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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rt Is Made: [reSOUND: 울림, 그 너머]

ARTNOW

디스트릭트 아트프로젝트의 첫 번? 전시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렸다

지난 2020년, 서울 삼성역 사거리가 전 세계 미디어의 폭발적 관심을 모았다. 케이팝광장 앞 코엑스아티움 건물 대형 전광판의 미디어 아트 작품 ‘Wave’ 때문. 도시 한복판에 마치 파도가 눈앞으로 밀려오는 것 같은 8K 고화질 3D 영상이 바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회사 디스트릭트의 작품이었다.
디스트릭트가 창립 20주년을 기념, 보다 많은 사람과 교감하기 위해 출범시킨 문화 예술 협업 플랫폼 ‘디스트릭트 아트프로젝트’, 그 첫 번째 전시가 지난 6월 21일부터 8월 25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reSOUND: 울림, 그 너머〉다.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크리에이터들의 몰입형 설치, 전 방향 4D 사운드, 다채널 시네마틱 비디오, 키네틱 사운드, 인터랙티브 설치, 섬유 오브제, ASMR 등 다양한 범주를 아우르는 작품을 문화역서울284에서 선보인 전시. 그간 디스트릭트가 주로 해온 압도적 스케일의 시각적 자극에서 확장, 청각과 촉각 등 보다 다양한 감각을 통해 사람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이 전시가 펼쳐진 문화역서울284라는 공간이다. 1922년 착공, 1925년 완공. 일본 건축가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한 르네상스 건물은 붉은 벽돌과 화강암 바닥, 인조석을 붙인 벽, 박달나무 바닥 등 당시 흔히 볼 수 없는 유럽풍의 이국적 건물로 큰 화제를 모았다. 2004년 구역사 폐쇄 이후 1925년 완공 당시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완료해 2011년부터 문화역서울284라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디스트릭트는 전시 공간으로 사용한 각 공간의 장소적 맥락과 그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 지난 100년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가 되어온 이 역사적 시공간을 오감을 자극하는 몰입형 전시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회사로서 디스트릭트를 상징하는 ‘픽셀’을 콘셉트로 디자인한 각 전시 공간의 입구.

 중앙홀 ‘Ocean’ 
오가는 사람을 담는 플랫폼

지난 2022년 전쟁기념관에서 처음 선보인 ‘Ocean’은 디스트릭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 집채만 한 검은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잔뜩 성난 하늘은 당장이라도 폭풍우를 몰고 올 것 같다. 한국 인디 밴드 1세대를 대표하는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음악감독, 프로듀서로 각광받고 있는 장영규와 협업해 제작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로 강렬한 긴장감을 실감 나게 전달한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이 작품은 토스카나 양식을 차용한 중앙홀의 웅장한 아치와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디스트릭트는 수많은 사람이 오갔을 이 공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화면을 반사하는 소재로 만든 플로어를 추가, 관람객이 직접 그곳에 올라가 신체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되어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더불어 퍼포먼스와 요가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더해 다양한 상황과 오가는 사람을 담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했다.

 3등 대합실 ‘Imagined World’ 
인간 없는 세상의 소리

과거 경성역의 3등 대합실은 일반석 승객이 대기하던 장소였다. 공간은 넓지만 저렴한 요금에 맞추기 위해 장식은 무척 소박했다고 전해지지만, 철근콘크리트가 노출된 천장은 당시 보기 힘든 첨단 건축 공법이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공간 음향 컬렉티브 모놈(Monom)은 이곳에 들어오는 빛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선보인 이 작품에서 모놈의 공동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윌리엄 러셀(William Russell)은 지구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시각적 요소를 제거한 360도 전 방향의 사운드 공간에 물의 움직임, 유리와 반짝임 등으로 구성한 상상의 세계를 20분간 4D 입체 사운드로 펼쳐 보인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오직 청각에 집중한 채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1·2등 대합실 ‘Catharsis’ 
곤충이 되어 바라본 원시림

1·2등 대합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간결한 장식의 샹들리에와 공간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아르데코 문양으로 장식한 거대한 기둥. 영상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공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디스트릭트는 ‘Catharsis’의 작가 야코브 쿠스크 스텐센(Jakob Kudsk Steensen)과 함께 전시 공간을 둘러본 후 1·2등 대합실에 맞춰 디자인한 3면 LED 스크린 형태의 전시 방식을 제안했다. 덴마크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야코브 쿠스크 스텐센은 폭넓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게임을 연상시키는 새로운 세계를 조형하는 작가. 오랜 기간 현장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학자, 물리학자, 작곡가, 사운드 엔지니어 등과 협업, 새롭게 렌더링한 디지털 영상을 통해 고대 원시림의 아름다운 풍경을 곤충의 시점으로 볼 수 있게 했다. 더불어 3면 LED 스크린의 반대편 선반에서 작가의 현장 리서치 사진과 작품 제작 과정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부인 대합실 ‘Echo’ 
공간과 소리로 표현한 블랙홀

경성역을 지은 1920년대, 남녀가 유별하던 그 시절 기차에 함께 타는 건 낯선 상황이었다. 특실 승객 중 남성은 1·2등 대합실에서, 여성은 부인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작지만 아늑하던 이 공간이 블랙홀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설치 작품 ‘Echo’를 통해 180도 바뀌었다. 〈reSOUND: 울림, 그 너머〉 전시를 기획한 디스트릭트 LIVX 본부의 기획자들이 국내외 천문학자와 입자물리학자, MIT 사운드랩, 스피커 제작자 등 외부 전문가와 협업해 움직이는 나트륨 램프와 8채널 사운드 시스템으로 블랙홀 주변 에너지의 이동을 표현한 작품. 블랙홀은 물론 도플러 효과, 일반 상대성 이론 등 물리학 이론을 공간적으로 표현한다. ‘Echo’는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외부 크리에이터와 협업하는 플랫폼으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블랙홀의 사운드스케이프에 우주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와 협업한 완전히 새로운 버전의 ‘Echo’를 다른 도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귀빈실 ‘Tactile Orchestra’ 
악기로 변한 인조 모피

‘Tactile Orchestra’는 촉감에 반응하는 부드러운 인조 모피로 덮은 벽으로 만든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이 벽을 쓰다듬거나 터치하며 다채로운 소리를 발견할 수 있고, 벽을 악기 삼아 다른 관람객과 함께 화음과 리듬을 만들며 마치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한 색다른 집단적 창작 경험을 제공한다. 이 작품을 설치한 귀빈실은 대한제국 황족과 국가 귀빈부터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까지 역사에 기록된 유명 인사들이 기차를 기다린 곳. 대리석 벽난로와 호사스러운 거울, 벽지가 ‘Tactile Orchestra’의 악기로 변한 인조 모피와 흥미롭게 어울린다. 소리와 음악이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리고, 주변 환경과의 연결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알츠하이머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용 제품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2층 그릴 ‘Flow’ 
압축적으로 표현한 미술의 흐름

1925년 경성역 준공과 함께 문을 연 2층 ‘그릴’은 스테이크를 비롯해 커피와 홍차, 맥주 등 서양 음식을 대중에게 소개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다. 소속 요리사만 무려 40명이나 된 대규모 고급 레스토랑으로 일본인과 조선총독부 고관, 지식인과 멋쟁이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 드넓은 공간을 채운 작품은 디스트릭트의 신작 미디어 아트 ‘Flow’. 올해 초 런던 아우터넷(Outernet)에서 초연했으며, 미술사의 흐름을 담은 초현실적 메가 아트 퍼포먼스 작품이다. 국내에 공개하는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 디스트릭트는 4면 모두 스크린을 설치하기 어려운 그릴 공간에서 몰입감을 더하기 위해 위쪽 스크린을 관람객을 향해 앞으로 구부러지게 설치했다. 마치 평면 화면이 비좁은 듯, 천장까지 뻗친 스크린에서 〈고스트버스터즈〉의 마시멜로맨을 닮은 캐릭터가 호주 출신 작곡가 트리스탄 바턴과 협업한 생동감 넘치는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이고 춤추며 알타미라 동굴벽화부터 컨템퍼러리 아트까지 미술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역서울284 1층과 2층의 독립된 전시 공간을 연결하는 ‘사이 공간’을 디스트릭트 LIVX 팀의 기획과 피터, 폴 앤 메리의 디자인을 통해 일관된 콘셉트로 구현했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디스트릭트, 문화역서울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