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e to Oyster
굴이오, 굴. 남자의 기운이 불끈 솟아나게 할 굴 먹기 좋은 계절이 왔소.

오늘(10월 26일), 셰프에 관한 영 화 한 편을 봤다. 개봉을 앞둔 영화를 먼저 보는, 일종의 시사회였다. 주인공은 원래 엄청나게 잘나가는 스타 셰프였다. 그러다 마약과 알코올중독에 빠져 어디론가 잠적했다. 그가 그것을 끊고 시작한 일은 굴 까기였다. 아무도 모르는 미국 루이지애나 시골 식당에서 딱 100만 개의 굴을 까고 완전히 새사람이 됐다. 사실 그리 특별할 건 없는 영화였다. 다만, 주인공이 도 닦듯이 선택한 일이 바로 굴 까기였다는 것. 지긋지긋한 단순노동, 그렇다고 일이 쉽지도 않다. 칼이 엇나가면 팔뚝과 손가락이 베인다. 힘들지만 인정도 해주지 않는 중노동, 그것이 굴 까기였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그 일이 주인공의 ‘개과천선’을 위한 아이템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 까준 굴을 먹는다. 서양도 그렇다. 다만 한국은 굴이 좀 싸고, 서양을 비롯한 외국은 비싸다. 작년에 파리로 출장을 갔다. 촬영팀과 코디네이터에게 술 한잔 살 일이 있었고, 해물 전문 레스토랑(그렇고 그런, 팁이나 왕창 바라며 관광객 등칠 궁리나 하는 시내의 해물 전문 식당이었다)을 골랐다. 사람은 넷이었고, 굴은 12개가 나왔다. 다른 해물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굴이었다. 특별히 맛도 없는데 30유로가 넘는다. 한국 같으면 포장마차에서 단돈 1만 원에 20개쯤 입을 벌리고 있는 녀석을 사 먹을 수 있었을 거다. 웨이터는 온갖 생색을 냈다. 나는 그를 당장 통영의 ‘박신장’에 데려다주고 싶었다. “보라고. 우리는 굴을 어떻게 까는지!” 박신장은 문자 그대로 ‘몸을 벗기는 장소’라는 뜻이다. 거대한 공장에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여성 노동자(아줌마라고 부르는)가 연신 굴을 깐다. 말을 붙여도 대답이 없다. 백남봉이나 이창명이 와서 흥을 돋워도 입을 안 여는 여자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굴 까는 일은 ‘도급’이기 때문이다. 굴 1kg(껍데기를 뺀 속살만)을 까고 2000원 남짓 받는다. 한 가마니의 굴을 까야 1kg의 알 굴을 얻고, 2000원 하고 몇백 원이 더 생긴다. 속도가 곧 돈이기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 그러니 백남봉이 와도 대꾸가 없을 수밖에.
매년 10월 중순이면 통영에서 굴 초매식이 열린다. 첫 번째 경매라는 의미로, 햇굴을 처음 파는 공식 행사다. 보통 굴은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즌을 시작해 12월에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나는 1년생 굴의 경우 2~3월에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크림처럼 진해 싫다는 사람도 있다. 굴의 산뜻한 맛이 적다고도 한다. 하지만 요리사라면 2~3월의 굴이 더 마음에 들게 마련이다. 맛이 풍부하니까. 굴 색깔도 달라진다. 12월까지 밝은 우윳빛을 띤다면 그 이후에는 약간 진하고 누런 쪽으로 바뀐다. 이른바 숙성 컬러.
한국처럼 굴이 싼 나라는 없다. 굴 까는 비용이 저렴한 이유도 있지만 생산량이 많다. 먹이 하나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란다. 세계식량기구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굴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 그다음이 한국이다. 세계 2위다! 그래서 중국에서 온갖 수산물을 수입한대도 굴은 필요치 않다. 한국의 바다는 말하자면, 굴 다산성이다. 씨만 넣으면 쑥쑥 자란다. 다양한 품종이 있지만 우리가 접하는 건 대개 참굴종이다. 양식하기 편하고 잘 자라며 맛도 괜찮아 가장 흔히 기른다. 서해에서 프랑스 방식으로 굴을 기르는 회사가 있다. 청담동 등지의 몇몇 고급 레스토랑에 납품한다. 나도 써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맛이 좋다. 게다가 보통 1년생을 채취하는 것과 달리 더 나이 든 굴을 내보낸다. 그래서 크기가 크다. 굴을 못 먹는 여름철에도 출하한다. 굴을 여름에 안 먹는 건 날씨보다는 산란에 따른 독소 때문인데 이 회사는 산란을 조절한다. 독소가 없으니 당연히 먹어도 좋은 굴이다. 당신은 여름이라고 광어나 홍합을 안 먹는가? 그렇다. 여름 굴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굴은 남자의 음식이라고 한다. 물론 여자가 먹어도 몸에 좋다. 비스마르크가, 카사노바가 굴을 좋아해 엄청난 양을 먹었다고 한다. 폭식의 시절이었다. 뭐든 있으면 엄청나게 먹었다. 루이 14세가 먹어치운 한 끼 식사에 수킬로그램의 송아지 고기를 비롯해 칠면조 한 마리, 크림을 얹은 케이크(어마어마한 직경의) 반 판 정도가 흔히 등장한다. 당시 많이 먹는 것은 권력이었다. 그러나 굴을 그렇게 먹는다고 밤새 여자를 깨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그 남자의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굴은 비아그라가 아니다. 그래도 굴을 장복한다면 분명 어떤 혜택을 얻겠지 싶다. 성분(정액의 기초가 되는 미네랄 같은 것)에 뭔가 기여하는 게 있을 것이다. 적어도 플라세보 효과라도.
통영 얘기 한 자락 더 한다. 통영에 가면 의외로 굴 요리를 찾기 힘들다. 흔하니까 “뭘 그걸 식당에 가서 사 먹어” 하는 분위기다. 목포에 가서 홍어집 찾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 방송에 단골로 나오는 집이 있다. 굴 요리 전문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으니 계속 그 집이 나온다. 주인 아저씨가 굴 전문가다. 온갖 굴을 꿰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먹는 건 거의 모두 참굴이다.
굴은 자연산이 거의 없다. 그걸 따서 시장에 낼 인력이 없다. 힘들게 바위에 붙어 굴을 따고, 다시 살을 발라 내놓는다면 1kg에 10만 원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사 먹겠는가. 그러니 자연스레 자연산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양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연산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러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이상한 굴이 있다. 바로 천북굴이다. 재작년 겨울 천북수산 박상원 대표를 따라 ‘굴밭’에 간 적이 있다. 썰물에 장화를 신고 한참 들어가니 굴밭이다. 굴이 죽고 죽어서 그 껍데기가 바다에 쌓여 노출된 채 다시 새로운 굴이 계속 피어나고 있는 것. 보통 서해안 굴은 투석식, 즉 갯벌에 돌을 던져두고 거기에 종패를 붙여 기르는 방식인데 여기선 저절로 알아서 자란다. 과거 일제 때 송지식(소나무 말뚝을 박고 굴을 기르는 방식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구식 방법이다) 양식을 하며 방치해둔 나무에서 굴이 새끼를 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천북굴은 보통 2~3년생을 캐는데 그럼에도 크기가 작다. 까맣고 짭짤하다. 서울에서도 구할 수 있으나 흔하지는 않다.
굴을 어떻게 먹을까. 유럽에서 겨우 레몬즙이나 쳐서 먹는 건 굴이 비싸기 때문이다. (캐비아나 트러플이 그렇듯) 본디 비싼 재료는 그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먹으려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라면 다채롭게 요리하기 좋다. 우선 튀김! 이건 일본에서 만들기 시작한 요리다. 일본인은 튀김을 뒤늦게 서양에서 받아들였지만 그 기술을 최고로 발전시켰다. 돈가스도 팬에 지지던 포크커틀릿을 딥 프라이로 조리해 맛에 깊이를 더한 것이다. 굴은 수분이 많아 튀기기 어렵다. 한국에서 잘 튀긴 굴을 먹는 건 행운이다. 보통 굴 하나보다는 서너 개를 합쳐 모양을 만들고 반죽과 빵가루를 입혀 튀긴다. 좋은 굴을 골라 가볍고 진하게(이 이율배반을 용서하시오) 튀기는 집은 별로 못 봤다. 나는 대개 오븐 구이를 한다. 한쪽 껍데기를 벗긴 후 말간 살 위에 마늘과 허브, 빵가루를 올리고 올리브 오일과 안초비 소스를 뿌려 굽는다. 안초비는 빼도 된다. 아주 간단하면서 맛이 좋다. 200℃ 오븐에서 5~6분이면 충분하다.
일식에서 굴 초회는 또 다른 맛이다. 연한 간장 식초 소스에 담가 내는 싱싱한 굴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차가운 나마조조(생저장 사케) 한잔 곁들이면 멋지다. 굴로 파스타를 할 수도 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시도해 요즘 조금씩 번져가는 듯하다. 이를 이탈리아식이라고 알고 있는데 오산이다. 굴이 비싸고 귀한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에 굴을 익혀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마구 만들어보자. 팬에 올리브 오일을 충분히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어 볶는다. 그리고 열댓 개쯤 싱싱한 굴을 넣어 가볍게 볶는 것이다. 너무 볶으면 질겨진다. 여기에 스파게티나 링귀네를 넣어 버무리면 끝이다. 잘게 다진 이탤리언 파슬리를 듬뿍 뿌리는 것도 잊지 말 것.
굴에 관한 짧은 시(졸작이다)를 한 편 써본다. “겨울이 언제 간다고 하든 / 눈 속에 매화 피거든 그리 알지 / 사랑이 언제 떠난다 하든 / 혼자 쑥국 떠먹을 때 그리 알지.” 쑥이 나올 때까지 굴을 먹을 수 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사실 굴 먹는 계절은 따로 없으니 큰 걱정은 마시라.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글 박찬일(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