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YSSEUS IN PARIS
파리에서 마주한 회화 작품과 오페라를 색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의 여행기.
파리에서는 늘 뭔가 별난 일을 꾀하고 싶다. 수년 전, 졸저 <스트라빈스키>를 쓰려고 세기말의 흔적을 훑다가 막심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박물관 학예사 피에르 엘렌은 며칠 전 우디 앨런 감독이 한 무리를 데리고 견학 왔다가 “또 보자”며 돌아갔다고 했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고, 현대의 주인공이 시간 여행으로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 막심의 아이콘을 만나는 유명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뚝딱 완성됐다. 한번은 코제트를 안고 파리에 도착한 장 발장이 자베르 경감의 추격을 피해 수도원 담을 넘던 급박한 밤을 소설에 적힌 그대로 추적하기도 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선 몰리에르에서 사라 베르나르에 이르는 거대한 프랑스 문예사를 쓸 수 있다면, 몽마르트르 묘역의 스펙트럼은 그보다 미시적이다. 탐미주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발레 <장미의 정령(Le Spectre de la rose)>의 세 주인공 테오필 고티에(시인)와 엑토르 베를리오즈(음악가), 바츨라프 니진스키(무용가)가 옹기종기 묻힌 곳이다.

위쪽 루브르 마를리관.
아래쪽 앵그르의 ‘호메로스 신격화’.
회화 속 테니스
이번 여행의 키워드 중 하나는 ‘테니스’였다. 마침 롤랑가로스 경기장에서는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려 팬들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내 관심사는 우승자 알카라스나 시비옹테크가 아닌 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그는 프랑스혁명 당시의 중요한 사건을 ‘테니스 코트의 서약(Le Serment du Jeu de Paume)’에 그렸다. 1789년, 루이 16세는 세금을 늘리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국왕은 의회를 해산했고 이에 평민 의원들은 대안 장소인 베르사유 궁전 앞 테니스장에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해산하지 말자고 서약했는데, 이것이 바로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다. 프랑스혁명의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테니스장은 ‘주 드 폼(Jeu de Paume)’, 곧 손 놀이라 불렸다. 라켓이 도입되기 전 손으로 공을 치던 경기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80여 년 뒤인 1871년에는 보불전쟁으로 제2제정이 붕괴하고 파리 코뮌이 수립된다. 시민군은 정부군에게 저항하며 여러 곳에 불을 질렀고, 이때 유서 깊은 튈르리 궁전이 불타고 만다. 궁전이 있던 자리에는 정원과 부속 건물만 남았는데 이것이 바로 실내 테니스장 주 드 폼이고, 다른 하나는 식물원 오랑주리다. 현재 전자는 사진 박물관, 후자는 모네가 그린 거대한 수련으로 유명한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올림픽 준비로 어수선한 틈에 파리 미술관의 그림도 뒤섞여버렸다. 16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낳은 작품 ‘해돋이’로 유명한데, 그 간판 그림을 오르세 미술관에 빌려준 것이다. 그 대신 여러 곳에서 스포츠 관련 미술품을 모아 특별전을 열었다. 세계 어느 도시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문을 열기 전에 갈 수 있는 곳은 교회와 묘지뿐. 포레, 드뷔시, 마네 등이 잠들어 있는 파시 묘지에 들러 이슬 머금은 묘비 사이를 산책 삼아 거닐다 때가 되어 바로 앞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르누보와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나비파’는 원근법을 거부하고 평면적 회화를 전개했다. 유파의 구심점 모리스 드니는 “그림은 본질적으로 평평한 표면 위에 칠한 색채로 이루어진다”는 말로 20세기 추상화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했다. 이날, 드니의 ‘나우시카’라는 두 연작이 대번에 눈길을 끌었다. 여성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는 이 그림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속 등장인물 이름을 붙인 것이다. 테니스는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긴 했지만, 고대에 테니스라니! 호메로스 원작 속 나우시카는 해변에서 오디세우스를 발견한 이웃 나라 공주다. 10년간의 트로이전쟁 후 다시 10년을 떠돌던 오디세우스는 그녀 덕분에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지난 역경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호메로스는 이렇게 이야기를 연대순이 아닌 앞뒤를 뒤섞어 비선형적으로 전개했다. 근대소설이나 현대 영화의 플래시백 효과가 이미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것이다. 나우시카와 친구들은 공을 던져 상대방을 맞히는 놀이 중이었다. 공은 풀숲에서 헐벗은 몸을 숨긴 오디세우스에게 굴러갔다. 여기서 드니는 피구를 테니스로 바꾸었다. 나는 이것이 드뷔시와 니진스키 때문임을 직감했다. 드니가 ’나우시카’를 그린 1913년 니진스키는 드뷔시의 ‘유희(Jeux)’를 발레로 초연했다. 당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춤으로 만드는 데 애를 먹던 그를 귄즈뷔르 남작이 후원했다. 그 대가로 니진스키가 ‘유희’를 헌정한 것. 이는 두 여인이 테니스를 치다가 공이 굴러간 자리에서 한 남자가 나오고, 묘한 삼각관계가 전개되는 내용이다. 형식을 파괴한 드뷔시의 음악은 드니 일파가 입체를 거부하고 평면적 회화를 시도한 점과 유사하다. 일대 소동을 일으킨 ‘봄의 제전’과 달리 ‘유희’는 당시 샹젤리제 관객에게 지나치게 어려워 금세 잊히고 말았다. 꾸준히 녹음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진가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음악에 관심이 높던 드니가 드뷔시의 ‘선택받은 여인’이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 작품을 위해 그린 그림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우시카’와 같은 해에 초연된 ‘유희’를 연결 지으며 느낀 쾌감은 그날 하루를 지배하고도 남았다. 두 작품 사이에선 내가 현대의 오디세우스인 셈이니 말이다.
메데이아의 부활
저녁엔 파리 체류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오페라 관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복면 유령이 출몰하는 파리의 심장, 가르니에 극장에서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바로크 합주단 레자르 플로리상이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의 <메데이아(Medee)>를 야심 차게 상연 중이었다. 루이 14세는 부왕의 사냥터 자리에 자신의 이상을 펼칠 궁전을 지었다.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와 작가 몰리에르는 그 뜻을 무대의 비전으로 제시할 심복이었다. 국왕은 륄리의 <밤의 발레>에서 태양 역할을 맡은 이래 ‘태양왕’으로 불렸다. 루이 14세의 후원을 받은 륄리는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파리 오페라(Opera de Paris)의 모태가 된 것. 이후 륄리의 뒤를 이은 샤르팡티에가 아카데미를 위한 유일한 작품 <메데이아>를 썼으나 초연에 실패하고 300년 가까이 묻혀 있다가 1976년 재연되었다. 전곡을 두 번이나 녹음한 이 분야 최고 전문가, 노장 크리스티를 포함해 꿈의 진용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한 배역 덕에 이번 파리 프로덕션은 막이 오르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사실 메데이아는 그리스신화 속 여성 가운데 가장 논란의 대상이다. 그녀의 모험은 남편 이아손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아손의 왕위를 빼앗은 숙부는 조카에게 황금 양털을 가져오면 양위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아르고호를 타고 온 이아손에게 반한 메데이아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마법을 써 황금 양털을 얻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녀는 이아손과 함께 도망쳐 결혼한 뒤 두 아들을 낳는다. 피에르 코르네유의 원작을 동생 토마가 각색해 오페라가 된 <메데이아>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크레온 왕에게 의탁한다. 하나 이미 이아손의 마음은 메데이아가 아닌 크레온의 딸 크레우사 공주에게 있었고, 오론테 왕자와 정혼한 사이였던 크레우사도 이아손과 한마음이었다.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남편의 속내를 알게 된 메데이아는 오론테와 합세해 복수한다. 그녀는 이아손이 크레우사의 환심을 사려고 가져갈 황금 옷에 독을 묻힌다. 그 옷을 입은 크레우사는 독이 퍼져 죽고, 이아손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하라고 부추기던 크레온 역시 메데이아의 마법에 미쳐 오론테를 죽이고 자살한다. 그럼에도 메데이아는 원한이 풀리지 않아 이아손과 사이에 낳은 두 아이의 목숨마저 뺏는다. 이아손은 그 시신 위에 선 메데이아를 보며 망연자실한다.
샤르팡티에의 ‘테 데움’은 선율이 너무나 친숙하다. 루이 14세의 전승을 축하하려고 쓴 이 종교 합창곡은 1953년 발굴되어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유럽방송연맹 시그널로 쓰이며 바로크 작곡가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메데이아>의 서곡과 춤곡, 막간 음악도 이와 유사하게 박진감이 넘친다. 드니가 고대의 나우시카에게 테니스 라켓을 들려주었듯이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카는 이아손에게 현대의 장교복을 입혔다. 하지만 자녀를 살해함으로써 남편의 외도에 복수한 전대미문의 마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크리스티와 그가 키운 메조소프라노 레아 데잔드레가 어떻게 관객을 설득했는지, 다음 달에 이어서 살펴보자.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