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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느리게 걷기

LIFESTYLE

당신에게 LA는 어떤 도시인가? 세계 영화인과 스타가 몰려드는 할리우드, 쇼핑 천국인 로데오 드라이브와 베벌리힐스, 디즈니 월드와 샌타모니카 해변이 있는 도시? 모두 맞지만 LA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다이아나 강 대표가 오랫동안 생활한 제2의 고향이자 마음 통하는 오랜 친구처럼 친밀하고 익숙한 여행지 LA에서 즐기는 일상은 화려하지만 순수하고, 역동적이지만 느긋하다. 어느 여름 LA의 힐링 스페이스를, 그녀의 느릿한 발걸음을 따라 아주 여유롭고 유쾌한 기분으로 찾아 나섰다.

1 LA 파머스 마켓에는 이른 아침부터 지역 내 레스토랑의 셰프를 포함해 다양한 국적과 나이의 인파가 몰린다.
2 붉은 빛깔이 선명하게 오른 래디시 뭉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곳곳에 각종 신선한 유기농 채소가 풍성하다.
3 아침 메뉴에 곁들일 과일을 구입하는 다이아나 강 대표

사계절 내내 따뜻한 햇살이 넘실대는 이 도시는 여름이 되면 더욱 활기가 넘친다. 다이아나 강 대표는 매년 여름 베벌리힐스 인근에 있는 그녀의 LA 하우스에 여장을 푼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식견, 감각을 갖춘 그녀의 머스트 고 리스트에는 다이닝 플레이스는 물론 패션 멀티숍과 인테리어 숍까지 즐비하다. 특히 LA는 뉴욕 못지않은 미식 천국이다. 마리오 바탈리, 울프강 퍽 등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이 있고, 이전에 다이아나 강 대표가 인터뷰해 <노블레스>에 소개한 미모의 여성 셰프 수전 고인의 레스토랑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수준 높은 스시집과 아시안 퀴진 레스토랑도 다채롭다. 세계 각국의 셰프가 이곳에 몰려드는 이유는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쾌청한 날씨와 지리적 이점에서 얻는 신선한 식자재 때문. 넓은 땅에서 방목해 키운 고기, 앞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과 해산물, 북쪽 캘리포니아 지역에 넓게 분포한 와인 산지에서 공수한 다양한 와인까지 그야말로 풍성하기 그지없다. 또 여러 나라의 소수민족이 모여 살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음식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LA다. 그래서 LA의 파머스 마켓은 미국 서부 지역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고 특별하다. 다이아나 강 대표도 LA에 올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꼭 들르는 곳. 매주 두 번,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샌타모니카 지역이 대규모 시장으로 변신한다. 처음 자리 잡은 20여 년 전에는 채소와 과일 위주의 상점뿐이었지만 인근 지역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아이템도 다양해졌다. 유기농 야채는 물론, 드넓은 농가의 초원에서 방목해 건강하게 키운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의 육류,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부터 꿀이나 잼까지 각종 식자재와 식품이 넘쳐나고, 허브 화분과 다채로운 꽃도 풍성하게 피어 있다. 특히 LA 지역의 셰프들이 수요일 아침마다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이 전통처럼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다. 지금 가장 신선한 식자재를 구하기 위해 직접 파머스 마켓을 찾아 나선 셰프들, 이런 풍경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아나 강 대표에게도 이곳은 우물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낙네처럼 일상적으로 들르는 장소다. 샌타모니카 해변으로 나가 이른 아침 공기를 마시며 1시간 정도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주변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식사한 후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사기 위해 파머스 마켓으로 어김없이 발길을 돌린다.

1, 2 활기 넘치는 파머스 마켓의 상인들
3 롤링 그린스의 러스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매장 가득한 다채로운 인테리어 소품은 어느 것 하나 눈길 가지 않는 것이 없다.

한잔 마시기 위해 들르는 곳은 멜로즈 애버뉴에 위치한 어스 카페(Urth Caffe´)다. 운이 좋으면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LA에 5개나 있는 이 카페는 미국 HBO에서 방영한 할리우드 스타의 일상 모습을 그린 드라마 <앙투라지(Entourage)>의 배경 중 하나로 국내 20~30대 미드 팬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 20년 전인 1994년 처음 문을 연 이 카페는 ‘오거닉’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당시 최초로 장인이 만든 오거닉 커피를 선보였다. 21세기의 트렌드를 미리 알아본 선구적 공간인 셈이다. 특히 이곳의 ‘우간다산 고릴라 커피’는 커피 도매상인 오너가 원두를 구입하러 간 우간다에서 현지 농부들에게 잡혀 멸종 위기에 직면한 고릴라를 구하기 위한 묘책을 짜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고릴라가 서식하는 지역을 오거닉 커피 농장으로 바꾸고 그곳 농부들에게 오거닉 커피 재배법을 알려준 후 그들이 재배한 원두를 구입하는 대신 우간다 정부에 고릴라를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10년간 꾸준히 공을 들인 작업이었다. 이 스토리를 들은 고객은 이곳에서 마련한 고릴라 보호를 위한 기부나 펀드에 동참하기도 한다.
“LA에 더 뛰어난 맛과 멋을 갖춘 파인 레스토랑이 많음에도 내가 이곳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음식 맛 자체보다는 그들의 ‘철학’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이 지속 가능한 환경을 중시하는 이곳의 사회적 마인드에 감화되어 끊임없이 찾는 것 같아요.” 다이아나 강 대표의 말대로, 커피 외에도 샌드위치와 베이커리까지 다양한 오거닉 메뉴를 판매할 뿐 아니라 냅킨 하나까지 리사이클링 아이템을 사용해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LA 사람들이 정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환경’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이아나 강 대표를 포함한 요즘의 현대인이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가 바로 이곳, LA에선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 2 롤링 그린스의 디스플레이는 구경만 해도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한다.

도시로 여행을 가면 패션몰이나 대형 백화점보다 개성적인 로드숍에 더 끌릴 때가 많다. 다이아나 강 대표도 마찬가지로 특히 아끼는 리빙 숍 두 곳을 소개했다. 롤링 그린스(Rolling Greens)는 1930년대 야외 마켓으로 시작한 곳으로 다양한 홈 데코와 가드닝용품을 선보인다. 그녀가 즐겨 찾는 할리우드점은 할리우드 지역의 베벌리 불러바드에 자리한 롤링 그린스의 두 번째 쇼룸. 아기자기한 숍이 아닌 널찍하고 고풍스러운 창고 같은 건물 안에 자리 잡았다. 본래의 낡은 벽돌 벽과 목재 기둥이 들어간 천장 등을 복원해 러스틱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쇼룸 안에선 베딩부터 테이블웨어와 리넨, 배스용품, 액자와 향초, 빈티지한 액세서리와 디자인 서적까지 향기로운 공간을 꾸미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제품을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꽃과 화분, 화기 등 정원용 식물과 용품이 공간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국내 쇼핑객이라도 초록 화분이 가득한 널따란 정원이나 테라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듯하다. 누구든 두루 만족시킬 정도로 다채롭고, 처음 찾는 사람도 합리적이고 부담 없는 가격이라 반색할 만하다.

1 어스 카페의 야외 테이블. 건강한 메뉴와 유기농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2 레스토레이션 하드웨어 쇼룸의 입구에 마련돼 있는 야외 디스플레이.
3 게티 센터의 야외 정원은 LA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조경이 훌륭하다. 중앙에 보이는 것이 플라워 미로.

다이아나 강 대표는 꼭 어떤 아이템을 사러 가기보다 가구와 소품 등을 이용한 공간과 가든 디스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숍 안이 한적하고 직원들도 따라다니며 부담을 주지 않는 분위기라 천천히 이곳저곳 구경하며 오래 머물고 싶은 느낌. 어느새 반나절 정도는 후딱 가버린다. 다이아나 강 대표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리빙 숍은 레스토레이션 하드웨어(Restoration Hardware)다. 롤링 그린스에 접근하기 쉬운 내추럴하고 빈티지한 제품이 많다면, 이곳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조와 세련된 무드로 연출해놓았다. 아웃도어 가구로 테라스처럼 연출한 입구에 들어서면 ‘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쏟아져 나온다. 미국 드라마나 잡지에서 흔히 보는 가구와 조명, 패브릭 등으로 꾸민 침실과 거실, 다이닝룸 등을 둘러보고 있으면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외국 친구의 집에 초대된 듯한 느낌이 든다. 대형 몰이나 백화점에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다면 다이아나 강 대표가 추천하는 멀티숍에 가볼 것. 멜로즈 애버뉴에 위치한 프레드 시갈스(Fred Sigal’s)맥스필드(Maxfield)다. 입구나 간판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아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프라이빗한 명품 멀티숍으로 제품 셀렉션이 훌륭하다. 특히 맥스필드는 로데오 거리의 샤넬 매장에서도 구하기 힘든 제품을 구비해놓기도 한다.

관광 명소보다 잊지 말고 꼭 가봐야 할 뮤지엄도 있다. 바로 샌타모니카의 브렌우드 산 기슭에 자리 잡은 게티 센터(Getty Center)다. 장 폴 게티 미술관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게티 리서치, 보존 및 교육연구소가 있는 예술 종합 센터인 이곳은 예술품 수집가 장 폴 게티가 소장한 르네상스부터 후기 인상주의 작품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꼭 유명 미술 작품을 보러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태울 필요는 없다. 다이아나 강 대표는 전시를 보지 않더라도 이곳에 자주 ‘쉬러’ 간다. 2년 전 <노블레스>와 인터뷰한 현대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가 13년에 걸쳐 디자인한 뮤지엄은 그 자체만으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건물 밖 정원이 훌륭하다. 센트럴 가든에는 5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특히 중앙의 플라워 미로는 게티의 예술품에 뒤지지 않는 또 하나의 명물이다. 주차 후 산 정상까지 트램을 타고 올라가는 맛도 이색적이고, 지리적 조건 덕분에 탁 트인 야외 공간에서 태평양 바다와 LA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주차비를 제외한 입장료는 무료고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니 참고할 것.

다이아나 강은 음식과 문화를 통한 VIP 마케팅으로 해외 글로벌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을 돕는 전문 컨설팅 회사 원더박스의 대표다. 한국의 음식과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강 대표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통해 한국과 외국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인사와의 만남이나 여행을 통해 인생을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제안한다.

어스 카페www.urthcaffe.com
롤링 그린스 할리우드www.rollinggreensnursery.com +1 323 934 4500,
레스토레이션 하드웨어www.restorationhardware.com
맥스필드 +1 310 562 9762
프레드 시갈스 +1 310 657 8880
게티 센터 +1 310 440 7300, www.getty.edu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안지섭  컨트리뷰팅 에디터 다이아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