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의 르네상스
최근 해외 미술계에서 활약하는 한국 작가들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세계 유수의 갤러리를 점령한 거장들의 개인전부터 이제 막 포문을 연 신진 작가들의 국제 무대 진출까지, 최신 뉴스를 통해 알아본 세계시장 속 한국 미술의 현주소.
< SPHERES 7 >에서 관람객들이 이완의 비디오 작품 ‘Made In’ 시리즈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제공 313 아트 프로젝트

< SPHERES 7 >에 전시 중인 박기원의 설치 작품 ‘Garden’
사진 제공 313 아트 프로젝트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우환·김수자·이불·서도호·강익중·김아타 등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작가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물론, 이들 외에 또 다른 한국 작가를 찾는 해외 미술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 이제 유명 국제 전시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르물랭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 콩티뉘아 르물랭(Galleria Continua le Moulin)에서는 이라는 국제 전시가 막을 올렸다. 강변의 옛 공장 건물을 개조한 이곳은 애니시 커푸어, 다니엘 뷔랑 등 세계적 대가의 설치 작품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전시장을 다 둘러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리는 갤러리다. 12월 12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을 통해 한국 작가 이완과 박기원의 작품이 전시된다. 국내에서는 이미 인정받은 두 작가의 작품을 이제 국제 무대에서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완은 2014년 삼성미술관 리움이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한 작가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Made in’ 시리즈는 2012년부터 진행해온 독특한 대형 프로젝트. 그 시작은 이렇다.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평범한 아침식사가 얼마나 많은 나라의 생산품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깨닫고는, 직접 현지에서 생산한 재료로 한 끼의 아침식사를 완성하겠다고 결심한다. 캄보디아에서 쌀농사를 짓고, 대만에서 설탕을 생산하고, 중국에서 나무젓가락을 만드는 그의 프로젝트는 2016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렇듯 방대하고 무수한 과정을 거쳐 2016년 어느 날 완성될 그의 아침 식탁을 통해 관람객은 ‘한 끼의 평범한 아침식사에 담긴 허무와 모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아침식사 생산하기’ 프로젝트를 담은 비디오 작품 역시 이런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시아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사회의식도 함께 드러낸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2015년 313 아트 프로젝트, 2016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이완은 앞으로 세계무대를 누빌 차세대 한국 작가로 거론되고 있다. 에 참여한 또 한 명의 한국 작가 박기원은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인물이다. 한지를 여러 장 겹친 장지에 유화물감으로 색을 낸 회화 작품이 특히 유명한데, 평면이면서도 공간감이 풍부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또 다른 특기는 철사처럼 단순한 재료의 물성을 새롭게 해석하는 감각적인 설치 작품이다. 전시 첫날,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온 미술 관계자들은 이 2명의 젊은 한국 작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 콩티뉘아 르물랭의 디렉터 마리오 크리스티아니도 “이전까지 보지 못한 한국 작가들임에도 매우 독창적이며 주제의식이 분명하고 지적이다”라며 이들의 가능성에 감탄했다. 사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몇몇 작가는 이미 국제 무대의 중심에서 나름 인정을 받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해외에 기반을 둔 작가뿐 아니라 이른바 ‘국내파’도 해외 주요 전시에 자주 초청되고 있다. 활약하는 무대도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만이 아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새로운 미술 중심지라면 어디서든 한국 작가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치미술가 최재은은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체코 국립 프라하 미술관 내 성 아그네스 수도원에서 현대미술 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녀는 체코의 성녀 성 아그네스가 활동한 수도원이라는 특성에 맞게 ‘시간’을 통한 ‘치유’에 초점을 맞춘 사진, 영상, 설치 및 사운드 작업을 선보였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작가 양혜규 역시 현재 대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 중이다.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4’의 일환인 이번 전시를 통해 양혜규는 대표적 설치 작품 시리즈 ‘Medicine Men’과 ‘Female Natives’를 내년 1월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불의 작품 ‘태양의 도시II’. 관객들이 바닥에 놓인 거울 조각 사이를 걸어가도록 되어 있다.
촬영 전병철,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Kimsooja, An Album: Sewing into Borderlines, Site specific video installation at Mariposa Land Port of Entry, Nogales, Arizona, USA, 11:01 loop, silent, commissioned by the Art in Architecture Program, Fine Arts Collection, US 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2013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한국 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의 전시장 내부
한편, 선인장 같은 평범한 식물을 감각적으로 그려온 회화 작가 이광호의 작품은 최근 독립 출판사 지아슬라(Zioxla)가 발행하고 LA 카운티 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등에서 판매를 시작한 책 에 실렸다. 세계 각국의 작가 25인의 작품을 통해 식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다루는 현대미술을 소개한 책이다. 한국의 대표적 사실주의 작가 이광호는 지난해 한국과 인도의 수교 40주년을 기념하며 인도에서 열린 그룹전 에 참여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점차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2014 광주비엔날레에서 ‘침묵하는 북’으로 화제를 모은 홍영인도 최근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한국 작가다. 영국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2011년 런던 올림픽 기간 중 사치 갤러리에서 개최한 한국 현대미술 그룹전 <코리안 아이> 당시 갤러리 측에서 직접 선정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후 영국·한국·미국·프랑스·벨기에·인도·스웨덴 등을 오가며 꾸준히 개인전과 단체전을 선보였는데, 특히 국가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한국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내며 국제 무대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물론 기존에 이미 알려진 한국 작가들에 대한 해외 미술계의 사랑도 여전하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단독 초청 작가인 김수자의 경우, 대형 LED 스크린으로 제작한 명상적 비디오 작품 1점이 올해 8월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마리포사 입국장(Mariposa Land Port of Entry,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맞닿은 곳이다)에 영구 설치되었다. 김수자가 이 지역에 어울리도록 ‘경계’를 주제로 만든 작품 ‘An Album: Sewing into Borderlines’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붐비는 육로 입국장인 마리포사 입국장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유통되는 농산품의 주요 통관 장소. 이렇듯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유입 인구도 많은 지역에 작품을 영구 설치했다는 것만 봐도, 미국이 김수자의 작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강익중의 작품 역시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의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다. 최근 뉴욕과 뉴저지의 미술관에서 또다시 초청을 받았는데, 그가 영어 알파벳을 가지고 만들 새로운 작품은 내년 3월 뉴저지 뉴왁 뮤지엄에, 9월에는 뉴욕 퀸스 뮤지엄에 설치될 예정이다. 사실 국제적 명성만 놓고 보면 설치미술가 이불도 이에 못지않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의 첫 작가로 선정된 그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퐁피두 센터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과 전시 공간에서 활약해온 국제적 작가다. 최근 영국 버밍엄의 아이콘 갤러리(Ikon Gallery)가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며 이불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국제 무대에서 가장 주목하는 한국 작가를 꼽으라면 아마도 이우환일 것이다. 올해 6월부터 11월까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이우환의 작품만으로 전시를 열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관광 명소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전시 공간으로도 유명한데, 프랑스의 조각가 겸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를 비롯해 미국 작가 제프 쿤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이탈리아의 주세페 페노네 등 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곳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베르사유 궁전 관장은 이우환의 초대전을 앞두고 외신 기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우환이 베르사유에서 우리를 조용하고 시적인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환의 활약과 함께 한국 단색화 작가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 6월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한 단체전 <텅 빈 충만-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은 베이징과 헝가리, 폴란드, 독일 등을 거치며 내년 3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 전시는 권영우, 김택상, 문범, 박기원, 윤형근, 장승택, 정창섭, 정상화, 최명영,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 10명과 이기조, 김익영, 권대섭, 이강효, 문평 등 도예가 5명 그리고 사진가 민병헌까지 총 16인의 작가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표현하는 ‘비움’의 미학을 보여준다. “과거에도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한두 점씩 보긴 했지만 이렇게 세대별, 장르별로 다채롭고 집중적으로 소개한 전시는 처음이라 그 창의성에 무척 놀랐습니다.” 중국 미술 월간지 <예술당대>의 부편집장 쉬커가 지난 9월 항저우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전을 돌아본 뒤 남긴 소감이다. 학고재갤러리와 중국 삼상당대미술관이 함께한 이 전시는 백남준과 이우환을 비롯해 유근택, 이용백, 이세현, 홍경택, 김기라 등 한국 현대미술의 과거, 현재, 내일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 12명의 작품을 소개하며 현지에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과거에는 해외에 기반을 둔 작가의 국제 무대 진출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지만, 오늘날에는 국내파 작가 역시 한국 갤러리와 미술관의 활발한 해외 교류를 통해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미술 시장의 침체로 잠시 국제적 관심에서 멀어진 듯 보이던 한국 현대미술이 여전히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최근 들려오는 각종 해외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히 한국 현대미술의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작업 중인 작가 이불
촬영 김재원,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 Strange Plants >에 실린 이광호 작가의 작품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에디터 류현경
글 이규현(이앤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