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ru Hou, 허우한루
베이징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큐레이터 경력을 쌓은 허우한루는 뼛속까지 큐레이터 DNA를 품고 산다. 전시를 기획하고 오픈하는 일상이 반복돼도 다시금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살펴본 뒤 전시를 개최하기 때문에 살맛 난다고 외친다. 20여 년 전 동료 큐레이터와 결혼까지 한 그의 삶은 1년 365일 오직 작가, 작품, 전시로 이루어져 있다. 명성은 단지 덤이다.
1 실험성 가득한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고 고백하는 허우한루는 아시아가 낳은 최고의 큐레이터다.
2 2007년 이스탄불 비엔날레 전시 공간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3 이스탄불 비엔날레를 위해 허우한루가 큐레이팅한 미디어 아트 작품.
이미 컬렉터가 장악해버린 2000년대 현대미술계에서 오직 전시와 작가에만 집중하는 큐레이터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기에 더욱 빛나는 허우한루. 컬렉터나 갤러리스트와 친분을 쌓아 명성을 드높이기보다 가능성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전시 기회를 제공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는 아시아 출신 큐레이터로는 드물게 세계 미술계의 중심에서 활동해왔다.
미술 전문지 <스컬프처 매거진>의 편집장이자 미술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캐롤리 테아는 한 인터뷰에서 허우한루를 이렇게 평했다. “중국 출신이면서 파리와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활동 중인 그는 동서양 미술의 컬래버레이션을 제대로 실현하고 밸런스를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큐레이터입니다.”
베니스(1999년, 2003년, 2007년)를 포함해 상하이(2000년), 광주(2002년), 이스탄불(2007년), 리옹(2009년), 오클랜드(2013년) 등의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를 넘나들고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규슈 구마모토 현대미술관, 광저우 타임스 미술관, 홍콩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등을 위해 아트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이 기획한 전시를 오픈하기 직전과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려고 마음먹는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20년 지기 동료 큐레이터이자 아내인 에블린 후안노와 함께 이른 아침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도 더없이 소중하다며 인간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는 그를 만났다. 아내와 커피를 즐길 시간에 인터뷰를 진행하는 생소함 때문인지 그는 커피를 들이켜다시피 마셨지만 인터뷰만큼은 블렌딩 향 가득 피어나듯 은은한 유쾌함으로 번져나갔다.
1 아내이자 동료 큐레이터인 에블린 후안노와 여행 중에 찍은 사진.
2 2010년 10월 허우한루가 상하이 록번드 미술관에서 큐레이팅한 전 중 쑨쉰의 ‘Beyond-ism’.
3 2008년 샌프란시스코 미술대학(SFAI)에서 근무하던 당시 큐레이팅에 참여했던 전시 중 작가 아델 아브데스세메드의 작품.
4 허우한루가 2007년 샌프란시스코 미술대학에서 큐레이팅했던 전시 중 제니퍼 알로라 & 기예르모 칼사디야의 작품.
베이징에서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긴 후 큐레이터 커리어를 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이징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1980년대 중국 미술계에서는 큐레이터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생소했습니다. 저도 1990년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전에는 잘 몰랐어요. 베이징 중앙 미술 아카데미에는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고자 입학했습니다. 출발은 아티스트였던 거죠. 가끔씩 베이징에서 비평 일을 하기도 했지만 큐레이터와는 거리가 있었어요.
현재 파리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그 두 도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파리는 뉴욕, 런던과 더불어 현대미술을 오롯이 반영한 중심지입니다. 또 유럽에서 가장 혁명적이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죠. 파리에 있으면 늘 긴장감을 갖고 미술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랜 역사와 뒤엉켜 있는 실험성이라는 측면에서요.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 연안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서양과 이어주는 문화도시이기 때문에 특히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16년 동안 파리에 머물다 이곳으로 처음 옮겨왔을 때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두 도시의 매력이 각기 다르지만 큐레이팅을 위한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는 똑같아요.
1, 2 전 중 네드코 솔라코프의 설치 작품 ‘I Want Back Home(Said the Big Frog)’ 전경.
3 페드로 카브리타 레이스의 ‘In Here, Out There’.
2000년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과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많은 한국 작가를 만나고 작품을 보셨을 텐데,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 어떻게 발전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벌써 13년 전이군요. 이 기간에 한국 현대미술은 크게 두 세대가 눈에 띄게 활동한 것 같아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작업을 시작한 작가군과 그 이후 세대가 말이죠. 앞 세대는 주로 정치, 사회에 얽힌 어두운 소재를 표현했고 다음 세대는 일상의 개인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통해 한국은 아시아 미술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어요. 정체되지 않는 역동성을 증명한 거죠. 그리고 광주비엔날레(1995년 시작)와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1998년 시작, 2002년 이후 부산비엔날레로 변경), 서울미디어시티(2000년 시작), 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2004년 시작),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년 시작) 등을 통해 한국 미술을 꾸준히 세계에 소개했습니다. 이로 인해 해외 메이저 갤러리도 한국 작가 전시를 선호하게 됐죠.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을 때 어떤 프로젝트에 중점을 뒀나요? 부대 행사를 줄이고 전시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개막식은 진행하되 폐막식은 없앤 점도 참신했죠. 영속성을 강조하는 비엔날레로 기억되고 싶었거든요. 더불어 일부 전시를 중외공원, 5·18자유공원, 남광주역 도심 철도 폐선 부지 같은 도심으로 끌어낸 기획도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있습니까? 너무 많아서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예요. 이 자리를 빌려 언급하지 못해도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이불, 김수자, 김홍석, 김소라, 최정화, 함진, 이주요, 양혜규, 플라잉시티 등이 떠오르네요. 세계 미술계에도 알려진 작가들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비엔날레나 전시가 있다면?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비엔날레와 전시를 기획했어요. 대규모도 있고 소규모도 진행했죠. 솔직히 모든 전시가 기억에 남습니다. 특정 비엔날레를 거론하며 ‘가장’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언제나 도전하는 마음으로 허우한루라는 이름을 걸고 기획하니까요.
1 2012년 SFAI 내 월터앤맥빈 갤러리에서 소개한 작가 린이린의 작품.
2 SFAI 재직 중 큐레이팅한 퍼포먼스 작품.
3 허우한루가 애정을 갖고 큐레이팅을 진행한 알제리 작가 아델 아브데스세메드의 작품.
4 아델 아브데스세메드의 ‘Helicoptere’. 8 2007년 1월 26일부터 4월 21일까지 SFAI에서 진행한 전의 풍경.
2000년 모국인 중국에서 개최한 제3회 상하이 비엔날레에 참여하셨는데, 상하이 비엔날레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상하이 비엔날레는 중국에 현대미술을 소개한 첫 번째 국제 미술 행사입니다. 중국 미술의 가능성을 믿고 시작한 거죠. 1996년 출범했으니 벌써 17년 전입니다. 오늘날 중국 미술이 상업성을 짙게 띤다는 비판이 있지만 상하이 비엔날레를 통해 실험적인 작가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세계 속 중국 미술을 알리면서 동시에 중국 속 세계 미술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지요.
중국 미술은 향후 어떻게 진행될까요? 솔직히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중국 미술이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체계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중이 느끼는 미술은 여전히 멀기만 하죠. 미술은 상류층을 위한 엘리트 문화가 아니라 대중과 호흡하는 문화여야 하는데 아직 그런 점에서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합니다. 대중도 결국 미술계의 진정성을 이해해줄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영감을 주는 작가나 컬렉터, 갤러리스트가 있습니까? 저는 큐레이터이기 때문에 아티스트를 가장 먼저 염두에 둡니다. 전위적 조형 작품과 퍼포먼스로 널리 알려진 독일 작가 요제프 보이스나 프랑스 전위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은 언제나 제게 샘솟듯 강렬한 아이디어를 선사합니다. 흑인 인권을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해온 작가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도 제게 큰 힘이 됩니다.
현재 구겐하임 미술관 아시아예술위원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아시아 미술을 위한 컨설턴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문화 지역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구겐하임의 의지를 반영한 위원회지요. 최근에는 아부다비에 오픈할 ‘구겐하임 뮤지엄 인 아부다비’를 위해 시장조사를 하고 큐레이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어떤 소양을 갖추어야 할까요? 예술가와 지적인 교감을 나누고 그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제대로 소개할 방법을 찾는 사람이 큐레이터지요. 따라서 큐레이터는 이 일을 하고자 마음먹은 순간 열정을 가득 품어야 하고 마음은 활짝 열어야 합니다. 물론 미술 관련 지식을 풍부히 쌓는 건 기본이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늘 도전하는 자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큐레이팅한 전에서 포즈를 취한 허우한루.
부인은 어떤 큐레이터입니까? 프랑스 출신으로 1990년대 후반 파리 8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스위스 베른 쿤스트할레 프로젝트 룸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어요. 2005년 체첸 이머전시 비엔날레를 출범시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죠. 지금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저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그녀를 만났나요? 프랑스에서 만나 불같이 사랑했죠. 결혼하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아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작가 중 누구를 주목해야 할까요?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저와 작업한 작가 중에서 꼽는다면 2004년과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고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비주얼 아트 듀오 알로라 & 칼자딜라와 조각가로 명성을 쌓고 있는 멕시코 출신 개념 작가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를 들고 싶네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 지역 출신 작가들과 자주 작업하고 있어요. 모두 놀라운 아티스트입니다.
큐레이터로 살아오면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전시를 오픈하기 직전의 찰나를 무척 즐깁니다. 또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자 마음먹는 순간도 소중하죠. 태생적으로 큐레이터 DNA를 타고났나 봐요.
2013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5월에 개최하는 제5회 오클랜드 트리엔날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가 뉴질랜드 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큐레이팅 방법을 구상 중입니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저도 엄청 기대하고 있죠. 다른 프로젝트가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에요.
에디터 조기준
사진 제공 록번드 미술관, 이스탄불 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