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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 Therapy

LIFESTYLE

중정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로 견고하게 다듬은 말리부 해변가의 구옥.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공존하는 이곳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켈리 웨어스틀러만의 미학으로 완성된 아늑한 별장이다.

거실에는 일룸 비켈소의 ‘후프’ 체어, 이그나지오 가르델라의 블랙 ‘디감마’ 암체어, 애시버그 마그누스의 섬유 유리 테이블 등 수년을 거쳐 수집한 빈티지 가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천장에는 원래 있던 1950년대 조명을 그대로 두었다. ©The Ingalls

왼쪽 오브제처럼 나란히 놓인 필립 스탁의 빈티지 ‘미스 돈’ 체어 두 점. ©Mark Durling
오른쪽 프랭크 게리의 ‘위글 체어’. ©Mark Durling

“느긋하고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할 수 있는 말리부에 오면 비로소 영혼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에요.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우아함과 절제된 사치가 동시에 반영된 삶이 가능한 곳이죠.” 미국을 대표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켈리 웨어스틀러(Kelly Wearstler)는 쨍쨍한 볕이 쏟아지는 여름날이면 LA 도심을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 서핑이나 휴식을 즐기기 위해 말리부를 찾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캘리포니아에서 결국 평생을 살게 될 것임을 일찍이 깨달은 그녀는 4년 전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 거실과 부엌 옆 작은 문으로 나가면 뜨겁게 데워진 해변의 모래알을 밟을 수 있을 만큼 바다와 맞닿은 지리적 위치도 유혹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독특한 건축물에 마음을 빼앗겼다. 건축가는 불분명하지만 LA에서 많은 작품을 완성한 건축가 루돌프 쉰들러가 떠오르는 특유의 모더니즘을 간직한 이 주택은 1953년 395m² 규모로 지어졌다. 한때는 배우 캐럴 오코너가 소유하기도 했지만, 이후 몇 년간 비워진 채 방치되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거친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낸 느낌이었어요. 당장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충동 같은 게 느껴졌고, 숨 죽어 있던 과거를 회복시키기로 결심했죠.”

가죽이 멋스러운 일마리 라팔라이넨의 1968년 풀카 라운지 체어는 켈리가 가장 아끼는 가구 중 하나. 옆에는 아르노 데클레르크의 사이드 테이블을 두었다. ©Mark Durling

가족 식사 자리에 내놓는 접시에서도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긴다. ©The Ingalls

잿빛 회색 바닥을 유지한 모습.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척 모핏 벤치와 검게 칠한 베이스 10의 ‘코다마’ 시리즈 삼나무 소재 콘솔이 시선을 이끈다. ©The Ingalls

패밀리 룸에서 바라보는 중정의 모습. 높은 키의 열대나무가 이국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The Ingalls

후끈한 열기로부터 보호하고자 이중으로 마감한 에메랄드빛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ㄷ’자 형태의 요새 같은 거실이 보이고, 재퍼니즈 스타일의 놀라운 중정이 등장한다. “건물 구석구석 깊이 새겨진 역사를 벗겨내기보다 건축적 미학을 존중하는 마음이 컸어요. 집 자체가 큰 영감이 되어주었죠. 그래서 일부러 구조도, 바닥의 마감도 바꾸지 않기로 한 거예요. 오리지널 질감에 새로운 소재를 더해 따뜻한 생명력을 부여하기로 했죠. 거칠지만 손으로 만든 듯한 특유의 빈티지 감성으로요.” 켈리가 말을 이었다. “그 밖에 꼭 오리지낼리티를 유지하고자 한 것 중 하나는 부엌의 크기인데, 거실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구조 덕분에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좋고요.”

볕이 쏟아지는 오후의 거실 풍경. 아이보리 톤의 아프라와 토비아 스카파의 1970년대 카시나 ‘소리아나’ 소파, 실로 엮은 댄 존슨의 ‘2750’ 라운지 체어, 미첼 보브릭의 ‘컨트롤’ 플로어 램프가 자리한다. ©The Ingalls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는 루카스 그슈반트너의 ‘카페스툴’을 두었다. ©The Ingalls

그녀가 이 집에 머물며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일몰 때다. 거실을 바라보는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오렌지빛 석양이 부엌을 가득 채우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순간적으로 따뜻한 광채가 빛나는 집으로 변모한다. “세상에 우리 가족만 있는 듯 조용하고 매력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진정 평온한 순간이죠.”
반면 바닥부터 천장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나무살 창은 이 집의 표정을 결정하는 요소다. 이 삼나무 패널은 1층부터 2층까지 집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집에 서정적 이미지를 불어넣는다. 낮이면 햇빛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집 안 공기가 훈훈해진다. 창을 열면 바다와 정원이 내다보이고, 닫으면 창호지 사이로 은은한 빛이 스며든다. 덕분에 집 안 어디에서나 눈을 돌리면 바다의 수평선이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파도 소리가 철썩인다.

©Joyce Park

켈리는 ‘부조화스러운 것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기조로 대담한 컬러, 충돌하는 프린트를 즐겨 사용하지만 이 집만은 단색으로 내부를 꾸몄다. “재퍼니즈식 정원의 푸른빛에서 영감을 받아 가구와 어울리는 그린 컬러를 제작했고, 자연과 맞닿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색상을 구성한 것은 물론 다양한 재료를 신중하게 선택했어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켈리는 기존 모더니즘을 살린 스케치에 하나씩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해변에 위치한 덕분에 등나무나 흙처럼 거칠지만 진솔한 재료를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어요. 공간 곳곳에 나무 패널을 사용해 미묘한 질감을 더했고, 날렵하면서 기하학적인 직선을 살려 시각적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곡선을 지닌 빈티지 가구와 대비되도록 연출했죠.”

오피스 공간에 놓인 마리오 벨리니의 대리석 테이블. ©The Ingalls

4개의 침실 중 말리부 브로드 해변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침실에는 수작업으로 만든 라이언 벨리 체어를 놓았다. ©The Ingalls

안드레 소네이 빈티지 사이드보드 위에 독특한 곡선의 조지 프라이드먼 램프를 놓고, 벽에는 게일 P 그리핀의 섬유 조각 작품을 걸었다. ©The Ingalls

켈리는 어릴 때부터 앤티크 가구 딜러였던 어머니를 따라 벼룩시장이나 골동품 경매장에 가곤 했다. 30년 넘게 자연스럽게 습득한 심미안으로 완성한 컬렉션은 굉장하다. 말리부 프로젝트를 위해 공수한 가구와 예술품은 디자인 황금기라 일컫는 1950~1980년대 작품이 대부분이다. 사무 공간에 배치한 마리오 벨리니의 초록색 대리석 테이블이 대표적 예. 1987년에 만든 테이블은 어마어마한 무게만큼 독특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거실에 둔 일마리 라팔라이넨의 1968년식 풀카 라운지 의자는 말리부 해변의 느긋한 실루엣을 꼭 닮아 켈리가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 중 하나다. 침실 머리맡에는 조개껍데기와 황동으로 만든 모리츠 해커의 1900년대 아름다운 노틸러스 테이블 램프를 두어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전형적인 말리부를 경험하기 위해 켈리는 해변에서 서핑을 배울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말리부의 해변은 세계 최초로 서핑 보호 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질 좋은 파도를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어요. 특히 아침 일찍 서핑하다 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영혼이 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파도가 더 부드러워지는 여름에 꼭 도전해보세요. 그리고 낮에는 1930년대 지은 고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애덤슨 하우스를 방문하는 것이 좋겠어요. 말리부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고, 멋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저녁에는 해안가에 자리한 노부 말리부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만끽해보세요.”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우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