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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메종 & 오브제 파리, 독일 쾰른 국제가구박람회,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등 매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디자인 축제. 디자인 거장뿐 아니라 젊고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작품이 한데 모이는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을 만났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그들의 독창적이고 신선한 디자인 세계를 탐구한 시간.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기간에 휴먼스케일과 협업한 전시장. 인체공학적인 트리아 체어를 선보였다.

과학과 만난 디자인
2017년 독일 쾰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주목받은 미국 출신 디자이너 토드 브래처(Todd Bracher). 매년 우수한 디자이너를 선정, 하우스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Das Haus-Interiors on Stage’에 초청된 최초의 미국인이다. 밀라노에서도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4월 초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기간에 브레라에 위치한 한 카페를 휴먼스케일과 협업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그는 뉴욕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0년간 코펜하겐, 밀라노, 파리, 런던 등지에서 일했다. 그 때문일까. 그의 디자인은 아메리칸과 유러피언 디자인,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생물진화론과 자연도태설을 확립한 다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탐구하는 과학자나 연구자에게서 디자인 영감을 얻는다는 그.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구조적이고 효율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토드 브래처는 3M, 세라룽가, 자노타, 조지 넬슨 등 세계적 브랜드와 협업하며 미국의 차세대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다.

1 토드 브래처    2 3M과 함께 출시한 에너지 효율적인 라이트폴스 LED 조명.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과학과 물리에도 관심이 많았다. 과학과 연관된 예술가가 되고 싶어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유럽 각지에서 10년간 공부하고 일했다. 미국에서 좋은 디자인이란 아름다움과 시장성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유럽은 달랐다. 덴마크에선 제품의 품질을 최고 수준으로 높이는 법을 익혔고, 이탈리아에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쳤다. 프랑스에서는 기술보다 우아함을, 영국에서는 개성 있는 디자인을 연구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 덕분에 아메리칸 디자인과 유러피언 디자인을 구분 짓지 않고 나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디자인 철학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나무를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나무가 아름답다고 여긴다. 하지만 나무가 자란 위치나 잎 모양, 가지의 너비, 성장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왜 그곳에 놓여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완성한다.

휴먼스케일과 협업한 트리아 체어도 그런 원리인가? 맞다. 달라진 사무 공간의 요구를 반영한 작품이다. 사무실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고 직장인은 한 의자에 오래 앉아 일한다. 팔걸이나 레버가 없어도 엉덩이의 움직임에 따라 시트가 움직이게 제작했다.

3M과 함께 출시한 라이트폴스 LED조명도 과학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조명의 본질은 공간을 밝히는 것이지만 눈부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물리학자와 협업했다. LED의 밝기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3M 필름을 사용해 눈부심을 방지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물리적·과학적으로 디자인한 또 다른 작품은? 수학과 디자인은 유기적 관계라고 생각한다. 조지 넬슨의 플로라 화병, 제로퍼스트 갤러리의 라이브리(libri) 라운지 체어는 유려한 곡선미가 특징인데 미적 목적이 아니다. 제품을 고정하는 데 필요한 3개의 점을 연결하려다 보니 탄생한 것이다. 효율적이고 구조적이며 자연스럽다.

올해 독일 쾰른 국제가구박람회의 ‘Das Haus’에 초청된 최초의 미국인이 되었다. 그들이 공동 작업자로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집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연구하고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떤 디자인이었나? 오픈 리버스 디자인. 지붕이 떠 있는 개방형 구조 그리고 하나의 공간에 여러 역할을 부여한 집. 예를 들어 자연 체험이 가능한 욕실,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주방 등 기존 공간의 요소를 재편성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도 관심이 있나? 휴먼스케일과 일하며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한다. 단순히 탄소 배출이 없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환경 정화 기능을 지닌 제품으로 발전시키는 것. 재생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일부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는? 내 작업은 점점 더 인간 과학에 접근하고 있다. 과학에 기반을 둔 제품을 만드는 일이 가장 흥미롭다. 나중에는 싱글 엔진 비행기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

1 신디 크로퍼드에게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자노타 토드 사이드 테이블.
2 휴먼스케일과 함께 만든 베셀 샹들리에 조명.
3 도넛이 연상되는 형태로 차곡차곡 쌓을 수 있게 디자인한 세라룽가의 붐 칵테일 테이블 세트.
4 ‘읽을 거리가 있는 휴식’을 구현한 제로퍼스트 갤러리의 라이브리 라운지 체어.

꽃과 소멸의 미학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현재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마르친 루사크(Marcin Rusak).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심오한 메시지를 품은 그의 작품은 2015 페리에 주에 아트 전시회에서 올해의 위너로 선정되었으며 2016 <웰페이퍼>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고의 자연 물성(Best Natural Selection)’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7년 메종 & 오브제 파리의 라이징 탤런트로 선정되며 한 해를 시작했고 최근 런던 현대응용미술관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런던의 왕립예술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끊임없는 질문과 리서치를 통해 디자인의 토대를 더욱 단단하게 굳혔다. 가장 대표적인 플로라(Flora)는 꽃과 레진을 굳혀 만든 조명과 가구 컬렉션으로 그만의 시적인 감각 그리고 소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노하우가 깊이 스며 있다. 마르친 루사크가 심도 있게 다루는 ‘소멸’, ‘인생의 덧없음’ 등의 가치와 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의 작품이 있다.

마르친 루사크.

1 밀가루와 비왁스 등의 재료로 만든, 언젠가 부패하고 마는 페리셔블 베이스.
2 다양한 식물의 접목을 통해 이상적인 꽃을 표현한 몬스터 플라워.
3 버려진 꽃을 이용한 패턴 패브릭 ‘웨이스트 플라워 텍스타일(Waste Flower Textile)’.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훼 가업을 이어온 집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세대에 화훼업을 시작해 아버지도 가업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업이 끊겼다. 어릴 적 황량하게 버려진 온실의 풍경을 보며 자랐다. 꽃을 주제로 작업하는 것은 그때의 영향 때문이다. 우린 모두 꽃을 사지만 꽃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지 못한다. 꽃이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소비패턴을 드러내는 좋은 매체라 생각해 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초기작 플라워링 트랜지션(Flowering Transition) 시리즈는 시장에서 버려진 꽃을 모아 작업했는데, 이런 특별한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유년 시절 집에 있던 우드 캐비닛을 유독 좋아했다. 패널에 새겨진 자연의 모습에 매혹된 것이다. 이를 깨닫고 처음으로 런던에 있는 꽃시장을 방문했다. 덜 싱싱하거나 망가졌다는 이유로 버려진 꽃을 모아 오는 것이 당시의 일상이었다. 그것을 이용해 무엇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하얀 천에 꽃을 일렬로 세우고 동그랗게 말아 프레스로 압축했다. 꽃은 그 자체로 패턴이 되었고, 새로운 창작물로 거듭났다. 자연 상태의 불안정한 염료라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바래는 것 역시 작품의 일부다.

또 다른 작품 페리셔블 베이스(Perishable Vase)도 보존성이 떨어지는데, 디자이너가 일반적으로 대를 물려 쓰거나 타임리스한 가치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처럼 보인다. 밀가루, 비왁스, 셸락(깍지벌레의 분비물에서 얻은 천연수지)으로 만들어 서서히 부패하는 꽃병이다. 꽃이 시들고 꽃병도 시든다는 의미를 담았다. 우리는 수많은 필요 없는 물건과 소비에 갇혀 산다. 기능상 문제가 없어도 휴대폰의 교체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처럼. 반대로 ‘물건이 저절로 소멸한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으로 만들었다.

런던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던 중 네덜란드로 떠난 사연은? 세계적으로 농업, 식물 및 생명공학으로 유명한 바헤닝언 대학교에서 꽃에 대해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함이다. 더 오래가고, 더 좋은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꽃, 화훼 재배자·소매업자·소비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꽃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연구진의 도움을 받아 대나무 줄기에 난꽃이나 백합을 접목하며 이름처럼 변종에 가까운 다양한 ‘몬스터 플라워(Monster Flower)’를 만들어냈다.

메종 & 오브제 파리에 출품한 ‘플로라(Flora)’ 컬렉션을 만든 계기는? 덧없는 것, 영원하지 않은 것과 소멸하는 것은 나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몬스터 플라워’ 연구가 끝나면 화석의 한 단면처럼 자연의 일면을 오브제에 담겠다고 생각했다. ‘플로라’ 컬렉션은 레진 속에 꽃을 넣어 굳힌 후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두운 빛의 레진 속에서 다채로운 색을 품은 꽃이 은은하게 빛난다. 썩거나 뒤틀리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당신의 작품은 현대적 의미의 아르누보 예술로 불린다. 아르누보의 목적처럼 아름답고 유용한 디자인을 삶에 끌어들여 일상 속 미적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플로라’ 컬렉션은 테이블, 조명, 디바이더, 벽 장식 등 다양한 가구와 소품으로 구성했다. 16세기에 유행한 플랑드르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일상 곳곳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레진에 주목한 이유는? 꽃은 쉽게 변하고 파손될 수 있는 매우 약한 존재지만 레진을 만나 그 생명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산물인 비정형의 꽃과 원하는 대로 모양을 잡을 수 있는 레진은 소재의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드라이플라워를 주로 사용하는데, 생화를 레진 속에 넣은 작품도 있다. 생화는 수분이 빠지고 마르면서 색이 변하거나 레진 안에 빈 공간을 남긴 채 사라지기도 한다.

블랙 레진과 함께 코퍼 소재를 조합했더라. 화려한 플라워 패턴에 비해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하게 디자인을 풀어낸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 견고함을 느낄 수 있도록 코퍼 소재를 더했다. 꽃을 모으고 고르는 것은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꽃의 색과 볼륨감을 따져 전체적인 모습을 구성한다. 현재 몰두하고 있는 것은? 플라워 인큐베이터를 만들고 있다. 물과 영양을 공급하고 온도를 조절하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기계를 통해 꽃의 수명을 얼마나 연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1 꽃을 넣어 굳힌 레진의 단면을 얇게 잘라 붙인 플로라 스크린.
2 코퍼 소재로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견고함을 더한 플로라 커피 테이블.
3 균형미를 살려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플로라 램프.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김윤영(snob@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