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omparable Innovator
브레게를 워치메이킹의 명가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위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화해온 데 있다. 1775년 브랜드 창립 이래 총 200여 개의 특허 획득으로 결실을 맺었고 그 절반은 최근 10년간 이룩한 것으로, ‘투르비용을 개발한 워치메이커’란 문구만으로 이들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브레게의 수많은 업적 중, 시간 측정 방식 자체에 변화를 가져온 독보적 발명 8개를 꼽았다.
현재 브레게가 선보이는 투르비용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발명한 투르비용의 설계 드로잉
1 중력을 이기다
투르비용, 1801년 브레게는 중력이 무브먼트의 작동에 치명적이며, 시계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오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의 손목에 착용하는 시계에 중력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1분에 한 바퀴 회전하는 케이지 안에 시계의 심장인 밸런스를 삽입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이것이 시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투‘ 르비용’이다. 헤어스프링과 레버, 이스케이프 휠 등 중력에 가장 예민한 부품을 케이지 안에 넣는 레귤레이팅 방식으로, 1806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대중에게 첫선을 보인 후 전 세계 시계 애호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2 세계 최초의 오토매틱 시계
퍼페추얼, 1780년 지금이야 로터가 회전하며 동력을 축적하는 오토매틱 방식이 흔하지만, 17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핸드와인딩만 존재하던 시계 구동 방식에 경이로운 기술을 도입한 것이 바로 브레게다. 창립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780년 오늘날의 오토매틱과 동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태엽을 감지 않고도 움직임에 따라 와인딩이 가능한 메커니즘을 개발했고, 이를 ‘퍼페추얼(perpe′tuelle)’이라 명명했다(퍼페추얼 캘린더와는 다른 의미!). 대담한 발상과 기술력으로 완성한 이 시계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브레게는 이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7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1794년 완성한 퍼페추얼 No.5 회중시계
3 시계를 손목에 얹다
최초의 손목시계, 1810년 브레게는 기존 타임피스의 개념을 완전히 전복한 새로운 형태를 선보였다. 바로 손목에 찰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낸 것. 회중시계가 통용되던 1810년, 나폴리의 왕비 카롤린 뮈라(Caroline Murat)의 요청으로 타원형 컴플리케이션 시계 케이스와 금사를 꼬아 만든 브레이슬릿을 연결한 모습은 분명 손목에 올린 최초의 손목시계였다(러그를 통해 스트랩을 연결하는 현재의 방식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최초의 손목시계는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었고, 주문 제작 기록으로 만 남아 있는 상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시계가 브레게의 대표적 여성 컬렉션인 레인 드 네이플이다.
카롤린 뮈라의 시계를 재해석한 레인 드 네이플

카롤린 뮈라의 손목시계 주문 제작 기록
4 크라운의 시초
스템 와인딩 시스템, 1830년 이전까지 회중시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시간을 조정하는 건 별도의 ‘열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브레게는 키를 없애고 스템(stem)으로 와인딩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는 크라운(용두)의 초석이 됐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아들이 샤를 드 레스팡(Charles de l’Espine) 백작에게 판매한 No.4952 시계가 최초의 스템 와인딩 시계로 12시 방향의 장치를 이용해 시곗바늘을 돌리거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현재는 1833년 판매한 No.5015 모델만이 브레게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5 한 쌍의 시·분침으로 두 곳의 시간을 알리다
인스턴트 점프 듀얼 타임, 2011년 클래식 오라 문디는 브랜드 고유의 특징을 담은 드레스 워치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브레게의 혁신을 담은 놀라운 기술이 내재해 있다. 하나의 시침과 하나의 분침으로 두 곳의 시간을 표기하는 인‘ 스턴트 점프 듀얼 타임’이 바로 그것! 8시 방향의 푸시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핸드가 회전하며 다른 곳의 시간을 알리는 기능으로, 홈과 로컬 두 곳의 시간을 미리 설정할 수 있는 기계식 메모리와 이들이 개발한 독창적 메커니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건 시간뿐 아니라 해당 시간대의 낮과 밤 표시, 날짜의 변화까지 동시에 보여준다는 사실. 시곗바늘을 추가하는 기존 GMT 시계의 패러다임을 깨부순 셈이다.
클래식 오라 문디 5717

세계 최초의 10Hz 고진동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모델, 타입 XXII 3880

실리콘 소재 헤어스프링을 사용한 타입 XXII의 이스케이프먼트 부분
6 7만2000번의 진동
세계 최초의 10Hz 진동, 2010년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시계의 심장부인 밸런스의 진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브레게는 2010년 시간당 7만2000번 진동하는 10Hz 밸런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이에 대한 역사를 새로 썼다. 대부분의 시계는 1만8000에서 2만8800번 진동하며, 하이비트라 불리는 시계조차도 3만 6000번 진동하니 실로 놀라운 기술력이라 할 수밖에! 밸런스에 사용하는 헤어스프링의 소재를 실리콘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며, 이는 금속보다 가벼워 부품 자체의 질량을 줄일 수 있었다. 진동수 증가는 시계의 안정성과 정확성을 보장하며, 크로노그래프의 경우 더욱 세밀한 측정이 가능하다. 타입 XXII 3880 모델의 크로노그래프 초침이 1분에 2회전(보통 크로노 시계의 경우 1분에 1회전)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7 메커니즘에 자성을 도입하다
세계 최초의 자성 거버너, 2010년 브레게는 자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속 소재를 실리콘으로 대체한 덕에 시계업계에서 금기 사항이던 자성을 역이용할 수 있게 된다. 자성을 띤 한 쌍의 거버너가 그 결과물로, 실리콘 헤어스프링을 탑재한 밸런스 주위에 놓인 거버너는 밀고 당기는 힘 덕에 중력에 상관없이 밸런스의 진동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시계 역사상 최초의 자성 레귤레이팅이며, 실리콘 소재 헤어스프링이 큰 역할을 했다. 혁신은 또 다른 혁신을 낳는 법이다.

밸런스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성 거버너
8 자성과 고진동을 통한 초정밀 시계의 탄생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2012년 자성을 도입한 것으로 모자라 브레게는 2010년 11월 자성 피벗(magnetic pivot)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다. 이 부품을 통해 시계에 미치는 자성의 효과를 상쇄하는 동시에, 밸런스의 안정성과 회전력을 개선한 것. 밸런스 축은 강한 자성(약 1.3테슬라)을 띠는 극 사이에 놓이며, 자성은 ‘인위적으로 만든’ 중력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계가 어떤 위치에 놓이더라도 중력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 더욱이 자석의 끌어당기는 힘 덕에 충격에도 밸런스 축이 금세 자리를 찾는다. 이를 탑재한 시계가 2012년 발표한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 모델. 앞서 말한 10Hz의 고진동 밸런스까지 적용한 이 시계의 오차는 하루 -1초에서 +3초에 불과하다. COSC가 정한 크로노미터의 오차 범위가 -4초에서 +6초임을 고려할 때 이 시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
밸런스와 그 축이 자성 피벗 사이에 놓여 안정적인 구동을 유도한다.

6개의 특허 기술을 적용한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
Standard of Beauty
브레게가 파인 워치메이킹의 표준으로 불리는 데는 240년 이상 이룩한 기술력뿐 아니라 시계의 스타일, 즉 미학적 측면에서도 앞서 나갔기 때문이다. 브레게 시계 고유의 특징 여섯. 브레게 애호가를 매혹시키는 요소임이 틀림없다.

1. 비밀 서명
다이얼 위에 브레게의 서명을 눈에 띄지 않게 각인한 것으로 금속과 에나멜, 자개 등 모든 다이얼에 새겼다. 왕족과 귀족에게 큰 사랑을 받은 브랜드인 만큼 모조품이 많았고, 이들과 차별화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1795년부터 사용했다.
2. 엔진-터닝 (기요셰) 다이얼
브레게 다이얼의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엔진-터닝 다이얼이다. 현재 많은 시계 브랜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요셰는 사실 1786년 브레게가 최초로 도입했다. 이전에는 주얼리와 시계 케이스 장식에만 사용했다고. 사실 이는 장식적 효과도 있지만, 다이얼에 들어오는 빛을 분산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이는 기능도 한다. 하나의 다이얼에 7가지 이상의 기요셰 패턴을 적용한 시계도 선보인다.
3. 고유 번호
브레게 시계의 다이얼(다이얼에 없는 경우에는 백케이스에)에는 고유 번호가 있다. 레퍼런스라 불리는 제품 번호와는 다른 것으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초기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이를 통해 각 시계의 기원과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4. 브레게 핸드
여타 브랜드가 이를 적용할 때도 ‘브레게 타입 핸드’라 명명할 정도로 브레게를 대표하는 특징! 달에서 영감을 받아 시곗바늘 양 끝에 개방 형태의 원을 달았다. 블루 컬러는 스틸에 열을 가해 완성하는 것으로 온도 한 끗 차로 색이 바뀌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
5. 웰딩 러그
브레게는 케이스와 러그를 따로 제작한 후 용접(웰딩)을 거쳐 부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그와 케이스를 통합해 찍어내는 것이 훨씬 간편하지만 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강도와 견고함, 착용감도 우수하기 때문. 스트랩은 스프링 바가 아닌 스크루 방식으로 고정해 쉽게 빠지지 않는다.
6. 플루팅 케이스 밴드
정교하게 세로로 홈을 새긴 케이스의 측면. 오트 오를로주리 시계나 유니크 피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계는 케이스 측면의 세공을 생략하는데, 브레게의 드레스 워치엔 이를 모두 적용해 미적 감각을 살리고 있다.
에디터 | 이현상 (ryan.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