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UNKNOWN
배제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공감각적으로 드러내는 터배리스 스트라챈.

터배리스 스트라챈 터배리스 스트라챈은 1979년 바하마 나소에서 태어났다. 2003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학사 학위를, 2006년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개념적이고 학제적인 그의 작업은 예술, 역사, 과학, 문화 비평 사이의 연결을 활성화해 우리의 감각, 지성, 호기심을 일깨우고 특히 기존에 학습한 지식을 재고하라고 요구한다. 스트라챈은 제12회 리옹 비엔날레,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서울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뉴욕과 나소를 오가며 작업한다.
우리는 과연 세상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전부일까? 어떤 예술 작품 앞에서는 의심과 질문에 휩싸인다. 아주 작은 틈새가 벌어지는 바로 그 순간, 많은 것이 우리를 향해 쏟아져 들어온다. 터배리스 스트라챈의 작업은 다채로운 물리적 시도를 거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에 도달한다. 폭발하는 우주처럼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자화상, 북극 탐험,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를 기리며 발사한 그의 흉상 조각을 얹은 인공위성 등 스트라챈만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통해 생겨나는 것은 단지 예술 작품만이 아닌, ‘세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운명은 과연 언제 결정되는 걸까요? 바하마에서 보낸 작가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예술’과 관련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제가 창의력과 음악, 예술, 색채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매년 12월 26일 자정에 시작되는 바하마의 축제 정카누(Junkanoo)였습니다. 어머니는 태어난 지 열흘 된 저를 처음으로 정카누에 데려가셨는데, 그 순간 정카누의 다감각적 본질이 제 안에 스며들었다고 믿습니다. 정카누를 설명하긴 정말 어려운데, 저도 아마 그런 연유로 축제에 즉각 매료되었을 겁니다. 한밤중에 특정 장소에서 열리는 정카누는 빛과 색, 이야기, 역사, 춤, 예술,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타임캡슐과 같습니다. 서구 예술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른 세계죠. 다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다시 정카누에 갔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것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지난여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린 〈Tavares Strachan: There is Light Somewhere〉는 규모와 구성 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전시였습니다. 전시장을 돌아보며 은유적 제목 또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매끄럽게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초의 미드커리어 서베이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썼나요? 저는 모든 프로젝트를 마지막 작품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매번 그 에너지를 전시의 모든 세부 사항에 담으려고 노력하죠. 헤이워드 갤러리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특히 관람객에게 집중했습니다.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전시 공간을 돌아다니는 경험 자체에서도 힘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서구 미술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것에서 힘을 얻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거든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배우며 힘을 얻긴 했지만, 전통적 의미의 회화나 조각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시장을 거니는 동안 사람들이 저 자신이 원한 바로 그 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동안 회화, 설치, 태피스트리, 세라믹, 네온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셨죠. 학부에서 유리를, 이후 조각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이력이 새삼 눈에 띄더군요. 미술의 전통적 장르 구분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이 궁금해집니다. 제 삶과 예술 창작의 원칙 대부분은 정카누 같은 축제에 내재한 다감각적 접근에서 비롯합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서구의 서툰 범주화가 정의하는 존재 방식, 사고방식, 창작 방식 등에 도전하고 벗어나려 노력해왔습니다. 학계에서 강조하는 모더니즘은 진보와 역사, 주관성의 선형성을 암시하는데, 이는 제 세계 경험과 전혀 맞지 않았거든요.
작가님의 작업에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어떤 이야기에 매료되나요? 나아가 사실과 허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성에 관한 문제보다는 우리 집단의식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시간이라는 요소가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이야기에 시간을 도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게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든 개념적인 것이든 말이죠. 저에게 가장 깊이 와 닿는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런저런, 또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모를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믿기 힘든 일이 대낮에,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가려진 이러한 역사적 서사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는 일에 주목하게 하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과연 무엇이 우리의 집단 기억으로 남는가에 대한 질문 말이죠.
작품을 통해 시스터 로제타 사프(Sister Rosetta Tharpe), 니나 시몬(Nina Simone), 킹 터비(King Tubby),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등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에서 로큰롤, 재즈, 문학을 아우르는 여러 실존 인물을 호명하셨습니다. 작가님의 문화적·예술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 이들이라고 짐작합니다. 이러한 인물의 공통점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하신 인물들을 연결하는 공통점은 모두 인간 정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근본적 신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뻔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이러한 가치를 현시대가 경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작업 ‘Encyclopedia of Invisibility’도 놀랍습니다. ‘백과사전’이라는 형식을 활용한 계기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 사전의 내용을 업데이트할 계획이 있는지도 말씀해주세요. 백과사전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질을 집에 가져오셨을 때 시작되었어요. 장갑을 끼지 않고는 만질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 책에 대한 경외심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사전을 보면서 왜 그 안에 나소에 있는 우리 공동체 사람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는지 궁금했어요. 그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고서야 알게 된 나와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백과사전을 조각으로 만들면서 그것을 풍자할 수도 있었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고 실제로 읽는 건 불가능하지만, 브리태니커에서는 완전히 삭제된 사람들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손실의 규모를 받아들이는 일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업데이트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 저는 항상 개정판에 추가할 항목을 수집하고 있어요. 사실 얼마 전에 포켓판 제작도 마쳤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탐색하는 방식도 흥미로워요. 고대 문명부터 현재, 극지방부터 우주까지 어떤 한계도 없이 자유롭게 그 모든 것을 아울러 하나의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귀결되잖아요. 제 작품 중 우주로 발사한 위성 ‘ENOCH’은 오브제 메이킹과 관련한 여러 교차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고대인들은 미라의 내장을 거두어 넣는 데 사용한 카노푸스 단지에 영혼을 담는다고 믿었지만, 그곳에 물과 씨엇, 쌀 등 보편적인 필수품을 담기도 했습니다. ‘ENOCH’은 이러한 여러 요소를 통해 사후 세계, 과학, 기술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B.A.S.E.C.’ 활동이나 ‘ENOCH’ 등의 작업은 마치 과학과 예술 두 분야에 걸쳐 있는 듯 보이는데, 일부 미디어에서는 ‘터배리스 스트라챈의 매체는 과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예술가로서 과학의 어떤 점을 활용하려고 하세요? 예술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데 능하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은 하나의 화살표예요. 제가 과학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때로는 저를 과학자로 오해하게 하지만, 사실 저는 권력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과학은 권력이 순환하는 많은 마디 중 하나일 뿐이죠. 따라서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제가 조사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춰진 것,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작업이 작가님 개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말씀하신 것과 같은 작업은 인간 정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금 일깨우는 동시에 인간의 행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이러한 폭력의 특징과 관련해 현대사회에서 잘못 표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폭력과 지워짐의 폭력이 문화적 대화에서 상대적으로 부재한다는 점입니다. 특정 서사가 제거되고, 집단 기억이 형성되는 방식에는 폭력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인류의 행보는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의 수준을 되새기게 합니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이야기의 또 다른 측면이 있기에 존재하고, 예술을 통해 이런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역사적 구조에서 배제된 이야기를 제 예술의 초점으로 삼는 것은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한 시스템을 취해서 그 시스템의 음모를 시대정신에 고정하기 위함입니다.
본인의 작업을 “현재 상황에 대한 무한한 저항(Infinite protest against the status quo)”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최근에는 무엇에 ‘저항하고자/반하고자’ 노력하세요? 저는 어떤 급진적 사회 변화도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제가 특정한 패턴에 빠져드는 것을 볼 때, 스스로 수정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려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의식이 있고, 그것이 제가 비판하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결국 제 저항은 성공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성공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저는 어떻게 제 성공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글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터배리스 스트라챈, 페로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