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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Memories Through Spaces

ARTNOW

오늘날 역사적 공간은 어떻게 동시대 문화 콘텐츠로 전환되고 또 기념될까? 노트르담 대성당의 오프닝 세리머니와 현대미술 공간이 된 고성, 패션 행사가 열리는 미술관, 19세기 말 거장 건축가의 역작이 미디어 아트의 그릇이 되는 현장 등을 통해 살펴본다.

Tracey Emin, Sex and Solitude, Palazzo Strozzi, Firenze, 2025. Photo by Ela Bialkowska, OKNO Studio.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5.

Reopening Ceremony of Notre-Dame Cathedral. © Pascal le Segretain – Getty Images – Notre-Dame de Paris.

전통은 현재에 의해 다시 쓰이곤 한다. 특히 오랜 시간의 주름을 품은 건축물 또는 장소가 동시대 문화 콘텐츠의 무대가 되는 순간, 그곳은 비단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깃든 ‘기억’과 역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환된다. 현재의 맥락에 맞게 재해석되고, 본래 의미가 우리의 삶과 연결되며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거를 기념하는 방식이 오늘날 어떻게 진화하고 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기념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곳에서 ‘현재’ 찾을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고유한 건축적 특징이나 역사적 맥락을 넘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지 살펴보는 데 있기도 하다. 기념하는 방식은 그 공간의 물리적 형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그 공간에서 하는 문화적 · 사회적 혹은 심리적 활동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과거의 공간은 현재와 대화하며 매 순간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Tracey Emin, Sex and Solitude, Palazzo Strozzi, Firenze, 2025. Photo by Ela Bialkowska, OKNO Studio.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5.

Tracey Emin, Sex and Solitude, Palazzo Strozzi, Firenze, 2025. Photo by Ela Bialkowska, OKNO Studio. © Tracey Emi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5.

 새로운 시대와의 접점 
지난해 12월 7일 다시 문을 연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2019년 화재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대성당은 단순한 복원의 의미를 넘어, 유서 깊은 공간의 부활을 하나의 ‘문화적 선언’으로 기획했다. 850여 년 역사를 보존하면서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모습을 조화롭게 담아내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었던 것. 첨탑은 19세기 원형 그대로 재건했지만, 프랑스 디자이너 기욤 바르데( uillaume Bardet)가 제작한 청동 제단, 세례대와 강대상 등 주요 성가구와 화병 등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또 장-샤를 드 카스텔바작과 프랑스 예술 공방이 협업한 새로운 전례복 디자인도 공개했다. 재개관을 알리는 오프닝 세리머니 역시 단지 건축 복원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대성당이 품은 종교적 · 예술적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퍼포먼스’였으며, 새로운 시대와의 접점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기억이 기술, 현대미술과 만나 또 다른 감각의 지평을 넓혀가는 사례는 바르셀로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천재 건축가로 손꼽히는 안토니 가우디(Antoni  audí)의 역작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Casa Batlló)가 바로 그 주인공. 지난 2022년 미디어 아티스트 레피크 아나돌(Refik Anadol)의 손을 거쳐 건축과 인공지능이 대화하는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가우디는 곡선의 리듬과 유기적 형상을 살려 이 건축물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만들었다. 정면의 파사드는 물결치는 듯한 곡선으로 구성했고, 타일 모자이크는 마치 바닷속 생물의 비늘처럼 반짝이며, 기둥과 난간은 생선의 뼈대같이 만들었다. 또 천장과 창은 바다의 물결과 공기를 형상화한 듯해 카사 바트요는 그 자체로 자연과 신화, 환상과 기술이 어우러진 총체적 예술 작품으로 평가된다. 레피크 아나돌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의 내 · 외부를 AI 모델로 스캔해 건축가가 상상했을지도 모를 세계를 카사 바트요 파사드에 프로젝션해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역사적 건축물이 단순히 보존해야 하는 유산이 아니라 동시대 기술과 감수성을 품은 ‘현재진행형 기억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e First Real 360º Experience in the World. The New Media Artist Refik Anadol Presents His Pioneering Work ‘Gaudí Dreams.’ © Casa Batlló.

이처럼 역사적 건축이 예술과 만나 새로운 감각의 장이 된 사례는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지 피렌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5세기 말 토스카나 귀족 가문 스트로치의 권력과 안목을 상징하던 팔라초 스트로치(Palazzo Strozzi)는 현재 동시대 미술의 실험장이자 국제적 담론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형적 르네상스 양식의 엄격한 입면과 완벽한 대칭 구조를 갖춘 건축 공간을 철저하게 현대적 예술 감각으로 재구성해 과거의 질서를 교란하고 재해석하는 무대가 되었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의 박제하다시피 보존하는 피렌체라는 도시를 떠올려보면 상당히 특별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장-미셸 오토니엘, 마우리치오 카텔란, 토마스 사라세노, 헬렌 프랑켄탈러, 안젤름 키퍼, 애니시 커푸어, 드리프트, 제프 쿤스 등 당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의 전시를 선보였고, 현재도 트레이시 에민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팔라초 스트로치는 과거의 권위를 박제하지 않고 현재의 예술과 충돌하게 하며 ‘살아 있는 공간’, ‘현재진행형 공간’으로 그 의미를 경신하고 있다. 르네상스가 태동한 이 도시에서, 오히려 전통은 가장 실험적인 예술을 수용하는 기반이 된 셈이다.

왼쪽 Met Gala 2024. Lily Donaldson with Burberry. © Burberry.
오른쪽 Façade of Casa Batlló. © Casa Batlló.

 동시대 축제의 무대 
역사적 건축물을 오늘날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기념하는 사례는 그 자체를 예술적 매체나 그릇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건축은 도시 전체, 나아가 사회적 경험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매년 6월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 ‘페트 드 라 뮈지크(Fête de la Musique)’를 꼽을 수 있다. 파리의 생드니 대성당, 몽마르트르 등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과 공공장소에서 진행하는 음악 축제로, 지난해부터 프랑스 왕권의 상징이자 사법행정의 중심인 팔레 드 라 시테(Palais de la Cité) 역시 축제의 무대 중 하나로 선택해 공공성과 문화적 기억의 재해석이라는 두 축을 함께 구현하고 있다. 왕실의 권위와 장엄함이 깃든 이 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한때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공간이 오늘날 모든 이에게 열린 ‘공유의 현장’으로 전환했음을 상징한다. 음악은 시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건축 역시 더 이상 기념비가 아닌 공감과 축제의 배경이 된다. 한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해마다 열리는 ‘멧 갈라(Met Gala)’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미술관의 역할을 재구축한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문화 자긍심을 상징하던 이곳은 이제 ‘패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문화적 권위와 시대감각을 교차시키는 실험의 장이 되었다. 매년 전시 주제를 정해 진행하는 갈라는 단순히 그 주제를 어떻게 패션으로 재해석했는지 보여주는 유명인의 레드 카펫 자리가 아니라 정체성, 정치, 미학, 기술 등 다양한 사회 담론을 응축한 무대가 된다. 역사적 예술 작품 사이를 유영하는, 그해의 주제를 표현한 아름다운 의상은 그 자체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미술관의 기능을 넘어 오늘날 가장 강력한 문화적 플랫폼이 되었음을 방증한다. 이처럼 오늘날 문화는 과거의 건축과 공간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동시대 언어로 ‘다시 쓰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장소는 더 이상 봉인되지 않는다. 유산은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현재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역사와 기억을 새로이 경험하고 재구성해가는 주체가 된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노트르담 대성당, 팔라초 스트로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문화부, 카사 바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