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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 Evolution

FASHION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진화한 모피 코트가 올겨울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자연스러운 컬러와 무늬를 살린 모피에 싫증이 난 걸까, 아니면 극도로 과장된 것을 추구하는 최근 글램 코어 트렌드의 영향일까? F/W 시즌 디자이너가 런웨이에 올린 모피를 보고 있자면 컬러, 패턴, 실루엣 어느 하나 무난한 것이 없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모든 기교를 동원해 퍼의 장식적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풍선껌 같은 팝한 핑크 컬러로 물들인 폭스 퍼나 테디베어를 연상시키는 복슬복슬한 시어링 코트보다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전에 없던 다채로운 ‘그림’을 입은 모피 코트다.
오래 두고 입을 고가의 물건이니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뿐 아니라 퍼 코트는 자칫 ‘정도를 모르는 여자’ 또는 ‘무서운 여자’로 보이기 쉬운 강렬한 아이템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식물, 동물을 비롯해 온갖 기하학적·추상적 패턴을 더했다니, 그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층 복잡한 디자인에 여러 차례 가공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예술적이며 정교한 모양을 갖추었기 때문인데,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에 ‘옷’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다. 등에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를 새긴 구찌부터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이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발렌티노, 온갖 기하학적 패턴을 새겨 동시대적 디자인을 완성한 로에베, 살바토레 페라가모, 지암바티스타 발리, 추상화 작품을 보는 듯한 에밀리오푸치, 마르코 드 빈센초,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꽃 한아름을 모피 위에 옮겨 담은 펜디, 블루마린까지. 디자이너는 그야말로 퍼를 물감 삼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표현한 듯하다.

이처럼 다양한 디자인은 오랜 시간 모피를 다뤄온 공방의 노련한 솜씨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 염색부터 직물 위에 퍼를 접착하는 플로킹, 레이저 커팅, 니팅 등 퍼 가공의 기본 기법을 저마다의 노하우를 살려 응용하는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인타르시아(intarsia, 상감기법)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목공 기술에서 유래한 것으로 바탕에 무늬를 새긴 후 그 위에 다양한 재료를 채워 넣는 방식을 일컫는다. 조각과 조각을 잇는 것처럼 보이지만 패치워크와는 전혀 다르고, 오히려 가죽 조각을 퍼즐처럼 맞추는 마케트리와 유사하다. 이 기술이 패션 분야로 옮겨온 것은 꽤 오래전 일이지만 모피를 인타르시아 기법으로 가공하는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컬러, 무늬가 다른 퍼를 원하는 스케치에 맞춰 적재적소에 채워 넣는 방식 덕분에 표현의 영역은 한층 광범위해졌고 완성도 역시 높아졌다. 인타르시아 기법으로 제작한 모피 코트 안감을 살펴보면 겉감에 드러난 패턴의 스케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또한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어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부분! 한편 자로 잰 듯 날렵한 스트라이프 패턴을 구현하는 데는 전통적 ‘렛아웃’ 기법을 응용한다. 펜디가 1970년대에 칼 라거펠트의 스케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이래 하우스의 기술력, 미학적 가치를 대변해온 아스투치오(astuccio) 퍼가 바로 이 렛아웃 기법의 결과물이다. 스케치를 옮긴 패턴을 따라 퍼를 선별, 모서리 부분을 못에 고정한 상태로 여러 시간 건조 뒤 고유의 기술을 살려 퍼 펠트를 V자 형태로 날렵하게 자르고 이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이어 붙인다. 숙련된 장인이 무려 220시간에 걸쳐 완성한다고(작업 과정이 궁금한 이는 펜디 공식 홈페이지에서 퍼 아틀리에 영상을 참고할 것!).
이와 같이 화려한 색과 무늬로 모피 코트를 장식하는 트렌드는 계절과 상관없이 내년 S/S 시즌에도 이어질 전망. 펜디, 구찌 등에선 수십 조각의 퍼를 집요하리만큼 정교하게 이어 붙인 환상적인 피스로 시선을 끌었다. 그렇다면 패션 하우스에서 이처럼 대담한 디자인에 몰두하는 이유는? 우선 클래식한 퍼를 다양하게 접한 소비자가 계속해서 새롭고 독보적인 스타일을 찾기 때문이다. 누구나 옷장에 걸어둘 수 있는 모피가 아니라, 남들과 차별화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컬렉션 피스를 구매하거나 메이드 투 오더 서비스로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재구매율이 높은 이들의 특성 때문에 브랜드는 계속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고도의 모피 가공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 모피를 소비하는 연령층이 예전보다 한층 어려진 것 또한 하나의 이유다. 최근 몇 년간 급변하는 퍼 유행 판도를 목격한 이들은 과감한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엄마의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한 지루한 모피로는 세련된 취향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터. 이처럼 동시대적 요소를 적극 반영한 모피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따뜻한 촉감과 보는 즐거움으로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에디터 이혜미(hmlee@noblesse.com)
사진 기성율, 김흥수(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