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Meets the Timeless
옷장을 열어 패션 하우스의 빈티지 의상이 없는지 확인해 볼 것.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장인의 정신이 깃든 아름답고 오래된 옷에 유명 박물관, 미술관, 컬렉터, 패션 하우스가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패션사의 한 조각을 쟁취하기 위해 이들이 펼치는 경매 이야기.
다양한 빈티지 쿠튀르를 보유한 케리 테일러 옥션의 내부 전경 / ⓒ Kerry Taylor Auctions

빈티지 쿠튀르를 살펴보는 케리 테일러 옥션의 스페셜리스트 케리 테일러 / ⓒ Kerry Taylor Auctions
티파니 스토어 앞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아침식사를 즐기던 오드리 헵번의 블랙 지방시 드레스와 백악관 갈라 디너쇼에 참석한 다이애나 비가 입은 빅터 에델스테인 벨벳 드레스를 살 수 있다. 그뿐 아니다. 패션에 예술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드레스, ‘악동스러운’ 알렉산더 맥퀸 디자인의 시초가 된 범스터(bumster) 팬츠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가 만든 키 룩으로 내 옷장을 채울 수도 있다. 어떻게? 다름 아닌 빈티지 쿠튀르 옥션을 통해서다. 물론 적게는 3500파운드(약 571만 원), 많게는 80만 파운드(약 13억4000만 원)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지만(각각 알렉산더 맥퀸의 팬츠, 다이애나 비의 드레스 낙찰가다) 패션 애호가를 비롯해 독특한 투자 상품을 찾고 있는 이들은 꽤 이유 있는 소비라 여길테다.
사실 1980년대에만 해도 빈티지 쿠튀르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새롭고 미래적인 것에 몰두하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은 남이 입던 ‘중고 의상’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런 생각은 반전된다. 많은 사람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빈티지 의상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특히 ‘패션의 황금기’를 이끈 코코 샤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찬 디올, 위베르 드 지방시 등이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이들이 선보인 완벽한 퀄리티와 독창적 디자인의 작품은 현대의 그것과는 차별화된 매력으로 컬렉터에게 가치 있는 수집품으로 인식되었고, 자연스레 이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했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빈티지 쿠튀르 시장은 소수의 열정적인 컬렉터가 작은 규모로 유지해왔고, 2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이를 전문으로 수집하는 개인 컬렉터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경매 참여자가 생겨났다. 복식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옷에 관심을 갖는 박물관은 물론이거니와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다음 컬렉션을 위한 영감을 얻고자 하는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 대가의 쿠튀르 피스를 직접 소장하고 이를 연구하고자 하는 패션 학도, 단순히 옷을 입기 위해 구매하는 개인 소비자와 레드 카펫에서 돋보일 수 있는 빈티지 드레스를 찾는 여배우까지 다양한 주체가 빈티지 쿠튀르에 관심을 보이면서 옥션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그리고 이러한 관심의 저변에는 빈티지 의상 특유의 매력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1960년대에 제작한 샤넬 트위드 슈트. 7월 8일 소더비, 케리 테일러 옥션, 디디에 루도의 공동 개최 경매에서 만날 수 있다. / ⓒ Sotheby’s

6월 10일, 레슬리 하인드먼 옥셔너스의 ‘에보니 컬렉션’ 경매에서 소개할 예정인 생 로랑의 이브닝드레스 / ⓒ Leslie Hindman Auctioneers

파코 라반의 타조 깃털 장식 미니 드레스(1969년) / ⓒ Sotheby’s

피에르 발맹의 블랙 벨벳 칵테일 드레스(1953년) / ⓒ Sotheby’s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이브닝 가운 / ⓒ Leslie Hindman Auctioneers
그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목격자’로 인식된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대를 대변하는 디자이너, 이를테면 1930년대의 코코 샤넬, 1950년대의 크리스찬 디올, 1960~1970년대의 이브 생 로랑 손끝에서 탄생한 옷은 그 자체로 현대 패션사를 고스란히 담은 보물이다. 그들의 옷은 당대에 가장 멋진 스타일을 유지한 상류층 여성이 즐기던 것으로 시대상을 목격할 수 있는 증거다. 특별한 인물이 간직한 피스에는 남다른 이야기와 의미가 더해져 소장가치가 더욱 상승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 때문에 현재 기술로도 쉽사리 흉내 내거나 재현할 수 없는 의상 고유의 디테일은 제품의 가격 측정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박물관이나 개인 컬렉터는 제품이 원형에서 얼마나 변형되었는지 아주 꼼꼼하고 섬세하게 체크한다. 실제 영국 케리 테일러 옥션(Kerry Taylor Auctions)의 스페셜리스트 케리 테일러는 “옥션에 선보일 쿠튀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음질이나 레이블 하나까지도 본래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 끗 차이로 제품의 가치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일이 다반사이니 말이다. 한편 빈티지 쿠튀르는 투자 대상으로 봐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관점이다. 미술품 경매의 경우 명화를 제외하고는 작가의 전시 이력이나 작고 여부, 시장 상황과 흐름에 따라 작품 가격의 변동 폭이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빈티지 쿠튀르는 이미 품질과 가치가 뛰어난 제품이라는 인식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고, 생산 시기 또한 정확히 알 수 있는 데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미술품에 비해 가격의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다시 말해 빈티지 쿠튀르는 재판매를 고려하더라도 제품이 손상되지 않는 이상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위험부담이 적은 투자 상품인 셈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디지털 시대가 빈티지 쿠튀르 시장의 성장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온라인을 통해 어디에서나 즉각 옥션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경매 참여자가 생겨났다. 지난 2011년 12월, 크리스티 뉴욕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핸드백과 의류, 보석 소장품 경매를 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경매에서 크리스티 최초의 온라인 옥션을 진행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1억5000만 달러(약 1693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티 아시아의 핸드백 & 액세서리 부서 인터내셔널 디렉터 맷 루빈저(Matt Rubinger)는 이와 관련해 “2011년 첫 온라인 옥션 이후 크리스티는 2012년에 7개의 온라인 옥션을, 그리고 2014년 말에는 무려 78개에 이르는 온라인 옥션을 진행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온라인 옥션의 성공적 결과에 따른 변화입니다. 2015년에는 더욱 다양한 분야의 온라인 옥션을 진행하려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던 빈티지 핸드백 & 액세서리 옥션에 대한 늘어나는 수요와 인기 덕에 이를 오프라인 옥션으로 발전시켜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첫 런칭에 이어 올해 3월에는 파리에서 오프라인 경매를 진행했다. 크로커다일 가죽 소재의 에르메스 히말라야 버킨 백을 15만7500달러(약 1억6910만 원)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판매하며 성공적 결과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12월 개최한 크리스티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컬렉션 경매 / ⓒ Christie’s

영국 런던에 위치한 케리 테일러 옥션 / ⓒ Kerry Taylor Auctions

1990년대의 빈티지 에르메스 켈리 백
이처럼 흥미로운 빈티지 쿠튀르 옥션에 참여하고 싶다면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세계 경매 회사의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경우를 알아보자. 소더비는 2000년대에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비정기적 패션 옥션을 기획하곤 했지만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서는 없었다. 하지만 오는 7월 소더비 파리에서 회사 최초로 본격적인 빈티지 쿠튀르 경매를 진행한다. 한편 소더비에 비해 패션 옥션 분야에서 조금 더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온 크리스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수지 멘키스 등 특정 인물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특별한 경매를 종종 진행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빈티지 핸드백과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전문 부서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의 옥션에 참여하고 싶다면 앞서 언급한 온라인 경매와 함께 6월과 11월 홍콩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경매, 3월과 9월 파리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경매를 눈여겨보자.
그 밖에 도일 뉴욕(Doyle New York)은 빈티지 쿠튀르, 텍스타일, 코스튬 주얼리 부서를 통해 지난 25년간 관련 경매를 진행해온 빈티지 의상 경매 분야의 선구적 회사고 본햄스(Bonhams) 역시 코스튬과 텍스타일 부서를 중심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빈티지 쿠튀르를 선보이고 있다. 한편 1982년 시카고에서 설립한 레슬리 하인드먼 옥셔너스(Leslie Hindman Auctioneers)는 매년 4월, 9월, 12월 정기적으로 하이엔드 액세서리와 빈티지 쿠튀르 경매를 여는데 주로 19~20세기의 디자이너 의상을 만날 수 있다. 오는 6월 10일에는 특별한 ‘에보니 컬렉션’ 옥션을 통해 이브 생 로랑의 1990년대 블랙 시퀸 가운, 1983년 엠마누엘 웅가로 컬렉션의 도미노 코트는 물론 이세이 미야케, 발렌티노, 니나 리치 등에 이르는 300점의 디자이너 의상을 선보인다고. 더욱 반가운 것은 빈티지 쿠튀르에 특화된 경매 회사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런던의 케리 테일러 옥션. 소더비에 최연소 경매인으로 입사해 30년 이상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케리 테일러가 자신의 관심 분야인 빈티지 코스튬과 텍스타일에 집중하고자 2003년 설립했다. 그녀는 다이애나 비,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대프니 기니스, 윈저 공작부인 월리스 등 20세기 주요 인물이 소장한 빈티지 쿠튀르를 소개한 대규모 옥션을 통해 세계적 빈티지 패션 경매업체를 일군 주인공. 오는 7월 8일 이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빈티지 쿠튀르 수집가 디디에 뤼도(Didiet Ludot), 소더비와 함께 파리 갤러리 샤르팡티에(Galerie Charpentier)에서 옥션을 개최한다. 이번 옥션에서는 20세기 현대 패션사를 아우르는 디자이너인 아제딘 알라이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 존 갈리아노, 꼼데가르송 등의 의미 있는 빈티지 쿠튀르 150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영화배우 로미 슈나이더가 소장한 시퀸 장식의 샤넬 리틀 블랙 드레스부터 윈저 공작부인이 소장한 사이키델릭 원피스, 프랑스 영화배우 조제트 데이를 위해 만든 디올의 재킷 등 특별한 인물이 입던 옷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장가치가 높을 듯.
패션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점점 더 흥미로운 소식으로 가득해지는 빈티지 쿠튀르 경매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 옷장 속에서 빛을 잃어가던 특별한 디자이너 피스는 경매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고, 이를 통해 대중은 특정 시대와 디자이너에 대한 향수를 채워나가는 ‘패션의 선순환’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니까.
에디터 이혜미 (hm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