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Special]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상
시대와 사회, 대중의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그간 유명 시상식은 수상자들을 바꾸었다. 물론 상 자체의 심사 기준이 바뀐 게 먼저였다.

시대와 호흡하는 심사 기준으로 최고의 명성을 잇고 있는 노벨상의 시상 현장.
지난해 10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16년 역사의 노벨 문학상 최초로 대중음악가가 상을 받게 된 순간. 하지만 많은 이가 알다시피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선정엔 큰 논란이 따랐다. 그의 수상을 지지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이 정면으로 맞선 것. 비판하는 쪽은 문학이 아닌 노랫말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고, 반대 진영에선 순수문학의 폐쇄성을 들먹이며 그의 수상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그 시기, 우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노벨 문학상을 비롯한 몇몇 노벨상의 선정 기준이 지난 몇 년간 적지 않게 변화해왔다는 사실이다. 요 몇 년간 노벨상의 6개 부문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과학 분야(물리학, 화학, 의학·생리학) 상은 기존의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과 접목한 연구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는 평가다. 또 최근엔 노벨 경제학상 역시 이론 중심의 연구보다 실증적 분석을 통해 전 세계가 직면한 경제적 난관을 푸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 금융 규제와 기업 간 역학관계 연구로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장티롤 교수나 게임이론을 시장 설계에 접목해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 등이 대표적 예다.
한데 이 같은 노벨상 심사 기준의 변화는 최근 해외의 몇몇 유명 시상식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대중음악에 관한한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인 미국 그래미상 역시 얼마 전 큰 사건을 하나 터뜨렸다. 지난 2월, 제59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정식 음반을 한 장도 내지 않은 힙합 뮤지션 찬스 더 래퍼에게 모든 신인 가수가 꿈꾸는 ‘베스트 신인상’을 준 것. 그래미상은 그간 정식으로 음반을 낸 대중음악가만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올해부터 스트리밍(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것)으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이들도 음악상 후보에 올리고, 그중 찬스 더 래퍼에게 상을 주었다. 한때 버락 오바마도 팬이라고 밝힌 찬스 더 래퍼는 지난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신인상에 이어 ‘베스트 랩 퍼포먼스상’, ‘베스트 랩 앨범상’까지 받으며 3관왕에 올랐다. 다시 말해 그래미상이 그간 지켜온 ‘정식 음반을 낸 경우에만 후보로 올린다’는 원칙을 깨고,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을 비롯해 바뀐 환경을 받아들인 변화라 할 수 있다.

1 가수로서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 2 정식 음반 발표 없이도 올해 그래미상을 받은 찬스 더 래퍼. 3 기존 등단 제도가 아닌, 독립적 심사에 의해 발간된 유진목 시인의 <연애의 책>.
그렇다면 국내의 다양한 예술 시상식엔 최근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이 질문에 가장 할 말이 많은 분야는 문학상일 거다. 2000년 즈음 시작된 독자의 외면과 출판 시장의 어려움 등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국내 문학계의 주요 상은 그간 독자를 서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 예로, 현재 국내 문학계는 서점에서 읽을 만한 소설을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과거와 달리 기성과 신인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국내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문학동네의 ‘문학동네소설상’이 그렇고, 중앙일보에서 주최하는 ‘중앙장편문학상’도 그러하며 이외에 20여 개에 달하는 문학상이 비슷한 방식으로 수상작을 뽑는다. 이는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멀어지는 상황에서 더는 문학상이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 문학상 주최자들이 스스로 심사 기준을 바꾼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최근엔 국내 문학계의 전통적 등단 방식인 신춘문예 심사에 문제를 제기하며 아예 새로운 상을 만드는 움직임 또한 감지된다. 기성 작가들이 예비 시인들에게 시집 한 권을 채울 수 있는 50〜60편의 시를 투고받아 심사, 시인으로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은 물론 책까지 펴내주는 ‘삼인 시집선’이 그것이다. 시인 김혜순과 김정환,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제도를 주관하는 삼인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서너 편의 작품을 보는 기존 신춘문예 방식으론 시인으로서 역량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좋은 시를 쓰면서도 주류 문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기존 출판사들이 포용하지 못한 숨은 시인의 시집을 출판하는 것이 이 제도의 탄생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내 무용계의 대표적 시상식 중 하나인 ‘대한민국무용대상’도 최근 몇몇 상의 심사 기준을 바꾸었다. 한국무용협회가 2008년부터 개최한 이 시상식은 한국 최고의 기량과 예술성을 겸비한 무용가를 선정, 지원해 무용의 저변 확대를 꾀하겠다는 최초의 제정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중과의 소통이 없는 ‘무용인들만의 행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이들은 올해부터 원로 및 중견 안무가와 젊은 안무가의 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참가 자격과 요건을 전면 개방한 데 이어, 그동안 참가 자격에서 제외된 한국 전통 춤 분야를 추가해 전통 춤 안무가와 단체에도 참가 기회를 제공해 보다 많은 무용 팬을 사로잡겠다는 계획이다.
그뿐 아니라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최자의 ‘주관적 안목’을 통해 높은 음악적 성취를 이룬 음악과 뮤지션을 발굴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국내의 대표적 대중음악 시상식 ‘한국대중음악상’ 또한 최근 심사 방식을 손봤다. 지난 2월, 2010년 제7회 시상식 당시 신설한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부문을 전면 폐지한 것. 이유는 단순했다. 네티즌의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해 갈수록 인기 투표의 경향이 짙어지고, 상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의견 때문이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상이 음악적으로 좀 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겠다는 취지로 몸집을 줄인 예로,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심사 기준을 바꾼 경우라 할 수 있다.

4 <옥자>와 함께 칸 영화제에서 상영해 논란이 된 온라인 영화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 5 칸 영화제의 보수적 심사 기준에 논란을 부른 영화 <옥자>.
국내외의 유명 시상식이 이처럼 수상 기준을 바꾸는 이유에 대해 대중문화 평론가 차우진은 “어떤 상의 권위는 과거의 원칙과 기준을 고집하는 데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고 스스로 혁신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때 더 높아진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이란 미명 아래 귀를 막고 있다간, 결국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 6월,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스트리밍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간다면 엄청난 모순”이라며 봉준호 감독의 스트리밍 영화 <옥자>에 보수적 심사 기준을 들이댄 칸 영화제 사건은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일이 있기 불과 6개월 전 “미국 음악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며 평생 노래만 불러온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와 악기로 노래하면 정녕 문학이 아닌 걸까? 온라인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만들면 그 또한 영화가 아닌 걸까?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놀라움을 안겨준 이유는 사실 별다른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에 선 진짜 ‘예술’이, 우리에게 잊힌 예술의 정의를 다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디터 피처팀
사진 김도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