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by Women
여자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 여심을 흔들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려온 메종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난해에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2017년 S/S 시즌 데뷔 컬렉션을 앞두고, 디올은 #TheWomenBehindMyDress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몇 개의 흑백필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쇼를 준비하기 위해 패브릭 위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거나 쇼장 구조물을 설치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끊임없이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디올 우먼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이처럼 수많은 여성이 힘을 모아 완성한 2017년 S/S 컬렉션은 그야말로 여성의, 여성에 의한 그리고 여성을 위한 컬렉션이다.

페미니즘을 노래하는 비욘세의 ‘Flawless’을 샘플링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런웨이에 등장한 오프닝 룩인 펜싱복 모티브의 화이트 룩만 봐도 그렇다. “스포츠 유니폼 중 남성과 여성 펜싱복에는 유독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어서 등장한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문구의 티셔츠와 엠브로이더리 네이비 컬러 튈 스커트를 매치한 스타일은 어떤가. “세상에 귀 기울인 흔적과 오늘날의 여성상을 반영한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그간 디올을 거친 역사적 디자이너의 작품을 참고하되, 이를 저만의 방식으로 자유로이 활용했습니다.”
굳이 마리아의 부연 설명을 듣지 않아도 컬렉션 곳곳에 여자에 대해 골똘히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살랑이는 롱스커트와 바이커 재킷, 납작한 스니커즈 그리고 화이트 티셔츠는 낮과 밤 어디에서나 근사해 보일 것이고, 전통적 디올의 바 재킷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는 ‘여자가 만든 옷’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요소다. 요란하지 않지만 공감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화려한 무대장치와 드라마틱한 컨셉, 판타지를 담은 디자인 같은 요소 없이도 여자가 만든 옷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옷을 제작하는 아틀리에나 쇼를 선보이는 런웨이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아요. 실제 여성이 입었을 때 근사해 보이는지가 관건입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스스로 브랜드의 고객이라 여기며 디자인에 임한다. 새빌로의 테일러링을 적용한 슈트와 나른한 니트 드레스, 경쾌한 플랫폼 슈즈와 데님 팬츠 같은 아이템은 수많은 여성은 물론 스텔라 본인의 일상을 책임지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자벨 마랑 역시 자신을 거울 삼아 브랜드를 이끌어간다. 그녀의 브랜드를 대변하는 청키한 스웨터와 큼직한 셔츠, 미니스커트와 앵클부츠는 실제로 그녀가 아이를 등교시키거나 중요한 저녁 모임이 있을 때 입고 신는 것이다. “제가 입고 싶지 않은 옷을 다른 사람이 입길 바라선 안 되죠.” 자신을 염두에 둔 디자인 덕분일까. 이자벨 마랑의 파워 숄더 재킷과 미니스커트, 시스루 톱과 사이하이 부츠는 다른 데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매력이 느껴진다.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의견 또한 다른 여성 디자이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예술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여성이 일상에서 옷을 입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요. 그 옷이 옷장에 걸린 채 계절이 바뀌는 과정도요. 세월이 흘러 결국 개인을 대변하는 스타일로 자리 잡을 그런 옷을 만들길 원합니다.” 어떤 아름다운 드레스도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의상만큼 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터. 실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흔드는 패션 세계를 구축한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비 파일로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제가 만든 옷에서 보다시피, 미(美)에 대한 과찬은 저와 무관합니다. 여성 스스로 선택하는 스타일을 만들고 싶습니다.” 랑방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크라 자라 역시 여자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동시에 낙낙한 슈트와 매끈한 실크 드레스, 슬릿을 가미한 니렝스 스커트로 가득 채운 컬렉션을 완성했다.

커리어우먼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내, 또 엄마이기도 한 여성 디자이너는 우리가 원하는 옷을 가장 잘 이해하는 주인공이다. 토리 버치는 이런 고민을 의상에 담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지지에도 가세한다. “2009년 설립한 토리 버치 파운데이션은 여성 리더가 커리어와 가정에 모두 충실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전 세계적 무대를 마련합니다.” 자신을 비롯한 전 세계의 커리어우먼을 지지하는 그녀의 행동은 환상과 예술로 점철된 패션 세계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옷을 입고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끊임없이 고민한 여성 디자이너의 스타일은 더없이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 이라는 사실, 부정할 수 없지 않는가!
에디터 한상은(hans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