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클래스의 이름으로
메르세데스-벤츠 G 클래스가 33년 만에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국내에 출시된 건 2012년 겨울이었다. 서울 도심의 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그 차를 보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한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저 무심한 듯 시크한 모습과 어떤 것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마초의 매력을 겸비한 G 클래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그 이름만으로 존재감을 발하는, 마치 아버지 같다고.
G 63 AMG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는 1970년대에 직업 군인이었다. 언제나 각 잡힌 듯한 절도 있는 태도, 지적인 얼굴선과 보수적이면서 마초적인 사내의 성품을 겸비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이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존경과 함께 동경심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아버지가 어려웠다.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았다. 다만 딱딱한 표정과 말투 뒤에 숨은 희미한 미소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가 오랜군인 생활을 정리했고,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서 지낸 지 몇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오랫동안 꿈꿔온 차를 구입했다. 그 차를 집에 처음 몰고 온 날, 아버지는 차를 세워놓은 뒤뜰 주차장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곤 예의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 차가 G 바겐이라고. 한결 부드러운 어투로 어린 소년인 내게 이 차의 역사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원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개발한 G-5로 얼마나 혁신적이고 월등한 기동력을 갖췄는지, 그 이후 군용 차량인 G 바겐으로 태어났는데 극한의 험로 주파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초 군용차로 쓰이다 첫 상용차로 데뷔한 것은 1979년, 내가 태어난 해다. “이것도 전쟁 중 총에 맞아 유리가 깨지면 둥그렇게 가공하기 힘드니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란다. 아무 데서나 대충 크기만 맞춰서 끼워 넣을 수 있도록. 놀랍지?” 여느 차와 달리 전부 사각으로 돼 있는 차량 유리창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마치 자신이 만들기라도 한 양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그 차는 운전대랑 바퀴 빼곤 전부 각이 살아 있었다. 긴장미 넘치는 각진 외형, 지적이면서 강렬한 자태, 내 어린 눈에 그 차를 담으면서 문득 아버지와 닮았다고 느낀 것 같다. 강해 보였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을 듯했다. 흥미로웠다.
V8 바이터보 엔진을 장착한 G 63 AMG

G 350 블루텍 모델의 신형 6기통 디젤 엔진

G 350 블루텍
2세대 G 클래스 이야기
그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일까? 대학을 졸업한 후 어른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G바겐에 대한 기억이 흥미롭게 남아 있었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군수용으로 처음 개발한 G 바겐은 G 클래스의 애칭이다. 본래 이름은 겔란데 바겐(Gelande Wagen)인데 1994년부터 G 클래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G 바겐이란 애칭이 이 차에 더 어울린다고 말씀하곤 했지만. 뭐, 이름이 무엇이든, 태생적으로 극한의 오프로드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탄생한 차인 건 분명하다. 가장 독특하고 개성 강한 메르세데스-벤츠의 모델 아닐까 싶다. 한때 벤츠의 럭셔리 SUV인 M 클래스나 GL 클래스 등이 G 클래스를 대신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벤츠는 결국 고맙게도(!) G 클래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기술적 성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해왔지만, 큰 외형적 변화 없이 단일 모델로는 최장 기간 생산하며 교황을 포함한 셀레브러티, 각국의 군용차와 의전차 등 특수 목적 차량으로 전 세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렇게 33년이 지난 2012년, 메르세데스-벤츠는 4월에 열린 베이징 모터쇼에서 세대교체한 G 클래스를 선보였다. 아버지처럼 특별한 애정을 품은 마니아를 위해서일까. 다행스럽게도 2세대 역시 첫 세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프런트를 살짝 다듬고 LED 주간 주행등과 사이드미러 디자인이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투박하면서 강인한 멋을 풍긴다. 반면 기술과 성능은 첨단의 옷을 입었다. 그해 겨울 국내에 선보인 G 클래스는 2가지 모델이다. G 350 블루텍과 G 63 AMG. G 350 블루텍은 3줄 루브르 라디에이터 그릴과 중앙을 장식한 엠블럼으로 G 클래스 고유의 디자인을 표현했고, G63 AMG에는 AMG 모델에만 들어가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더블 루브르, 신형 범퍼와 대형 공기 흡입구, 레드 컬러의 브레이크 캘리퍼와 20인치짜리 대형 휠을 더해 더 강렬하고 스포티한 매력을 품었다.
실용적이고 단단한 형태가 돋보이는 G 350 블루텍

G 63 AMG의 AMG 로고를 새겨 넣은 기어

벤츠의 최상급 인테리어 라인인 데지뇨 에디션으로 마감한 G 63 AMG의 시트

G 63 AMG의 실내는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신형 G 클래스의 실내에 앉아보고 깜짝 놀랐다. 큰 변화 없이 클래식하고 복고적인 느낌을 풍기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많이 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반전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기반과 센터 콘솔을 모던하고 세련되게 디자인한 것이 눈에 띈다. 2개의 원형 계기반 사이에는 컬러 스크린을 장착해 운전자가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차량 안팎이 유난히 샤프하게 빛나 보이는 이유는 국내 출시 모델에만 적용한 크롬 패키지 덕분이다. 라디에이터를 포함해 발광 도어 패널, 스피커 커버, 시트 조절 스위치 등을 크롬 재질로 마감했다. 또 스페어 휠커버와 사이드 바 등에 적용한 외장 스테인리스스틸 패키지, 가죽 커버로 마감한 대시보드, 앰비언트 라이트와 알칸타라 블랙 루프 라이너 등을 아낌없이 넣은 익스클루시브 패키지까지 기본 사양으로 적용해 고급스러운 품격이 곳곳에 묻어난다. 주행 감각은 얼마나 좋아졌을지 궁금했다. 운전대를 잡으니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자신감이 넘치며 군인 시절 늘 단단하게 기합이 들어가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G 350 블루텍은 2987cc, 신형 V6 디젤엔진에 7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최대출력 211마력, 최대토크는 1600~2400rpm에서 55.1kg·m으로 비교적 일상적 주행 시 안정적인 파워를 발휘한다. 여기에 메르세데스-벤츠의 청정 기술인 블루텍(BlueTEC)을 적용해 연료 효율도 좋다. G 63 AMG 모델은 5461cc V8 바이터보 AMG 엔진을 얹어 5500rpm에서 최대출력 544마력을, 2000~5000rpm에서 77.5kg·m의 파워풀한 주행 성능을 뿜어낸다. AMG 스피드시프트 플러스 7G-트로닉 변속기가 효율적인 드라이빙 모드, 스포츠 드라이빙 모드, 수동 드라이빙 모드를 지원해 주행 상황에 맞는 변화무쌍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에코 스타트/스톱 기능도 탑재해 고성능 엔진임에도 연비가 효율적이고 배기가스 배출량도 최소화했다. 옛 모델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안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상시 사륜구동 엔진은 여전히 이 차의 강인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 시스템에 포함된 중요한 장치 중 하나인 4ETS(Electronic Traction System) 기능 덕분에 경사로에서도 끄떡없을 것 같다. 공회전하는 바퀴에 제동을 가하면서 현재 상황에서 최고의 접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바퀴 쪽으로 구동 토크를 이동, 배분하기 때문이다. 네 바퀴 중 바퀴 하나만 접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 디퍼런셜 록 기능은 극단적인 험로에서도 디퍼런셜을 전자식으로 조절해 차량이 전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사다리형 프레임을 적용해 험로 주행 시 프레임에 가해지는 추가 하중도 감당할 수 있다. 아무리 험한 경사로에서도 저단 기어비를 사용하면 엔진 토크 전달을 그에 맞게 최적화해 차량을 용이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오프로드를 달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며 또 한 번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마 아버지는 남자의 도전 의식과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G 클래스의 이런 매력에 빠졌을 거다.
G 350 블루텍

크롬 소재를 넣어 한층 세련돼 보이는 계기반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더블 루브르가 시선을 끄는 G 63 AMG의 앞모습
G 클래스와 아버지의 여행
지난겨울 아버지와 G 63 AMG를 타고 함께 떠난 강원도 태백 여행은 근래 들어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메모리 시트와 히팅 기능을 적용한 시트는 장시간 주행에도 한결 편안했다. AMG 모델 뒷좌석엔 7인치 모니터와 전용 DVD 플레이어, 무선 헤드폰까지 구비했지만, 우리는 그보다 돌아가며 운전대를 잡는 재미를 선택했다. 시원하게 뻗은 도심의 아스팔트 도로부터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와인딩 도로, 비포장 시골길의 드라이빙 경험은 오랜만에 남자들만의 여행을 떠난 아버지와 나에게 짜릿한 공감대를 선사했다. 향수에 젖게 하고, 흥미로운 감각을 느끼게 했으며, 차를 좋아하는 남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끝없는 수다가 이어지게 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꼭 닮았으면서도 아버지가 늘 표현하듯 ‘요즘 애들’인 나는 도심을 달리는 G 클래스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더 나이 들기 전에 G 클래스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곳곳을 여행해보고 싶다고 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벤츠 특유의 안정적이고 유유한 멋을 풍기며 달리다 어떤 험난한 환경이 닥쳐도 이겨낼 듯한 강인함을 발휘하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눈앞에 그려졌다. 그건 어릴 적아버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단상이기도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매력을 지닌 G 클래스처럼, 그렇게 여전히 건재한 노년을 보내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 여행을 통해 아버지와 남편보다는 ‘남자’라는 이름을 되찾고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G 63 AMG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제공 메르세데스-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