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from Kim Sung Kun 승리로 말하라
"많은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게 있다. 바로 밑의 사람들이 언제나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거다. 리더의 생각을 미리 읽고 먼저 움직이는 부하 직원들이 있다면 정말 좋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조직은 없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중에서
김성근 감독은…
1942년 일본 교토 출생.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야구감독이자 선수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스승이다. ‘끝까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을 리더의 중요한 자질로 꼽는 김성근 감독의 ‘포용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최근 여러 기업에서 강의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SK 와이번스에서 해임된 당시를 궁금해한다. 특히 부임 후 이듬해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5년 동안 우승과 준우승을 네 번이나 일구어 냈는데, SK에서 해임 후 어떤 보상이나 사례를 했는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2011년 8월, SK에서는 해임 후 나에게 2년간 7억 원의 위로금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언뜻 생각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은 제안일 수 있으나 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내가 원한 건 수억 원의 위로금이 아니라 ‘그동안 수고 많았다’라는 진심 어린 감사의 말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깨끗이 사표를 냈으니 앞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할 차례였다. 곧 여러 군데서 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지금 몸담고 있는 독립 구단 고양 원더스다. 당시 일본 프로팀과도 이야기가 오가던 중이어서 한국 최초의 독립 구단 원더스의 제안은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헤맬 때는 어려운 길을 가라’는 것이 내 신조 아니던가. 원더스를 선택한 내 결정에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고양 원더스를 ‘인생 제2의 영주 귀국지’로 삼아 내 마지막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다. 독립 구단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이나 프로에서 지명하지 않은 선수, 하루아침에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를 다시 프로에 입단시키는 게 목표인 조직이다. 그런 팀의 감독을 맡아서인지 사람들은 고양 원더스를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고, 정부 기관과 대학, 중소기업, 대기업 등에서 리더십을 주제로 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대기업의 CEO나 임원들 앞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아랫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라는 것이다. 난 상사에게 아부하며 매달리는 것보다 밑에 있는 코치와 선수, 팬들의 신뢰를 받는 것이 감독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오늘날까지 윗사람에게 아부를 해본 경험이 없다. 오히려 감독의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윗사람에게 대든 적이 많았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 감독 시절 있었던 일이다. 태평양에서 감독 제의를 받아 합의한 후 미국 연수를 보낼 선수 3명을 결정했는데 이틀 만에 사장이 전화를 걸어 선수를 변경하겠다고 했다. 나 몰래 코치가 결정한 상황을 통보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의 일이 불 보듯 뻔했다. 너무 화가 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계약서에 아직 사인도 하지 않은 내가, 그것도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사장에게 그건 무척 결례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한 팀의 감독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2주 후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코치와 선수를 비롯한 현장의 모든 일에 대해 나한테 일임해달라”는 확약을 받았다.
연습 첫날, 모두 한창 연습 중인데 사장이 야구장에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에게는 사장이 온 것보다 연습의 흐름을 깨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2시간을 쉬지 않고 훈련했다. 기다리다 못한 사장이 야구장 안으로 들어와서 “김 감독, 나 가겠소” 그러길래 “네, 그러세요”라고 목례만 한 후 배웅하지 않고 선수들과 연습에 몰두했다. 사장은 무척 기분이 나쁜 듯했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다. 선수에게 태양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내가 사장에게 굽실거리면 선수들은 사장을 따라야 할지, 나를 따라야 할지 헷갈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무례했던 그 행동은 선수들에게 태평양 감독 김성근의 위치를 확고히 심어줬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팀을 통제하고 통솔할 수 있게 됐다.
강의에서 또 하나 강조하는 건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기는 버릇이 된다. 상식 안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상식을 벗어나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 고양 원더스에 부임해 일본 고치로 떠난 46일간의 첫 전지훈련에서 난 기본 훈련 시간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총 9시간 30분으로 정했다. 휴식 시간은 우동 한 그릇을 먹는 15분의 점심시간뿐. 그리고 저녁 감독 미팅(정신교육)에 이어 다시 밤 9시 30분까지 야간 훈련을 강행했다. 이런 지옥 훈련에 익숙지 않은 선수들은 훈련이 계속되면서 10~20kg 정도 체중이 줄었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수비 실력도 같이 늘었고 연습량이 늘어난 만큼 기술 면에서도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선수들의 기량차가 심했지만 나는 못하는 선수일수록 더 악착같이 매달렸다. 내가 선수를 포기하면 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선수들은 스스로 더 욕심을 냈고,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또한 훈련 캠프에서 많은 감독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베테랑과 신인 선수를 차별하는 것이다. 베테랑 선수에게는 연습량을 줄여주거나 특별 대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직을 이끌어갈 때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팀에 가든 베테랑 선수와 신인 선수, 실력이 있는 선수와 없는 선수를 모두 똑같이 대했다. 선수를 우대하는 것은 거꾸로 선수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팀은 동등한 위치에서 비로소 하나의 힘으로 자라게 된다. 그것이 팀의 힘이며 승리의 원동력이다. 2006년, SK에 처음 부임했을 때 박철순, 윤동균, 이병규, 박경완, 김재현 등 베테랑 선수와 김광현, 정근우, 최정 같은 젊은 선수를 팀의 이름으로 똑같이 연습시켰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사람이라기보다 하나의 전력으로 봤다. 베테랑 선수들의 과거 실적을 인정하는 대신 특별 대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기업에 강의하러 갈 때마다 대표나 임원들이 질문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야구에서는 평등하게 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학력이 높고 자존심 강한 사람의 집합소인 우리 회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가. 부하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부하도, 팀도 망해버린다.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 리더는 신뢰라는 절대적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 팀이나 부하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내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리더를 신뢰한다. 리더가 결과를 내지 않으면 스스로 그 위치를 잃게 되어 있다.
지위와 권력이라는 의자에 앉은 채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리더는 결국 부하에게 뒤처져 자멸하게 되어 있다. 자기 위치만 생각하는 리더는 부하 탓을 많이 한다. 또한 부하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한다. 이런 리더는 부하가 실수를 범했을 때, 부하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야단친다. 자기만족 안에서 부하를 몰아가는 것이다. 조직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살려야 조직이 산다. 선수의 실수에 대한 설교는 1~2분 안에 간단하게 끝낸다.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는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몇 달 전 대기업 강연장에서 만난 CEO가 임직원 미팅에서 내 책의 내용을 인용해 기업의 활성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다. 1964년, 한국에 영주 귀국할 당시, 한국 사람들이 “운동선수는 깡패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야구인으로서 기업의 대표들이 내 강의에 감동했다는 말이 그래서 지금 나에겐 더없이 기쁘게 들린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김성근(고양 원더스 감독)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