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dong Yang_ 양푸동
백남준의 후예라 불리는 중국의 비디오 아티스트가 있다. 1971년 베이징에서 출생, 중국미술학원 유화과 졸업 후 1993년 ‘Otherwhere or Stranger’s Plan(Refuse to Speak in Three Months)’이라는 작품으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이름 석 자를 알린 양푸동(楊福東). 실험적인 영상 창작으로 영화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등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작가로 손꼽힌다. 그는 2002년 카셀 도큐멘타를 시작으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2007년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표작 ‘Seven Intellectuals in Bamboo Forest’를 출품하며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섰다. 그 후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과 피닉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덴버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미국과 유럽에 아시아 비디오 아티스트의 무한한 잠재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사진과 영상, 비디오 설치 작업에 몰두하는 그는 옛 신화와 개인적 기억, 추억, 삶의 경험을 통한 정체성 형성 과정을 내러티브 방식으로 조명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의미 있는 한 획을 긋고 있는 아티스트 양푸동을 상하이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1 자택 작업실에서의 양푸동.
2 양푸동의 기존 흑백 사진 작업들.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가요? 3월 13일부터 5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샤르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 11’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8개 정도의 스크린을 동시에 설치할 생각이에요. 이번 작품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는데 그중 한쪽에선 샤르자에서 찍은 영상을, 다른 한쪽에선 스페인에서 찍은 영상을 상영할 계획입니다.
그 작품은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나요? 늘 그렇듯 자세한 스토리를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작품 제목을 해석하면 ‘천천히 가서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든지,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라’ 정도 될까요? 간단히 말하면 아랍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작품이에요. 사람들은 아랍 문화에 대해 잘 모르죠. 미지의 것으로 다들 궁금해하지만요. ‘알고 싶으면 이 아라비안 세계에 들어가 내 작품과 함께 경험을 하든지, 아니면 그냥 작품 밖에 머물러라’, 뭐 그런 뜻이에요.
항저우에 있는 China Academy of Fine Arts에서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회화로 시작했는데 영상과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술의 도구는 다 똑같다고 봅니다. 예술에서 수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대학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동시에 현대미술 이론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현대미술에도 다양한 매체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림보다 다른 매체를 통할 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저는 사실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도구를 붓에서 카메라로 바꾸었을 뿐이지요.
1 Otherwhere or Stranger’s Plan(Refuse to Speak in Three Months), Performance, Duration: 3 Months, 1993.
2 General’s Smile, Production shot, Multiple-Channel video installation, 2009.
혼자 하는 작업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더 성격에 맞나요? 당신 작품에는 보통 단편영화 한 편을 찍는 만큼의 스태프가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비디오 영상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의 경우 언뜻 보기엔 성격이 활발한 것 같지만 깊이 알고 보면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작품 창작 과정과 개인적인 성격이 반대로 흘러간다고 보면 맞을 것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움직이는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당신의 생각이나 경험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미지화되고 형상화되나요? 작품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결론이 너무 뚜렷하면 재미가 없어서요. 한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죠.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Seven Intellectuals in Bamboo Forest(죽림칠현)’는 2003년에 처음 구상했어요. 큰 방향만 결정해놓은 상태였죠. 이 작품은 총 다섯 파트로 나뉘는데 제작 기간을 5년으로 봤습니다. 작품 1은 황산, 작품 2는 상하이, 작품 3은 바다…. 그런 식으로 구상만 해놓고 진행했어요. 매년 한 작품씩 완성했고, 만들다 보니 처음에 11명으로 시작한 스태프가 다섯 번째 작품에서는 40명 정도로 늘어났죠.
그 작품은 비엔날레에서도 호평을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신의 작품은 매우 개방적이에요. 확정적인 결론을 내지 않고 언제나 관람객 스스로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죠. 그러다 보면 대중의 판단이 작가의 의도와 엇갈릴 때가 많을 텐데,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선 대중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고 생각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작가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둘 사이에서 비롯된 괴리감은 분명 존재합니다. 제 의도와 다른 해석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오해가 현대미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작가에게도 더없이 좋은 공부가 되거든요.
1 Seven Intellectuals in Bamboo Forest Part 5, Film still, 35mm B&W film, 90’, 2007.
2 Close to The Sea, Exhibition scene, 10-Channel video installation, 23’, 2004.
3 Robber South, Screen shot, video installation, 18’, 2001.
대중의 오해가 당신에게는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나요? 대중의 생각과 작가의 아이디어는 분리된 섹션에서 각각 자유롭게 움직여야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작품을 창작해야 하고 대중은 자유롭게 그들의 생각을 재해석해야 하죠. 하지만 저는 대중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가끔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니까요.
당신의 사진과 영상은 흑백 작품이 많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흑백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세요? 흑백은 사람과 영상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어냅니다. 흑백 영상은 사람들에게 시간성을 가지고 다가가죠.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또 흑백 영상은 상황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상은 다채로운 컬러 영화라는 점이 정말 재미있고요.
흑백 영상에서 다채로운 컬러를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영상에서는 흑백으로 보이지만 사실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 장소에는 본래의 색깔이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흑백 영상은 관람객이 영상을 보면서 그 실제 컬러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런 점에서 컬러 영상보다 훨씬 많은 컬러를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보는 거죠.
No Snow on The Broken Bridge, Exhibition Scene, 8-Channel video installation, 11’, 2006.

Blue Kylin Part 2, On location shot, Slide-Film installation, 2009.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당신을 영상 장르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작가로 평가했습니다. 카셀 도큐멘타까지 휩쓸며 더욱 이름을 알렸고요. 그런 유명세가 다음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좋은 전시에 참여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창작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여전히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비용 문제죠. 비디오 창작은 페인팅과 많이 달라요. 많은 소스와 인력, 기술력이 필요하죠. 작품의 규모가 커질수록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유명세와 상관없이 언제나 비용에 대한 압박이 있습니다.
창작비는 주로 어떻게 지원받나요? 간단합니다. 갤러리에서 창작비를 지원하거나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지원하거나. 지금 만들고 있는 비엔날레 출품작은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지원해주었습니다.
충분한가요? 네.(웃음) 이번에는 충분합니다.
일반 작가와는 반대로 작업하는군요. 보통은 작품을 완성한 후 그 작품을 판매하는데 당신은 우선 지원을 받은 후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니까요. 그런 경우 작업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부담은 거의 없습니다. 유일한 부담은 ‘지원금을 받되 그것과 상관없이 작가가 진심으로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이죠. 저는 저를 지원하는 컬렉터나 갤러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진심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듭니다.
많은 중국 작가가 작품에 직접적으로 정치적 이슈를 담아내는 데 비해 당신의 작품에는 그런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공격적인 느낌 대신 정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정치적 이슈를 다루었다고 보는 작품도 사실은 정치가 아니라 정치와 관련된 현실 생활을 주제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주제는 저도 표현한 적이 있어요. ‘Blue Kylin 2’라는 작품에서 중국 북쪽 지방에서 힘든 삶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슬라이드 쇼 형식으로 보여주었죠. 사람들이 괴롭고 고된 노동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과보다는 그들의 철학이나 정신세계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직접적으로 정치를 다루진 않았지만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힘겨운 삶에 내몰린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에서 그것 역시 정치적 이슈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한국 부산에서 열린 ‘아트쇼부산’은 일본인 컬렉터 미야쓰 다이스케의 컬렉션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미디어 작품으로만 꾸민 그 특별전에서 당신의 작품을 함께 소개했죠. 당신은 작업을 시작한 초기에 언젠가 당신의 작품이 이렇게 전 세계인 앞에 서고, 그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고민을 안겨줄 거라고 상상했나요? 그런 것까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카셀 도큐멘타에서 선보인 ‘Seven Intellectuals in Bamboo Forest’처럼 수년간 한 작품에 매진해 좋은 결과물을 얻고 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습니다. 작품 앞에 섰을 때 떳떳함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그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거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연연하진 않습니다.
당신의 예술관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뭔가요? <아트나우> 독자들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작품을 추천해준다면요? ‘Otherwhere or Stranger’s Plan(Refuse to Speak in Three Months)’(1993년)은 첫 비디오 작품이라 꼭 보여드리고 싶고, 2003년부터 5년 동안 만든 ‘Seven Intellectuals in Bamboo Forest’ 시리즈는 지금까지 가장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Backyard-Hey, Sun is Rising’(2001년)은 제가 그 당시 계속 예술가로 살아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만든 작품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고, ‘Down Mist, Separation Faith’는 지금까지와 다른 공간 영상을 실험한 작품이라 보여드리고 싶네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제 작품에 중국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해요. 근데 제가 다시 묻고 싶어요. 중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요? 결코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그것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동양적인 색채가 묻어나긴 합니다. 로컬 교육을 받은 영향이 아닐까요?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건 인정해요.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중국의 전통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작가가 받은 교육과 작품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게 있나요? 생활, 사람의 일상을 담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르는 여자의 생활’. 제가 모르는 여자의 인터넷 생활, 연애 생활 등등. 그 모르는 여자를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동욱(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