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Special] 아름다운 밤이에요
그날 시상식에 참여한 4명의 후보자 중 한 명은 가짜였다. 각종 문화 예술 시상식 현장에서 일어난 그날의 사건 그리고 말, 말, 말.

무대 위에 주인공이 된 수상자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청중.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 리셉션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후보 작가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 중 최종 수상자로 선정된 오인환 작가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던 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런 말을 던졌다. “저 아닌 거 아시죠?” 대화를 이어갈수록 어딘가 모르게 겸연쩍어하던 그의 모습과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도대체 무엇이 아니라는 건지, 당시 함께 있던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신은 전시 기간 작가를 대신해 작가 행세를 하고 있는 배우라고. 실제 오인환 작가 대신 그의 지인이자 연극배우인 손상규가 시상식에 작가인 양 연기하며 참가한 것. 시상식만이 아니다.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에서 상영한 작가 소개 인터뷰 영상에도 손상규 배우가 등장했다. 천연덕스럽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얼굴 아래로 오인환 작가라는 자막이 따라다녔다. 작가의 얼굴을 모르는 나는 전시 기간 내내 철석같이 그가 작가라고 믿고 말았다. 심지어 <죽음과 소녀>라는 연극에서 그 배우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 민망한 상황은 퍼포먼스를 기획한 작가의 탓일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내 탓일까, 자연스러운 배우의 연기 탓일까? 시상식 관계자와 후보 작가 셋이 함께 단상에서 찍은 보도자료 사진에도 배우는 ‘오인환’이라는 명찰을 달고 서 있다. “미디어가 예술가를 과장해 드러내는 기존 미술상 제도와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오인환 작가가 이처럼 ‘대역을 세우는 것’으로 상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줬다면 다음 예는 진짜로 수상을 거부한 이들이다.

1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긴장된 순간. 2 축하 공연은 시상식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올해 제53회 동아연극상의 특별상 수상을 거부한 수상자는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주제로 한 작품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의 참여팀이다. 매년 초 시상하는 동아연극상은 1964년에 제정한 권위 있는 연극상으로, 수상 거부는 제정 이래 처음 벌어진 일. 작년 12월 특별상 수상자를 발표했고, 이에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팀은 시상식 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동아연극상 특별상과 서울연극협회가 수여하는 특별상 수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한국 예술계의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수상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잊지 않으면서도, “권리장전은 검열이나 권위 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만나는 세계를 지향하는 광장으로 그 어떤 기성의 권위나 제도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연극뿐 아니라 과거 뮤지컬 시상식에서도 수상 거부 사례가 있었다. 올해 흥행한 한국 창작 뮤지컬 <서편제>엔 단순히 해프닝이라고만 할 수 없는 사건이 많았다. 2010년 <서편제>가 처음 뮤지컬로 탄생했을 때는 흥행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공연을 기획했지만 큰 적자를 낸 피앤피컴퍼니의 조왕연 대표는 이듬해인 201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서편제>는 그가 세상을 뜨고 한 달 뒤 열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창작뮤지컬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중 극본상을 받은 조광화는 조왕연 대표의 장례식장에서 입은 상복을 그대로 입고 나와 A4 용지 2장에 절절이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뮤지컬 역사에 남을 수상 소감을 전했지만, 시상식 이후 돌연 수상 취소를 요청해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상은 받되, 트로피를 거부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자리에서 상패를 팔아버린 경우다. 지난 2월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포크노래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수 이랑은 현장을 순식간에 경매 현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랑이 즉석에서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기 때문이다. 이랑은 자신의 수입을 밝히며 “상금이 없어서 지금 이 트로피를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 월세가 50만 원이라 50만 원부터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막 자신의 손에 들어온 따끈따끈한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쳤다. 심지어 50만 원에 사겠다는 응찰자가 나타나 현금을 지불하고 트로피를 가져갔다고. 이랑의 파격적인 행동 때문에 오히려 <나무가 되어>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조동진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3 기쁨을 나누는 수상자들의 모습. 4 손상규 배우가 오인환 작가가 되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해프닝만큼 시상식에서 주목을 받는 건 바로 수상 소감이다. 영화배우 장미희의 “아름다운 밤이에요”나 영화배우 황정민의 “스태프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라는 수상 소감은 화제를 뿌리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숱한 패러디를 낳고 있다.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과거 천편일률적이던 수상 소감은 점점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다. 그중 나는 제51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연출가 김광보의 “관객이 많이 찾아오지 않아 명동예술극장 쪽에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상을 통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는 소감과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신영숙의 “유명하지도 않은 ‘신영숙’이라는 맛집을 찾아주는 단골손님에게 감사드린다”라는 진솔하면서 위트 있는 수상 소감을 특히 좋아한다.
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문화 예술계에도 꾸준히 다양한 상이 생겨나고 유지되고 사라진다. 누군가에겐 평생을 기다린 영예일 테고, 누군가에겐 거부하고 싶은 현장일 것이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상일 것이고 미래를 이어갈 힘일 수도 있다. 그동안 상을 거부한다거나, 트로피를 판다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세우는 행동 등 상의 다양함만큼 극과 극의 반응이 있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시상식에서 색다른 해프닝과 재치 넘치는 유행어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에디터 피처팀
사진 김도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