편이 저 자신이나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눈, 코, 점 같은 구체적 특징이 있으면 시선이 그 부분에 머무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요소를 의도적으로 지우고, 관람객이 그림을 전체적으로 탐색하며 작품의 의미를 포착할 수 있게 합니다.
작업 대상으로 무엇을 선택하는지 궁금해졌어요. 영감을 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강한 상징성을 지닌 오브제를 주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덜어내기’예요. 덜어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풍성함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Less is more’라는 말처럼 저는 그 원칙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제가 그리는 대상은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형태를 가진 것이어야 해요.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유행의 중심에 있는 트렌디한 디자인의 신발은 제 작업 대상이 되지 않죠.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원형적 형태여야 합니다. 또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구나’, ‘내가 직접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느낄 만큼 구체적인 대상이어야 합니다. 저는 늘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나 ‘반숙 계란(Oeuf à la Coque)’ 같은 작품을 보면, 어머니로서 여성의 잠재력과 함께 여성의 취약성을 다룬 점이 인상적입니다. 또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개인적 불안을 표현한 듯한데, 이런 불안의 정서는 더 거대한 사회적 표현의 일부로도 볼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사실 그런 관점에서 제 작업의 유머나 불안을 생각해본 적은 없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개인적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시에 ‘사회적 경험’이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죠. 유머는 제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주제입니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 낯선 조합에서 생겨나는 긴장감 속 유머, 혹은 모순적 상황에서 피어나는 유머를 좋아해요. 저는 경계와 경계 사이 공간에서 예술을 탐구하고 싶은 작가예요. 그래서 대비되고 상반되는 것에 유혹되죠. ‘거품기를 든 여자’의 경우를 보면, 한 사람이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매우 복합적이고 어려운 상황이에요. 저는 이런 다층적 의미를 가진 장면을 통해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요.
그렇다면 작업할 때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나요, 아니면 감정이 앞서나요?
이미지와 감정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굳이 따져보면 저는 이미지에서 먼저 시작하는 편이에요. 다만 그 이미지 역시 감정을 내포한 형태로 떠오르기 마련이라 완전히 순수하지는 않죠. 감정에서 출발한 작품이 있는지 떠올려봐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요. 혹여 감정에서 시작하더라도 결국 ‘이 감정에 어울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되묻게 되니까요. 그래서 그 과정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대체로 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한 것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에선 ‘모성’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축을 이루는 듯합니다. 예술가로서 출산의 경험이 시각언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하나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일종의 시리즈처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이 작업을 얼마나 이어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고, 그 경험에서 느낀 감정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스며들었어요. 출산 이후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우선 저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었고, 그로 인해 삶이 훨씬 단순해졌죠. 작업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전보다 줄었어요.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작업 방식이 단순해졌고, 제가 구사하는 시각언어 역시 자연스럽게 간결해졌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죠. 제가 속한 세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지금은 출산과 모성의 사이클을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는 또 다른 성장의 사이클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작품을 보면 작가님이 자신의 상황을 약간 떨어져서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모성에 대한 제3자의 시선, 혹은 객관적 시각이 담긴 듯해요.
출산은 분명 우리를 변화시키지만, 그 본질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항상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집단적 경험과 맞닿아 있는지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요. 그런 이유로 출산과 모성이라는 주제 안에서도 아직 다루지 않은 면을 탐색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모성의 양면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회화, 종이 작업,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작업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만약 제가 회화에만 머물렀다면 예술가로서 정체되어 있었을지도 몰라요. 다양한 매체를 다루면서 작업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고, 창의성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조각 작품에서는 처음으로 천연 옻과 박을 사용해보기도 했어요. 한국 관람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서 단색조에 가까운 색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시각언어를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텍스처를 강조하고, 디자인적 요소와 정밀한 표현에도 신경 썼어요. 그렇게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옻과 박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탐구해볼 수 있었죠. 이런 고민의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즐겁습니다. 예술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람객이 작가님의 작품에서 어떤 감정이나 사유를 발견하길 바라시나요?
이전에는 미국과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어요.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중심으로 보다 범세계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시아 문화는 서구의 문화와 상당히 다르잖아요. 저 역시 베트남의 영향을 받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해요. 그래서 이번에 제 이야기가 한국의 관람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정말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