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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sse.com Weekly Briefing

FASHION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들려온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골라 매주 월요일 소개합니다.

A. 천재 사진작가 런항, 세상을 등지다

한국 시각으로 지난 2월 25일 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 지린 성 창춘 출신으로 베이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사진작가이자 시인 런항(Ren Hang)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사실은 마지막으로 그와 교류를 나눈 갤러리와 예술가 친구들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1987년생으로 한국 나이 서른한 살, 다음 달이면 만 서른 살이 되는 사진작가였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사인은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으나 평생 우울증과 싸워온 그가 독일 베를린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사진을 처음 접한 건 친한 영상 감독의 스튜디오에서 본 호주머니 크기의 작은 자가 출판 사진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작품을 마주한 것은 작년 9월, 파리의 갤러리 파리 베이징(Galerie Paris Beijing)에 놓인 사진 몇 점이었습니다.

1 2012_13, Inkjet print, 67 x 100 cm/ 27 x 40 cm   2 Foam_Installation shot-by-Christian van der Kooy   3 2014_24, Inkjet print, 67 x 100 cm/ 27 x 40 cm   4 1987-2017

그의 사진은 웬만한 종이 매체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모자이크 없이는) 절대로 올릴 수 없습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과 독특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괴한 누드와 풍경 그리고 초상 사진은 중국 당국의 탄압과 제재를 받아왔습니다. 그의 사진 속, 불안한 정서를 띤 젊은 중국 청년은 마치 천편일률적인 정치 상황에 대한 반발처럼 보이기도 했지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은 패션과 사진계뿐 아니라 CNN이나 <타임(Time)>처럼 국제 정세를 다루는 종합 언론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중국의 반정부 예술가 겸 큐레이터 아이웨이웨이처럼 말이죠). 하지만 런항은 자신의 작업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논쟁의 중심에 서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계획 없이’ 사진을 찍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작품이 나온다는 말을 생전 인터뷰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요. 과거의 어떤 사진 미학에도 속하지 않은 듯 보이는 런항의 작품은 흔히 얘기하는 ‘참조(reference)’ 과정이 생략된 느낌을 줍니다. 사진을 공개할수록 논쟁의 중심에 선 상황과는 역설적으로, 외국 유수의 사진가와 갤러리, 박물관과 예술 서적 출판사 그리고 패션 잡지와 브랜드에서 끊임없이 구애한 것은 ‘새로움’을 갈구하는 많은 이가 단비처럼 느낀 예술가였다는 방증입니다.

런항의 사진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누구도 그의 천부적 재능에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동시대 사진이 비슷하고 지루한 모습을 띠는 지금, 누구도 그의 사진이 독자적이며, 오롯한 창조의 영역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런항이 사망하기 전, 가장 활발하게 작업한 잡지 <퍼플 패션 매거진(Purple Fashion Magazine)>의 발행인 올리비에 잠(Olivier Zahm)은 그를 추모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런항을 “모든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사진작가이자, 새로운 아라키 노부요시(He inspired all the young generation of photographers. He was to me the new Nobuyoshi Araki)”라고 언급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으로 2000년대 초반 ‘청년 문화(youth culture)’를 재정립한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역시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생전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된 <네이키드/누드(Naked/Nude)>전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포암 사진 박물관(Foam Fotografiemuseum Amsterdam)에서 오는 3월 17일까지 열립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시대 가장 훌륭하고 독보적인 재능을 지닌 사진작가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 Hyein Seo Fall/Winter 2017 Collection at London Fashion Week Photography by Eva Al Desnudo

B. 혜인 서, 런던 패션 위크 데뷔

최근 젊은 한국 패션 디자이너 중 가장 강력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디자이너를 고르라면, 단연코 ‘혜인 서(Hyein Seo)’가 떠오릅니다. 안트베르펜 왕립 예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석사 3학년 과정을 마무리하는 컬렉션으로 2014년 가을·겨울 시즌 뉴욕 패션 위크 기간에 열린 브이파일즈(VFILES.com) 컬렉션에 참가한 이래, 디자이너 서혜인과 이진호가 만든 브랜드 혜인 서는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세계적 이목을 끌었습니다. 유수의 패션 잡지에서 그들의 컬렉션으로 화보를 채우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어워드 중 하나인 삼성패션디자인펀드(Samsung Fashion & Design Fund, SFDF)를 수상하는 등 ‘반짝’하고 사라지는 무수한 디자이너 사이에서 특출한 재능을 뽐내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서혜인을 수년 전 만났을 때, 그는 원래 패션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좋은 소재를 매일 만질 수 있는 메종에 들어가 작업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강제’로 데뷔한 후 3년이 지난 지금, 혜인 서는 뉴욕과 헬싱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착실하게 컬렉션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2017년 현재 혜인 서가 지닌 힘의 원천은 스트리트웨어(streetwear)를 재해석하는 독자적 감각, 사이버펑크(cyberpunk)와 미래주의의 결합, 일본 만화와 비디오게임 등 1990년대와 2000년대 언저리를 관통한, 소년·소녀들이 즐겼을 법한 취향을 함축해 동시대 여성 그리고 그들의 옷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일부 남성이 입기 좋은 기성복으로 변형하는 작업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곧 젊은 디자이너 중 특별한 색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그사이 혜인 서는 뉴욕과 헬싱키에서 두 차례 런웨이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런던의 머신 에이(Machine A)와 도쿄의 그레이트(GR8), 서울의 스페이스 무이(Space Mue)에 이르는 훌륭한 편집매장에도 입점해 있습니다. 하지만 기성 디자이너나 브랜드와 달리 인스타그램 계정(instagram@hyeinantwerp)만으로 시즌이 시작하기 직전 룩북을 공개하는 방식은 세계 곳곳에 퍼진 팬들의 욕구(?)를 충족하기엔 다소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는가 싶던 2017년 2월 중순,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달리 조용하고 신중하게 한 발씩 내딛는 이 젊은 브랜드는 마침내 ‘런던 패션 위크(London Fashion Week)’ 데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혜인 서는 이미 두 차례 런웨이 무대를 치렀지만, 데뷔 초기에 소개한 두 번의 무대 모두 다른 디자이너와의 합동 무대였지요. 오롯이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한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란 뜻입니다. 혜인 서의 꾸준한 조력자 중 하나인 런던 편집매장 머신 에이는 파리와 밀라노, 뉴욕과 서울 그리고 도쿄 등 다양한 선택지 중 신진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에 적극적인 ‘런던’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겁니다.

2017년 가을·겨울, 혜인 서 컬렉션의 주제는 ‘최종 보스(final boss)’입니다. 거리 패션과 만난 고급 기성복이 시대의 흐름이자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지금, 더 깊숙이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한다는 것은 ‘상업성’과 ‘개성’을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죠. 혜인 서는 그 해답으로 일상복과 그들의 취향 안에서 꾸준히 발전하는 ‘디테일’을 제안합니다.

푸른색 유도복과 붉은 점프슈트, 과감하게 어깨를 잘라낸 간결한 디자인의 검은색 니트웨어는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 도형과 사이버펑크 그래픽으로 장식한 배경, 무대 바닥과 만납니다. 이번 시즌에는 지난 컬렉션에서 선보이지 않은 스타일이 몇 가지 더 포함되었지만, 사실 중요한 지점은 여전히 ‘거친(rough)’ 요소를 가득 담아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으로 향한다는 점입니다. 1990년대의 비디오게임과 198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법한 음울하고 음침한 세계관이 은유처럼 옷과 그래픽으로 담겼지만, 바이커 재킷부터 아노락 점퍼까지 혜인 서의 대표적 의상은 모두 동시대 여성을 위한, 또한 여성에 의한 ‘저항정신’을 담아낸 듯 보입니다.

http://hyeinseo.com

 

홍석우(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에디터 이아현(fcover@noblesse.com)
디자인 장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