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La La! 라라랜드에서 만나는 라틴 문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불고 있는 뜨거운 남미 예술의 바람, 그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LA MoCA에서 열리고 있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개인전〈The Theater of Disappearance〉전경.
뉴욕, 파리, 런던에 이어 이제 글로벌 미술의 중심이 LA로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때를 같이해 지난해 가을부터 캘리포니아 남부 문화 예술 기관이 앞다투어 남미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라틴 커뮤니티를 형성한 LA가 남미 문화와 교류하고 그 다양성을 고찰하려는 시도는 분명 유의미한 일이다.

LACMA의 〈Found in Translation: Design in California and Mexico, 1915- 1985〉전 전경.
막대한 자금과 탁월한 기획력
최근 미국 서부를 여행했다면 광고판, 잡지, 소셜 미디어 등에서 ‘There will be ( ). There will art’라는 문구를 쉽게 접했을 것. 각기 다른 글귀 52개로 괄호를 채운 이 광고는 작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LA 전역에서 펼친 ‘퍼시픽 스탠더드 타임: LA/LA(PST: LA/LA)’에서 선보이는 작품에 대한 설명이다. PST: LA/LA는 LA 문화의 자존심인 게티 센터를 주축으로 LACMA,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 ESMoA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 70개 기관이 서로 다른 주제로 라틴 문화와 예술을 총망라하는 대규모 이벤트다. 게티 센터가 17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쏟아붓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후원, 45개국의 예술가 1100명이 시간과 장르를 가로지르는 풍성한 전시와 행사를 선보였다. 쿠바혁명 이후 자유로운 표현을 시도한 영화 포스터를 모은〈hollywood in havana〉전이 패서디나 캘리포니아 아트 뮤지엄(PMCA)에서 열렸고, 아머리 아트 센터(Armory Center for the Arts)는 멕시코의 1990년대를 담아낸〈below the underground〉전을 선보였다. 게티 센터만 해도 남미 주요 도시의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metropolis in latin america〉,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1950~1960년대 구체미술 운동을 알리는〈making art concrete〉등 여러 전시를 개최했다. 게티 센터가 70개가 넘는 참여 기관에 주문한 유일한 조건은 PST: LA/LA에 속하는 각 전시가 미술사적 연구를 바탕으로 삶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할 것, 이것뿐이었다. 이런 게티 센터의 노력 덕분에 개별 전시는 라틴 문화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1 게티 센터에서 전시 중인 윌리스 데 카스트로(Willys de Castro)의 ‘Active Object (red/white Cube)’(1962년).
2 해머 미술관이 소개한 마리에 오렌산스(Marie Orensanz)의 ‘Limitada (Limited)’ (1978년).
여성의 신체에 각인된 역사
미국의 주요 미술관은 20세기 초 석유, 철강, 자동차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재벌들의 컬렉션에서 비롯했다. 해머 미술관 역시 미국의 석유 재벌인 창립자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의 이름을 따서 1990년에 개관했다. 현재는 UCLA 소속 미술관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힙하고 문화적으로 유의미한 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작년 12월까지 해머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radical women: latin american art, 1960-1985〉는 주류 미술계에서 지금껏 조명받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여성 작가들, 망각된 그들의 역사,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뤘다. 가혹한 정치적·사회적 여건에서 몸부림친 여성의 역사를 실험적 미술을 통해 선보였다.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산타 크루스의 1978년 퍼포먼스 ‘Me Gritaron Negra’의 서사는 꽤 강렬했다. 흑백 화면을 채운 흑인 코러스 6명은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그들의 아이덴티티인 ‘Negro’를 끊임없이 부르짖었다. 피부색에 대한 절망적인 그들의 고백은 영상 말미에 다다를수록 마치 자유를 향한 외침처럼 들렸다. 여성과 제3세계 인종이라는 이중적 잣대에 억눌린 흔적을 끄집어낸다는 주제는 무겁지만 PST: LA/LA의 전시 중에서 단연코 주목할 만했다. 게다가 2명의 큐레이터가 10년 이상 연구한 탄탄한 기획력이 뒷받침됐다. 전시는 오는 4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으로, 그 후에는 브라질 상파울루로 순회한다.

LACMA가 선보인 프란시스코 아르티가스(Francisco Artigas)와 페르난도 루나 (Fernando Luna)의 ‘House at 131 Rocas, Jardines del Pedregal, Mexico City’(1966년).
아르헨티나 미술, 날것의 에너지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또 다른 공공 미술관 LA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는 오는 5월 13일까지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의 개인전〈the theater of disappearance〉를 개최 중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루프 가든에서 선보여 당시 호평을 받은 작품이 또 다른 모습으로 LA에 등장한 것. 과거 경찰서 차고였던 건물을 개조한 별관 게펜 컨템퍼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하나의 공간이자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곳이 문명이 싹트기 전 오래된 과거인지 혹은 모든 것이 멸종한 미래의 폐허인지 모호한 시공간을 맞닥뜨린다. 할리우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블루 스크린 벽 사이로 육중한 돌덩어리 여러 개가 놓여 있다. 그 사이에서 형광 불빛을 내뿜는 냉장고 쇼케이스 내부는 식물, 고깃덩어리, 과일부터 녹슨 고철 덩어리, 목재, 뼈 등 갖가지 물건으로 가득하다. 그중 유기물은 자연스럽게 부패하고 무기물은 쓸모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관람객은 이 부패 현장의 목격자로서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 영원할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을 대면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미술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과감함과 시간에 대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철학적 사고가 기이한 시너지를 낸다. 공간을 지배하는 조형적 스케일과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은 거대한 우주 속 미미한 인간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려는 전략일까? 덧없는 인간의 삶이 벽 너머 환상의 세계, LA의 풍경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부호들의 전폭적 지원으로 설립한 LA의 여러 미술관은 수준 높은 방대한 소장품을 과시하는 반면, 연구와 기획 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이번 전시와 행사도 남미 지역 큐레이터와의 협업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PST: LA/LA가 보여준 LA 예술 기관의 결집력과 밀도 높은 전시 구성, 이를 뒷받침하는 과감한 투자는 새로움에 목마른 아트 신의 갈증을 해소했다. 지금, LA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칠 준비를 완전히 갖춘 듯하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글 김유미(홍익대학교 미술사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