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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sse.com Weekly Briefing

FASHION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벌어진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골라 매주 월요일에 소개합니다.

A. 고샤 루브친스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아파트(Apart)>

러시아와 모스크바의 청년 문화(youth culture)를 세상에 알리고, 부모님 옷장에서 발견한 1990년대식 코트에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후디드 파카와 스웨트팬츠를 2010년대 젊은이들의 필수 요소(essential)로 만든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짐작하셨겠지만, 단언컨대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기성복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유수의 일본과 유럽 출판사에서 사진집을 펴낸 사진작가이며, 영상감독이기도 한 고샤 루브친스키. 2017년 3월 초순, 고샤 루브친스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필름 <아파트(Apart)>가 공개되었습니다.

9분을 조금 넘는 길이의 이 단편 필름에는 고샤 루브친스키가 단 한 장면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난 1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주에서 열린 고샤 루브친스키 컬렉션의 모델 캐스팅 콜(casting call)에 참여한 3명의 러시아 젊은이가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외곽 지역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는, 그야말로 변방의 작은 공업 도시입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곳은 다른 나라에 둘러싸여 러시아의 다른 주와는 동떨어져 있는 월경지로 남쪽은 폴란드, 북쪽은 리투아니아, 서쪽은 발트 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샤 루브친스키는 자국 소도시에서 여는 컬렉션을 위해 그의 정체성 그 자체인 ‘러시아 청년’들을 공개 모집했습니다. 이반(Ivan Shemyakin)과 키릴(Kirill Krasnov)을 포함한 3명의 청년은 각각 디브노고르스크(Divnogorsk)와 칼리닌그라드에 살고 있습니다.
영상 속 청년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 각 도시의 조금은 우울하고 차분한 풍광과 환경, 친구들과의 그라피티(graffiti) 작업과 일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고샤 루브친스키 런웨이 무대의 이미지가 단순히 젊은이들, 혹은 그들 문화의 표면만 핥지 않는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낍니다. 컬렉션에 참여한 ‘아마추어’ 모델들은 상업적으로 소구한 패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 러시아 소도시와 대도시에 사는 소년과 청년이라는 교집합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apart〉, A Documentary Film about Gosha Rubchinskiy Collection in Kaliningrad, 2017
Image Courtesy of Inrussia.com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1분은 드디어 ‘컬렉션’에 관해 다룹니다. 넓고 새하얀 공간에는 쇼를 보러 온 수많은 패션 관계자가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흰색 커튼 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저음용 스피커가 고풍스러운 음악을 내뿜는 동시에 쇼의 피날레를 장식할 러시아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걸어 나옵니다. 아직 너무 어려 보이는 소년들과 이제 갓 청년이 된 젊은이들이 고샤 루브친스키가 만든 스웨트셔츠와 재킷, 머플러 그리고 아디다스(Adidas)와 협업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합니다. 무대에 선 스물네댓 명의 이름과 출신지가 자막으로 오르며, 영상은 마무리로 향합니다.
 
크레딧 없이 끝난 영상을 본 다음 왠지 묘한 감상에 빠졌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패션 필름처럼 디자이너나 브랜드에 집중해 컬렉션을 만드는 과정을 배제한 대신, 무대에 오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고샤 루브친스키라는 브랜드가 집중하는 러시아 청년 문화의 지금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포착해냈습니다.
 
이 필름은 모스크바(Moscow)에 기반을 두고 지역 문화를 다루는 프로젝트, ‘인러시아(Inrussia.com)’가 고샤 루브친스키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그들의 웹사이트에 있는 다양한 글과 영상, 사진을 보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러시아 동시대 문화의 현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와 다큐멘터리 모두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inrussia.com/apart

1 <032c> Issue 31, Winter 2016-2017 ‘Helmut Lang Legacy’ Issue Photograph by Hong Sukwoo 2 by Mark Borthwick, 2009 Published by Rizzoli New York

B. 봄이 오는 책장에서 꺼낸 책 두 권

아마도 마지막일 꽃샘추위가 막 지나고 따사로운 햇볕이 온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몸을 뒤덮었던 두꺼운 코트를 세탁소에 맡기고, 곱게 정돈해 옷장 한쪽으로 밀어둘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새로운 계절이 오면 더 가볍고 산뜻하게 바뀌는 옷차림을 상상하지만, 매번 지키지 못할 약속처럼 ‘독서’를 다시금 목표로 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에선 새로운 계절에 읽기 좋은 책과 잡지를 한 권씩 골라보았습니다.

1. <032c> ‘헬무트 랭 레거시(Helmut Lang Legacy) Winter 2016-2017’호
독일 베를린(Berlin)에 기반을 두고 발행하는 패션·문화 잡지 <032c>는 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출판물을 펴냅니다. 고샤 루브친스키와 협업한 032c 레이블 의류, 라프 시몬스(Raf Simons)와 손잡은 대형 프린트를 함께 선보이는 <032c> 최신호에서 주목한 건 바로 디자이너 ‘헬무트 랭(Helmut Lang)’입니다. 그가 이룬 최소주의(minimalism) 패션의 성취를 아는 모든 이가 그의 복귀를 염원하지만, 예술가로서 행복한 삶을 보내는 듯하니 이제 디자이너라는 호칭은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각설하고, 이번 호는 그야말로 헬무트 랭이 이끌던 시절의 브랜드 ‘헬무트 랭’을 깊이 있고 다양하게 파고듭니다. 사진가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의 캠페인 광고 사진부터 디자이너 본인의 장문 인터뷰, 브랜드 타임라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백과사전 수준입니다.

1996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실린 그 유명한 초상 사진(portrait) 광고를 담은 표지에는 ‘헬무트 랭의 유산: 오스트리아 출신 디자이너는 어떻게 새로운 세기를 위한 패션을 발명했나(The Helmut Lang Legacy: How an Austrian Designer Invented Fashion for the New Millennium’라는 부제가 적혀 있습니다. 이 과도한 찬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의 팬이라면 꼭 구해서 봐야 하는 잡지, 아니 단행본입니다.

2. 마크 보스윅, <낫 인 패션(Not in Fashion)>
냉정한 패션계에는 새로 떠오르는 스타와 사람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진 ‘한물간’ 스타가 존재합니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만성피로와 좋지 않은 모든 소문은 패션계라는 거대한 세계가 태생적으로 지닌 그림자와 같습니다.

사진가 마크 보스윅(Mark Borthwick)은 19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래, <퍼플(Purple)> 매거진처럼 대안적 독립 패션 잡지의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퍼플>만의 서정적이면서도 무신경한 패션 화보와 인터뷰는 유럽 독립 패션 잡지 시장을 이끈 영국의 <더 페이스(The Face)>, <아이디(i-D)>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사진가를 고르라면 반드시 마크 보스윅을 가장 위에 올려두어야 할 겁니다.

이토록 한 시대를 풍미한 사진가지만, <퍼플>이 <퍼플 패션(Purple Fashion)>으로 변화를 겪은 이후 해체주의 패션이 한풀 꺾이고 고급 스트리트웨어(high-end streetwear)가 득세하면서 마크 보스윅 역시 서서히 잊혔습니다. 하지만 뎀나 그바살리아(Demna Gvasalia)가 베트멍(Vetements) 키즈로 거리와 주류 패션계를 모두 접수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의 절친한 동료들이 만드는 <리에디션(Re-Edition)> 같은 잡지가 대놓고 1990년대 <퍼플> 매거진에 헌정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다시 마크 보스윅과 함께 인상적인 작업을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리에디션>의 기념비적 첫 호는 마크 보스윅이 1990년대에 담아낸 모델 스텔라 테넌트(Stella Tennant)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새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당시 작업한 사진을 그대로 썼습니다. 그리고 마크 보스윅은 현재 패션계를 이끄는 디자이너이자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된 뎀나와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캠페인 사진과 룩북, 컬렉션 백스테이지 스냅에 이르기까지 ‘사진’이 필요한 곳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칩니다.

이는 곧 1990년대, 조금 더 순수했던 패션의 기억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마크 보스윅이 생경한 1990년대생 젊은이들의 관심을 두루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른 책이 <낫 인 패션>입니다. 에런 로즈(Aaron Rose)가 편집에 참여하고 마크 보스윅의 사진과 삽화, 글귀를 담아낸 두툼한 사진집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 그의 작업을 통틀어 보여줍니다. 리촐리 출판사(Rizzoli New York)가 2009년 펴낸 이 책을 지금 다시 보면, 당시 마크 보스윅의 작업을 대하던 때와는 전혀 달라진 세상을 음미하는 맛이 있습니다.

 

홍석우(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디자인 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