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ster_공공 미술 바로 보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공공 미술 행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뉴욕 맨해튼 월 가에 설치한 ‘Charging Bull’과 ‘Fearless Girl’. ⓒ Christopher Penler, Shutterstock.com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여름에도 많은 미술 애호가가 유럽을 방문했다. 올해처럼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쿠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겹치는 해였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중 한 명으로 다양한 미술 행사를 경험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또렷이 기억에 남은 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카셀을 거쳐 뮌스터에 도착했을 때는 미술 관광의 최대 성수기답게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다. 뮌스터 교외에서 간신히 숙소를 구하고 근처 자전거 대여점에서 낡은 자전거를 빌려 시내로 향했다. 지도를 들고 뮌스터 곳곳을 누비며 숨어 있는 작품을 발견하는 과정은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아(Aa) 호수와 주변 공원, 뮌스터 대성당을 비롯한 오래된 건축물, 도심 공터에 이르기까지, 낯선 장소를 돌아다니며 시민에게 길을 묻고, 마주친 관람객과 작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도시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작품 중에선 특히 마이크 켈리(Mike Kelly)의 ‘체험 물동원(Petting Zoo)’이 인상 깊었다. 가축 우리 안에 조각과 3개의 대형 스크린, 가축들을 풀어놓은 이 작품은 기능과 효율, 위생을 우선시하는 현대 도시의 풍경을 엉뚱하면서도 재치 있게 비틀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조각’을 이름으로 내세우는 공공 미술 행사지만, 10년 전에도 이미 영상과 사운드, 설치 등 여러 미술 장르를 통해 자연과 도시를 둘러싼 의제를 다루었다. 아마 주최 측은 1977년 이후 오랫동안 행사를진행하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단순히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 관광객을 유치하는 상업적 공공 미술은 경쟁력을 잃었고, 공공 미술은 미술관보다 개방적이고 급진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1 외벽 곳곳에 그림을 그려 넣은 뉴욕 브루클린의 건물 ‘5 Pointz’. ⓒ Sanchai Kumar, Shutterstock.com
2 라스베이거스 근처 네바다 사막에 위치한 우고 론디노네의 ‘Seven Magic Mountains’.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이 도시 경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설치를 거부한 시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제1회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비롯한 것처럼, 공공 미술은 시민과 미술 전문가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상황에서 발전해왔다. 최근 사례로는 뉴욕 맨해튼 월 가의 ‘황소(Charging Bul)’와 ‘두려움 없는 소녀(Feleasrs Girl)’ 조각 사이의 대립이 있다. 월 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황소’상 앞에 여성의 날을 맞아 임시로 설치한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뉴욕 시가 존속시키기로 했는데, ‘황소’ 조각상의 작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가 작품의 본래 취지를 훼손시킨다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또 그라피티 아트로 주목받은 뉴욕 브루클린 건물 ‘5 Pointz’의 벽화를 건물주가 부동산 개발을 위해 지워버린 사건도 있다. 얼마 전 이 사건을 두고 브루클린 법원은 ‘시각예술 권리에 관한 법(Visual Artists Rights Act)’에 따라 작가들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한편 라스베이거스 근처 네바다 사막에 자리한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인기 작품 ‘7개의 마법 산(Seven Magic Mountains)’은 3년의 지루한 행정 절차 끝에 설치한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사실 공공 미술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충분한 ‘시간’이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매회 10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칠 뿐 아니라, 행사 준비 단계부터 단기간 설치할 작품과 영구 보존할 작품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일본 니가타 현에서 3년마다 열리는 공공 미술 행사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도 마찬가지다. 사라져가는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행사 역시 창설 당시 준비 기간에만 5년을 투자했다는 사실과 작품별로 ‘생애 주기’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이 앞장서 장기 보존할 작품을 선정하고 사후 관리에 힘쓴다는 점에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비슷하다. 성공적인 공공 미술 축제로 자리 잡은 이 두 행사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카스퍼 쾨니히는 40년간,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의 기타가와 프램은 20여 년간 총감독으로서 행사를 조율해왔다는 것이다.

2015년에 열린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에서 선보인 나빈 라완차이쿨(Navin Rawanchaikul)의 ‘The School of Akakura’와 마을 주민들. Photo by Gentaro Ishizuka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가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펼치는 공공 미술 행사라면, 기관이 주체가 되어 장소와 시간에 제약을 두지 않고 공공 미술 활동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그중 ‘크리에이티브 타임(Creative Time)’과 ‘퍼블릭 아트 펀드(Public Art Fund)’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기관의 성격에 따라 방점을 찍는 공공 미술의 성격도 다르다. ‘서밋(Summit)’은 크리에이티브 타임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2009년부터 해마다 시의적 이슈를 놓고 각국에서 모인 작가와 비평가들이 강연과 토론, 전시를 벌인다. 작년에 미국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DC에서 열린 이 행사의 주제는 ‘미래를 점거하라(Occupy the Future)’, 오는 9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행사는 ‘홈랜드와 혁명에 관하여(ofH omelands and Revolutionaries)’라는 점에서 이 기관이 지향하는 공공 미술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1977년에 설립한 퍼블릭 아트 펀드는 뉴욕의 공원과 광장을 비롯한 상징적 장소에 공공 미술 작품을 설치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이들은 아이웨이웨이 같은 유명 작가와 협업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역 작가의 작업도 꾸준히 지원한다. 최근 화제가 된 작품은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펜서 핀치(Spencer Finch)의 ‘로스트 맨 크릭(Lost Man Creek)’. 브루클린의 메트로테크 센터(MetroTech Center) 옆 공터에 설치한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 세쿼이아 국립공원 일부를 100분의 1 크기로 재구성한 ‘작은 숲’이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도시로 옮겨놓은 이 작품은 시민의 안식처, 나아가 파괴된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의 총감독 기타가와 프램은 “공공 미술은 상찬(賞讚)되지만, 과시(誇示)되지는 않는 장르”라고 말했다. 공공 미술 작품은 그 자체보다 그것이 설치된 장소의 역사와 가치를 드러내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바야흐로 위대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공공 미술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글 백지숙(미술평론가, 전시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