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Your Hand!
시계의 얼굴에 해당하는 다이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핸드(바늘). 그렇다 보니 핸드는 시간을 표시하는 기능적 부품일 뿐 아니라 시계의 개성을 드러내는 미적 요소로도 활용된다.

01 바통 핸드(Baton Hand)
프랑스어로 막대기, 영어로는 지휘봉을 뜻하는 바통 핸드는 굴곡 없이 반듯하게 뻗은 핸드 형태를 통칭한다. 바(bar) 핸드라고도 부르며, 그 굵기나 핸드 중심에 야광 도료인 슈퍼루미노바를 덧바르냐에 따라서도 시계의 인상이 확 달라 보인다. 주로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시계에 사용하는데, 롤렉스의 데이트저스트나 데이-데이트, 오데마피게의 로얄오크, 피아제의 알티플라노, 반클리프 아펠의 피에르 아펠 등이 대표적이다.
02 소드 핸드(Sword Hand)
중세시대 검을 연상시키는 소드 핸드는 클래식한 드레스 워치부터 강인한 디자인의 파일럿 워치에 이르기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형태다. 일직선 형태의 바통 핸드에 비해 끝의 모서리각이 예리하기 때문에 시각을(특히 분 눈금을) 보다 세밀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랑에 운트 죄네는 랑에 1·1815·삭소니아 등 대부분의 시계에 얇고 길쭉한 형태의 소드 핸드를 사용하고 있으며,까르띠에역시 탱크와 산토스 등 다양한 컬렉션에 폭이 좁고 길이가 다소 짧은 특유의 소드 핸드를 오랜 세월 사용해왔다. 반면 불가리의 불가리 불가리나 옥토처럼 소드 핸드 가운데를 스켈레톤 처리하거나 별도로 야광 도료를 덧바르기도 하며, 이들과 달리 벨앤로스처럼 핸드의 폭을 두툼하게 변형해 파일럿 시계가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가시성을 극대화한 예도 있다.
03 도핀 핸드(Dauphine Hand)
도핀 핸드는 큰 범주로 보면 소드 핸드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도핀 핸드는 핸드 윗부분에서 끝까지 걸림 없이 유려하게 폭이 좁아지는 형태라는 차이가 있다. 도핀 핸드를 사용하면 시계의 인상이 한층 날카로워 보인다. 드레스 워치의 정석으로 통하는 파텍필립의 칼라트라바와바쉐론 콘스탄틴의 패트리모니의 경우 도핀 핸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시리즈, 로저드뷔의 엑스칼리버, 제라드 페리고의 빈티지 1945, 그랜드 세이코의 시계에서도 도핀 핸드를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변형의 폭이 넓은 바통 핸드나 소드 핸드 형태에 비해 도핀 핸드는 주로 드레스 워치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04 브레게 핸드(Breguet Hand)
시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꼽히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다기능 탁상시계 심퍼티크나 투르비용의 발명가로 유명하지만 바늘과도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1783년 회중시계에서 가늘고 긴 핸드 끝 부분을 오픈 팁 처리한 모양의 핸드를 처음으로 선보인 것. 당시 정해진 명칭이 없어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브레게 핸드’라 부르게 되었다. 부식을 방지하고 미적 효과를 주기 위해 고온에서 까다로운 열처리를 통해 얻은 깊은 블루 톤의 브레게 핸드는 클래식 드레스 워치를 규정하는 상징적 요소가 되었고, 최근에는 브레게 외에 수많은 브랜드의 시계에서도 볼 수 있다.
05 리프 핸드(Leaf Hand)
리프 핸드는 그 이름처럼 수줍게 오므라든 풀잎을 연상시킨다. 바통 핸드나 소드 핸드가 직선적이고 남성적이라면, 우아하게 곡선 처리한 리프 핸드는 여성스럽다. 리프 핸드는 주로 간결한 디자인의 드레스 워치에 활용하며, 몽블랑의 스타와 에르메스의 아쏘 컬렉션 등이 대표적 예다.

01 푸아르 핸드(Poire Hand)
푸아르란 프랑스어로 과일 ’배’를 뜻한다. 서양배 모양에서 유래한 푸아르 핸드는 18세기 후반의 마린 크로노미터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현대에도 고전적 디자인의 시계에 주로 사용한다. 글라슈테 오리지널의 세네터 컬렉션과 파텍필립의 여성용 칼라트라바, 오메가의 일부 뮤지엄 컬렉션, 보베의 레시탈 9 미스 알렉산드라 투르비용 같은 시계에서 엿볼 수 있다.
02 메르세데스 핸드(Mercedes Hand)
메르세데스-벤츠의 로고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름 붙인 핸드 형태. 하지만 트리튬 계열의 야광 물질을 시침 끝에 번짐 없이 도포하기 위해 고안한 형태였다. 다시 말해 20세기 초 당시의 기술로는 야광 도료를 넓은 면적에 도포하면 도료가 한쪽으로 뭉치거나 균일하게 발리지 않았기 때문에 시침 끝을 세 갈래로 분할해 야광을 채우는 식으로 발림 방식을 개선한 것이다. 롤렉스는 전문 다이버를 위한 서브마리너나 탐험가를 위한 익스플로러, 파일럿 워치 GMT-마스터 같은 컬렉션에 반세기 가까이 광범위하게 메르세데스 핸드를 사용해왔고, 그 결과 메르세데스 핸드는 롤렉스 시계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었다.
03 커시드럴 핸드(Cathedral Hand)
대성당 창문 형태에서 착안해 커시드럴 핸드 혹은 비잔틴 핸드로도 불리는 이 핸드는 메르세데스 핸드와 마찬가지로 시침 끝에 야광 도료를 고르게 도포하기 위해 고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시계 제조사들이 손목시계에 적극 도입했고, 그전인 1920년대에 제조한 초창기 손목시계에서도 간혹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제니스가 파일럿 컬렉션 몽트레다에로네프 타입 20시리즈에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던 원형의 커시드럴 핸드 끝 부분을 날카롭게 변형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표현했다.
04 Extraordinary Hand 1
파네라이는 올해 초 피렌체 대성당과 협력해 두오모 대성당 내 일명 ’파올로 우첼로의 시계’로 불리는 대형 벽시계를 완벽하게 수리,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높이가 7m에 달하는 이 시계는 1443년 피렌체의 시계 제작자 안젤로 디니콜로가 처음 제작한 것으로 매우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반 시계와 달리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24시간을 표시하는, 단 하나의 바늘만 갖춘 현존하는 유일한 ‘이탤리언 타임’ 체계의 시계. 태양을 연상시키는 방사 형태의 여러 조각을 하나의 바늘에 덧붙인 이 유니크한 핸드는 한편으로는 손목시계가 등장하기 전 무척 다채로운 형태의 핸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05 Extraordinary Hand 2
시계 제작자이자 복원가로 유명한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이끄는 브랜드 파르미지아니는 19세기 초 한 회중시계를 복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발 판토그래프(Ovale Pantographe)라는 모델을 발표했다. 핸드가 마치 만화영화 <형사 가제트>의 주인공 팔처럼 오벌 형태 다이얼에서 회전하는 동안 케이스의 지름이 긴 부분에서는 늘어났다 짧은 부분에서는 줄어든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이얼의 궤도에 따라 핸드의 길이 변화를 정밀히 계산해 제작한 것은 물론, 티타늄 소재 핸드를 블루잉(고온에 가열해 선명한 블루 컬러를 얻는 과정) 처리하고 조립하는 과정까지 많은 공을 기울였다.
에디터 | 이서연 (janicelee@noblesse.com)
글 |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