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SIMILIANO GIONI 마시밀리아노 조니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큐레이터가 있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로벌 작가를 만나는 미술계의 슈퍼 파워 마시밀리아노 조니. 2010년 광주비엔날레를 성공으로 이끌고 금의환향하듯 본국으로 돌아가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자리를 꿰찼다. 개막을 앞두고 잠도 못 이룰 만큼 어깨가 무겁지만 마음은 이미 전시장을 활개 치며 다니고 머릿속은 전시 도면으로 가득 차 있다.
1 Portrait of Massimiliano Gioni(Milan, Caserma XXIV Maggio, 2012). 2 Victor Alimpiev, Summer Lightings, 2004, Installation view. 3 Robert Kusmirowski, Wagon, 2006, Installation view 4 Pawel Althamer, Project for The Wrong Gallery, New York, 2003.
천년 제국이 살아 숨 쉬는 로마, 르네상스가 시작된 피렌체, 낭만적인 물의 도시 베니스 등 유럽의 역사와 예술이 꽃핀 매력적인 도시를 품은 이탈리아. 이런 유럽의 역사적 양분과 문화적·예술적 영감만 쏙쏙 골라 탑재한 이탈리아 출신의 큐레이터 마시밀리아노 조니(Massimiliano Gioni)는 현재 세계 미술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가장 핫한 인물이다. 그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1999년 뉴욕으로 건너가 2000년 <플래시 아트 인터내셔널>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2002년 뉴욕 첼시에 ‘잘못된 갤러리’라는 뜻의 비영리 전시 공간 ‘롱 갤러리(The Wrong Gallery)’를 만들어 상업 화랑을 마구 조롱하는가 하면, 멀쩡한 유리문을 깨부수는 기괴한 행위를 하나의 전시로 승화시켰다. 그의 엉뚱한 상상력은 1㎡의 작은 전시장을 통해 여과 없이 세상으로 표출됐다. 말이 좋아 갤러리지 덜렁 문짝 하나 있는 이 누추한 공간에 로런스 와이너, 폴 매카시, 마틴 크리드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걸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1년 현대미술 잡지 <찰리>, 2004년 롱 갤러리 자체 발행 신문 <롱 타임스>를 창간해 비평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의 기발함에 박수를 보내는 동료 예술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보다 넓은 미술 세계로 뻗어나갔다.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2004년 유럽 현대미술 비엔날레 ‘마니페스타 5’, 2006년 제4회 베를린 비엔날레에 전시 기획자와 디렉터로 참여해 탄탄한 경험을 쌓았고 2010년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을 거머쥐며 월드 큐레이터로서 자질을 인정받았다. 그는 현재 뉴욕 뉴 뮤지엄의 부관장이자 밀라노 패션 브랜드 니콜라 트루사르디(Nicola Trussardi)의 예술 재단 관장까지 겸하며 하루 24시간을 누구보다 알뜰히 쪼개 쓰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을 발판 삼아 베니스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마시밀리아노 조니와 나눈, 그의 달콤쌉싸름한 큐레이터 인생의 모든 것.
1 Mark Handforth, Parking Meter(Candles), 2004, Parking meter and candles, Variable dimensions.
2 Starship(Hans-Christian Dany, Martin Ebner, Ariane Muller), Starship 9 und Eine Art Einzige 463mal Verlegt, 2006, Shrinking floor piece with reprint of a text by Oswald Wiener, var. sizes.
3 Urs Fischer, September Song, 2002, Polystyrene, glue, paint, wire, screw, marker, 23x60x10cm, Sandrae Giancarlo Bonollo collection, Italy.
4 (Berlin Beauties),2005, Installation views. left_Dieter Roth, Helvetia, 1972. right_Dorothy Lannone, Aua Aua Box, 1972/2005.
늦었지만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6월 1일 개막을 앞두고 한창 바쁠 것 같아요. 준비 과정과 향후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늘 그렇듯 준비 과정이 그렇게 멋지거나 재미있지만은 않아요. 책상에 앉아 리스트를 만들고 전시 도면에 미친 듯이 메모를 하죠. 월요일에는 항상 신경 쓰이고 익숙해져야 하는 예산 관련 회의를 합니다. 잠을 적게 자고 새벽에 걱정하면서 깨는 게 일상이죠.
이번 비엔날레에서 관람객이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나 감상 포인트가 있나요? 이번 비엔날레는 ‘백과사전식 전당(The Encyclopedic Palace)’이라는 주제로 각 나라의 국가관이 차별화된 미술전을 펼쳐 마치 ‘미술 올림픽’을 보는 듯한 기분일 겁니다. 전 세계 91개 전시관 모두 최고의 작품으로 꾸며져 있어요. 그런 점이 베니스 비엔날레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올해는 몇몇 새로운 참가국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나이지리아 전시관이 사뭇 기대됩니다. 예술적 영감의 원천, 아프리카 미술이 비엔날레의 활력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예술총감독을 맡은 지난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성공적인 개최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는데, 광주비엔날레 성공 이후 미술계에서는 베니스행을 점쳐왔습니다. 한국에서 총감독으로 일한 경험이 전시 기획자로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의 심정으로 아시아 땅, 한국을 밟았어요. 아시아에서 일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광주광역시, 광주비엔날레 이사회 등 지자체에서 든든하게 지원을 해줬습니다. 비엔날레의 수준이나 규모 면에서도 굉장한 전시였어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그렇게 일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제가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게 된 것도 사실 광주 덕분이죠.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한국 미술과 작가를 많이 접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점이 있나요? 광주 지역의 많은 작가를 만났고 하루하루가 신났어요. 고 이한열 열사의 초상화가 걸린 최병수 작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열린 광주비엔날레는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한국 광고사진의 지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김한용 작가의 사진 스튜디오, 임남진 작가의 동양화도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적 색채구나 싶었죠. 한국 미술사의 주류에서 벗어나 작업하는 예술가들에게 매료된 시간이었어요.
1 2008년 티노 세갈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빌라 레알레 앞에서 전시에 참여한 무용가들과 신나게 점프하는 마시밀리아노 조니. 성공의 기쁨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
2 2008년 뉴욕 치프리아니(Cipriani)에서 사랑스러운 아내 세칠리아 알레마니, 제프리 디치와 함께한 마시밀리아노 조니.
3 (왼쪽부터) 마시밀리아노 조니와 멀티미디어 작가 폴 매카시 그리고 그의 부인. 2010년 팔라초 치테리오(Palazzo Citterio)에서 열린 폴 매카시의 개인전 는 트루사르디 예술 재단에서 기획했다.
4 2008년 밀라노에서 열린 파올라 피비의 개인전 중 작가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5 마르셀 뒤샹의 일대기를 쓴 작가 캘빈 톰킨스(Calvin Tomkins), 미국판 <보그> 에디터 도디 카자니언(Dodie Kazanjian)과 함께 있는 조니. 2007년 뉴 뮤지엄 개관 30주년을 기념하고자 열린 갈라 파티에서 셀레브리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간 해외의 굵직한 비엔날레와 전시를 기획해왔습니다. 젊은 전시 기획자로서 중요한 직책을 훌륭히 수행해왔기에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탁월한 큐레이팅 능력은 물론 잘생긴 외모에 젊은 나이까지 완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 ‘엄친아(스펙이 우월한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세계 수준의 전시를 성공으로 이끈 ‘진짜’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가 특별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그 반대로 저는 ‘Mr. Wrong’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웃음) 실제로 2002년 첼시에 1㎡ 남짓한 비영리 예술 공간 ‘잘못된 갤러리(The Wrong Gallery)’를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알리 수보트닉, 두 작가와 함께 설립했습니다. 토마 압츠, 티노 세갈, 제이슨 로즈, 파벨 알트하메르, 필 콜린스, 폴 매카시, 엘리자베스 페이턴, 마틴 크리드, 마크 핸드포스 등의 세계적 작가는 그 좁은 공간도 마다하지 않고 전시를 열었어요. 최고의 파트너들이죠. 2005년 갤러리 문을 닫기 전 40회가 넘는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제 스펙이나 능력이 아니라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일한 덕분입니다.
잘못된 갤러리’라는 엉뚱한 이름부터 작품 하나밖에 전시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까지, 그 발상이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롱 갤러리는 자전거와 같아요. 몸집이 큰 리무진을 타고서는 모든 길을 갈 수 없잖아요. 가끔은 작고 가벼운 자전거가 필요한 법이죠. 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큰 갤러리, 굵직한 전시 말고 그런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시가 더 달콤하거든요.
1 2007년 전이 열리기 전, 파벨 알트하메르(Pawel Althamer) 작가의 풍선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조니. 그는 작가들과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 베아트리체 트루사르디와 함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조각 ‘We’를 바라보고 있는 조니. 2011년 피렌체의 구기차역 스타치오네 레오폴다(Stazione Leopolda)에서 열린 단체전 <8 and 1/2> 중 한 장면이다.
3 미술계의 삼총사. (왼쪽부터) 마우리치오 카텔란, 마시밀리아노 조니, 알리 수보트닉. 2006년 제4회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공동 기획자로 함께 활동한 절친이다.
4 마시밀리아노 조니와 막역한 관계인 엘리자베스 페이턴이 그려준 그의 초상화. Elizabeth Peyton, Massimiliano (Massimiliano Gioni), 2009, Oil on canvas, 25.5x19cm, unique piece.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당신은 뼛속까지 유럽 감성이 충만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당신의 예술 활동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예술을 단지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같아요. 동시대적 시선과 역사적 시점으로 폭넓게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현재 14년째 살고 있는 사랑하는 도시 뉴욕도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친 곳입니다. 뉴욕의 예술가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고 푸른 하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죠.
뉴욕과 유럽, 아시아까지 아우르며 세계 각지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머무는 도시는 어디인가요? 가족과 왕래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대부분의 시간을 뉴욕에서 보내지만 밀라노의 니콜라 트루사르디 예술 재단 관장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아내는 뉴욕에서 지내는데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네요. 사랑하는 제 아내 세칠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도 프로페셔널한 큐레이터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제 일을 이해해주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의지하는 둘도 없는 사이죠.
2000년 미술 잡지 <플래시 아트 인터내셔널>을 거쳐 직접 창간한 현대미술 잡지 <찰리>와 <롱 타임스>에 편집장으로 몸담았다고 들었어요. 인쇄 매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편집장을 하면서 큐레이팅에 대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디에 작품을 배치해야 관람객들이 집중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죠. 전시장 안에서 빛과 깊이, 빠름과 느림을 결합하는 법을 그때 터득했으니까요.
1 Martin Creed, Project for The Wrong Gallery, New York, 2002. 2 Dara Friedman, Project for The Wrong Gallery, New York, 2004. 3 Carol ‘Riot’ Kane, Project for The Wrong Gallery, New York, 2004.
전시 기획자이자 미술관 부관장, 갤러리 대표에 예술 재단 관장과 미술 잡지 편집장까지, 도전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가끔 컬렉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발굴한 멋진 작품들을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훌륭한 작가를 꿈꿉니다. 책도 많이 읽고 집필에 혼신의 힘을 쏟고 싶어요. 아마 비엔날레가 끝나면 그럴 수 있겠지만 지금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전시 기획자 중심의 이론적 담론을 피하기 위해 작가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는 독특한 접근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시 기획 전 작가들과 어떤 식으로 교류하나요?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리서치를 통해 전시를 기획하는 편입니다. 작가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획 방향도 매번 달라지죠. 예를 들면 니콜라 트루사르디 예술 재단이나 밀라노에서 단독 전시를 할 경우 장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이나 안무처럼 전시를 상상하면서 작가와 협업을 통해 기획합니다.
당신처럼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를 꿈꾸는 한국의 예비 큐레이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큐레이터로서 중요한 자세 3가지만 말씀해주세요. 겸손, 관대함, 정확성.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마음을 아프게 하는 평론에 너무 상처받지 말라고 말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큐레이터란 무엇인가요? 미술 전문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다 큐레이팅에 눈을 뜨게 됐어요. 일종의 비평 행위 같아서 시작하게 됐죠. 작가에 대해 논하고 평하기 전에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작가를 돌보는 것이 큐레이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또 한국에서 전시를 기획할 계획은 없나요? 만약 좋은 사람이 와서 부탁한다면 왜 안하겠어요? 그러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거예요.
에디터 심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