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moiselle in Roaring Twenties
2년에 한 번씩 프랑스 국립 앤티크협회의 엄선을 거친 미술품과 가구 그리고 하이 주얼리가 펼치는 화려한 전시,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 1962년에 시작된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는 최고의 장인정신이 완성한 예술 작품에 바치는 오마주다. 2014년 에디션에 초대된 샤넬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카페 소사이어티’, 그 매혹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1, 3 그랑 팔레에 1920년대의 기품 넘치는 스타일을 재현해놓은 샤넬 하이 주얼리 전시장 전경 2 ‘카페 소사이어티’의 메인 컬렉션 중 하나인 ‘스프링 인 베니스’ 브로치
기억의 연상 작용이란 엉뚱한 것이다. 딱히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도 않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The Shining)>의 포스터는 언제나 ‘광란의 시대’라고 불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곤 했다. 기묘한 이야기의 끝, 엔딩 크레딧과 함께 들려온 노래 ‘Midnight, the Stars and You’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작곡한 이 낭만적인 선율은 지금 들어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억눌려 있던 인간의 욕구와 창의력이 발산되던 192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것. 그리고 초가을 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지난 9월, 노래 한 곡을 통해 막연히 상상하던 그 찬란한 시대를 하이 주얼리의 영롱함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만났다. 9월 11일부터 22일까지 파리 그랑 팔레에서 진행한 제27회 앤티크 비엔날레, 그 현장에서 샤넬이 공개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 ‘카페 소사이어티(Cafe ´ Society)’를 통해서 말이다.
1920년대, 파리에 생긴 사교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 프랑스 귀족, 전쟁을 피해 유럽을 찾은 러시아 부유층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부를 축적한 미국 신흥 부자들이 예술가와 활발한 교류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모임이다. 동명의 저서를 펴낸 티에리 쿠데르(Thierry Coudert)는 카페 소사이어티에 대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고전적 의미의 귀족층과 현대의 제트족 사이에 자리한, 문화적 유희를 즐길 줄 안 소셜라이트 집단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코르셋으로 상징되는 오랜 억압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자유분방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창조적 헤도니스트 모임인 카페 소사이어티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 그들이 누린 삶은 단지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카페 소사이어티의 멤버들은 피카소가 꾸민 파티장에서 장 콕토와 예술을 논했고, 가브리엘 샤넬이 손수 제작한 드레스를 입었으니까. 그 아름답고 자유로운 시대를 추억하는 샤넬의 하이 주얼리 ‘카페 소사이어티’ 컬렉션을 만나기 위해 그랑 팔레로 향하는 동안 마주한 파리의 풍경은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 ‘Midnight, the Stars and You’ 덕분인지 평소보다 훨씬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1 ‘어텀 인 상하이’ 세트의 네크리스. 붉게 물든 가을의 풍요로운 분위기를 이국적이면서 고상하게 표현했다. 2 ‘윈터 인 프랑스’ 링. 5캐럿의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 총 2.5캐럿의 사파이어, 총 2.4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하모니를 이뤄 발산하는 광채가 눈부시다. 3 화려한 컬러의 조화가 압권인 콘트라스트 네크리스. ‘오바진 인터레이싱’ 스타일을 재해석한 것으로 10캐럿의 쿠션 컷 사파이어와 8.7캐럿 옥타곤 컷 오렌지 가닛, 스퀘어 컷 다이아몬드 등이 어우러졌다. 4 3.04캐럿 핑크-오렌지 컬러 오벌 컷 사파이어와 총 3.28캐럿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선셋’ 링 5 짙푸른 밤하늘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섬세하게 연출한 ‘방돔 꼬메트’ 반지. 그랑푀 기법의 에나멜 장식과 1.5캐럿 쿠션 컷 옐로 다이아몬드가 단연 돋보인다. 6 카페 소사이어티의 성대한 축제 분위기를 표현한 돔 형태의 건축적 ‘선라이즈’ 반지 7 차별화되는 샤넬의 워치메이킹과 하이 주얼리 제작 노하우를 집약해 완성한 ‘버드 케이지’
샤넬이 앤티크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2006년. 당시에는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오트 주얼러 사이에서 샤넬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이진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가브리엘 샤넬의 후예들에게는 그런 기우 따위는 가뿐히 넘어설 특출함이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헤리티지를 샤넬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하이 주얼리로 형상화해 전시장을 찾은 모든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으니 말이다. 이후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유일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 ‘비쥬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을 모던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가 하면, 그녀가 사랑한 모티브를 주제로 해 창조적 작품을 선보이며 매 시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샤넬이 아니던가. 지난여름 이미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에 진행한 프리뷰만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하이 주얼리 컬렉션 ‘카페 소사이어티’의 작품 87점은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완성한 고풍스러운 전시 공간에서 그 찬란한 자태를 가감 없이 뽐냈다.
1920년대에 유행한 아르데코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하학적 패턴과 다채로운 컬러의 믹스 매치로 연출, 과감한 시도가 단연 돋보인 ‘카페 소사이어티’의 하이 주얼리. 보수적 색채가 강한 방돔 광장의 하이 주얼리업계에 또 하나의 혁신적 코드를 제안하는 듯 강렬한 첫인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시선을 끈 작품은 총 62.5캐럿에 달하는 830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레드 가닛과 옐로 다이아몬드 그리고 강렬한 레드 컬러 래커와 함께 화려한 네크리스로 형상화한 ‘상하이의 가을’. 이 작품은 가브리엘 샤넬이 떠난 캉봉 가 아파트 한편을 장식하고 있는 병풍 코로망델을 연상시키며 오래도록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카페 소사이어티 멤버들의 이국적 문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투영해낸 듯했다. 그뿐 아니라 ‘상하이의 가을’을 비롯해 각 계절마다 새로운 나라와 도시를 만나 탄생한 계절 시리즈 작품은 ‘오트 보헤미안(Haute Bohemian)’ 감성을 전하며 찬란한 빛을 발산했다. 카보숑 컷 실란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일본의 최고급 양식 진주를 세팅한 ‘프랑스의 겨울’, 차보라이트와 사파이어, 아콰마린과 다이아몬드로 완성한 브로치 ‘베니스의 봄’ 그리고 114개의 팬시 컷 멀티 컬러 사파이어가 그래픽적 디자인과 어우러져 모던한 무드를 연출하는 ‘뉴욕의 여름’ 등…. 광란의 시대로 일컫는 1920년대를 관통한 특유의 감성을 샤넬의 하이 주얼리를 통해 만나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은 ‘카페 소사이어티’와 함께 4개 도시에서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고 난 직후였다.
가브리엘 샤넬의 대담한 창의력은 이번에 선보인 ‘카페 소사이어티’ 컬렉션에서도 여지없이 재현됐다. 하이엔드 워치의 다이얼 제작 시 주로 사용하는 그랑푀(grand feu) 에나멜링 기법이나 전통적 에나멜 페인팅의 일종인 그리자유(grisaille)를 자유롭게 활용한 샤넬 주얼리 공방의 숭고한 장인정신은 87개의 이번 컬렉션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샤넬과 인연이 깊은 방돔 광장의 팔각형 모양을 재현한 방돔 링은 또 어떤가. 까멜리아, 사자 그리고 꼬메트 등 가브리엘 샤넬이 생전에 강한 애착을 보인 상징적 모티브뿐 아니라 그녀에게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 베니스 여행의 추억을 담은 산 마르코 광장까지, 반지라는 매개체로 표현한 샤넬의 창의력은 형언할 수 없는 전율마저 느끼게 했다. 캉봉 가 아파트 거실에 놓인 미니어처 새장에서 영감을 받아 예술품으로 탄생시킨 탁상시계 역시 작품을 마주한 모든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 것은 물론이다. 진주로 깃털을 표현한 모란앵무새 두 마리, 문스톤과 핑크 쿼츠, 총 61.5캐럿에 달하는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로 영롱하게 연출한 이 특별한 탁상시계는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최고의 주얼리 세팅 기법과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의 이중주가 이루어낸 아름다운 선율과 다름없었다.
화이트 골드와 은은한 오렌지 핑크 컬러의 파파라차 사파이어 그리고 핑크 사파이어가 낭만적인 석양빛으로 여성의 데콜테를 비추는 ‘선셋’부터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블랙 오닉스를 매치해 과감한 콘트라스트를 선보인 ‘미드나잇’, 원형 모티브와 강렬한 컬러의 믹스만으로 대담한 미학을 창조해낸 ‘카페 소사이어티’ 목걸이까지. 카페 소사이어티의 고상하고 웅장한 라이프스타일을 우아한 방식으로 재조명한 샤넬 하이 주얼리를 이끄는 인터내셔널 디렉터 벤자민 코마(Benjamin Comar)를 만났다. 이번 컬렉션을 시대를 앞서간 마드모아젤 샤넬의 대범한 창조력에 날개를 달아준 1920년대의 카페 소사이어티와 앞으로 생겨날 새로운 카페 소사이어티에 대한 경의라고 정의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컬렉션에 담고 싶었던 철학은 카페 소사이어티 그 자체입니다만, 앤티크 비엔날레를 염두에 두고 선보인 4개 도시 여행을 테마로 한 작품은 단순한 노스탤지어 이상의 미래지향적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카페 소사이어티 멤버들이 사랑한 그 도시들에서 21세기 감성을 담은 현대의 카페 소사이어티가 발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말이죠. 풍요롭고 화려한 삶을 즐기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아티스트들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 후원을 아끼지 않은 가브리엘 샤넬과 그녀의 지인들이 품은 미를 향한 열정에 장인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더하고자 했습니다. 관람객들이 이번 컬렉션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들의 철학과 장인정신이 지닌 가치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아르데코적 디자인 영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컬러의 조합과 메종의 영원한 아이콘인 까멜리아를 그래픽적으로 재해석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그에게 1920년대는 ‘원하는 것을 마음껏 표출할 권리가 주어진 자유로운 시기’다. 기존의 샤넬 주얼리가 태양, 사자 혹은 깃털처럼 마드모아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모티브에서 테마를 찾은 데 비해 이번에는 조금 더 철학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 ‘카페 소사이어티’ 컬렉션 가운데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좋아했을 법한 피스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그는 편안한 웃음과 함께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그녀의 독특한 감수성을 제가 감히 상상해보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 아닐까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피스로 손꼽는 독특한 컬러와 기하학적 모티브를 조합한 ‘모닝 인 방돔’ 네크리스와 ‘카페 소사이어티’ 네크리스를 그녀도 좋아해줬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지만, 그보다는 샤넬 여사가 이번 컬렉션에 담긴 자신의 이미지를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습니다. ‘카페 소사이어티’ 컬렉션을 관통하는 4가지 키워드가 창의력, 자유분방함, 가볍고 편안한 착용감 그리고 다양한 요소가 모여 이루어낸 연금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1, 2, 3 한 폭의 그림처럼 촬영한 제27회 앤티크 비엔날레 출품작, 샤넬의 ‘카페 소사이어티’ 컬렉션.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사진작가 사라 문(Sarah Moon) 특유의 서정적 터치가 단연 돋보인다.
뱅자맹 콜마르와의 대화를 마치고 그랑 팔레를 나서며 다시 한 번 ‘Midnight, the Stars and You’를 들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별로 수놓은 자정의 하늘 아래서 마주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와 선율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곡이 전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노래 속 여인에게 카페 소사이어티의 ‘미드나잇’ 목걸이가 잘 어울릴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문득 지금까지 영화 <샤이닝>과 노래 ‘Midnight, the Stars and You’를 거쳐 1920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연상 작용이 이제야 종착역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드모아젤 샤넬의 눈에 비친 광란의 시대로 여행을 제안한 ‘카페 소사이어티’ 컬렉션. 당신의 기억 속에선 어떤 연상 작용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면, 카페 소사이어티와 함께한 하루를 소개하는 샤넬 화인 주얼리의 웹사이트(www.chanel.com/ko_kr/화인 주얼리/cafe-society)를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물론, 괜찮다면 ‘Midnight, the Stars and You’도 함께 들으면서 말이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현지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제공 샤넬 화인 주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