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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청춘이 남기고 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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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 내가 만난 2개의 사랑 그리고 우정.

어릴 적에는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청춘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쳤다고 생각했다. 혹은 기억을 심하게 왜곡하거나. 살아보니 나와 다른 사람이 비슷한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오히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틀리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청춘은 늘 아름답진 않더라도 내가 겪은 것처럼 고통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게 되었으면 뭐하나. 다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걸. 그리고 나는 절대로 다시 그 공포와 분노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미쳤나?

그래도 청춘이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면 다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완전히 속았다. 겨우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고, 더욱 숨 막히는 스테이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러보니 나는 첫 관문을 간신히 통과한 조금 큰 도토리들 중에서 가장 작은 축이었다. 다들 어쩜 그렇게 똑똑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잘생겼는지. 그렇게 열등감은 내 삶의 핵심 축이 되었다. 그래도 청춘이라고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내가 내 얼굴과 성격은 고려하지 않고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다. 말을 걸어볼 엄두도 못 낸 나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도서관 2층 열람실에서 그녀의 음성을 몰래 듣다가 그녀가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벚꽃잎이 흩어지던 청송대에서 그녀의 이름을 얻어냈다. 그녀의 친구가 “ 야, 이 문둥이 가시나야~!”라고 말했을 때 난 조용히 그 이름을 가슴속으로 되뇌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그렇게 1학기가 끝나갈 즈음 그녀와 도서관 입구에서 마주쳤다.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가고, 그녀는 나오고 있었다.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몇 개월 동안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두려움이 용기를 주었는지 나는 그녀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난 당신을 좋아한다고. 아! 정말 현명하지 못한 도입부였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녀가 내게 선물한 첫마디였다. 매몰찬 어투와 달리 그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머뭇거렸고, 나는 자판기 커피를 사주며 한참을 떠들었다. 그런 용기가 대체 내 안의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어느새 우린 그녀가 살던 여학생 기숙사 앞에 와 있었다. 시험 기간이었지만 우리는 다음 날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참, 내게는 또 하나의 짝사랑이 있었다. 노래였다. 역시 문제가 있었다. 내가 노래를 못하고 기타도 잘 못 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래를 만들었다. 매일 밤 악보 위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하고,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진술을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노래는 늘, 이미 세상에 알려진 노래의 복제품이었다. 나는 결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나만의 노래 하나를 쥐어짜내려 애쓰다 기타를 품에 안고 잠들곤 했다. 그렇게 풀리지 않던 노래가 그녀를 배웅하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는 술술 흘러나왔다.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삶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했지만, 너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후부터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변해가네’라는 노래였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뮤즈가 되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그녀는 소심하고 불안하며 구질구질한 나에게 지쳤다고 했다. 그녀가 나의 실체를 알게 되고 실망해서 떠날까 봐 두려워하던 내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떠났지만, 나는 그 후에도 한참을 더 그녀와 함께 살았다. 그녀와의 시간, 그녀의 잔영 속에서 살았다. 어디서든 그녀의 모습이 보였고 그녀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몰랐다. 정말 한심했다. 그해에 나는 낙제를 했다. 내 열등감이 커져갈수록 슬프게 징징거리는 노래는 더 많이 흘러나왔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나는 외쳤지만 그녀는 내 머릿속에 더 깊이 똬리를 틀었다. 죽으려 했지만 죽지도 못했다. 그저 그녀를 한 번만 더 보고 싶을 뿐이었다.

마지막 무모한 시절
다행히 나만 그런 ‘찌질이’가 아니었다. 나중에 동물원의 멤버들이 된 내 친구들도 하나같이 나처럼 겁에 질리고 버림받은 것이다. 종로에서 모인 우리는 쭈그려 앉아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다, 낙원상가에서 악기를 구경하고 괜히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의 ‘Boxer’를 치다가 주인에게 한 소리 듣고 마음 상해서 아래층에 있는 순댓국 한 그릇에 500원 하는 광명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 정작 학교에는 잘 가지 않았지만 신촌에 가면 1000원짜리 잡탕에 무한 리필 김치와 물을 넣고 가게가 문 닫을 때까지 끓일 수 있는 일성집을 찾았고, 안암동에 가면 닭발집을 찾았다. 가끔 장미여관이나 돌다방에 가서 비디오를 보기도 했지만, 역시 돈이 문제였다. 우린 한 친구 집에서 며칠씩 기거하다 혼나기 전에 다른 친구 집으로 옮겨가는 집시 혹은 유목민이었다. 짐을 챙겨 집을 떠날 때면 우릴 향해 ‘쯧쯧’ 혀를 차는 부모님들의 한숨이 뒤통수에 꽂히곤 했다.
죽은 광석이 집에 머물 때였다. 비디오로 영화 <이지 라이더>를 함께 봤다. 피터 폰다, 데니스 호퍼, 잭 니컬슨이 등장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미국을 가로질러 가다 어처구니없이 죽는 로드 무비였다. 그런데 너무 멋있고 좋았다. 피터 폰다가 손목시계를 던져버리고 오토바이를 으르렁거리며 출발하는 첫 장면부터 우린 이 영화가 딱 우리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 속 그들처럼 정해진 틀과 기대와 억압 등의 무게에서 벗어나 끝없이 거칠게 달리고 싶었다. 가슴에 응어리진 이름 모를 뜨거운 덩어리를 세상 끝 어딘가에서 아주 멀리 토해내고 싶었다. 우린 흥분해서 언젠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자고 약속했다. 멋진 헬멧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뒤에 금발의 풍만한 아가씨를 태우고 가기로. 그런데 한 친구가 이의를 제기했다. 광석인 키가 작아서 오토바이를 타면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넘어질 것 같으니 안 되겠다고. 그 말에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다. 비정상적으로 큰 내 머리를 자비롭게 받아들여줄 헬멧이 있을까? 비록 우리에게 오토바이는 없었지만 기차가 있었다. 그해 겨울 우린 청량리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우린 겨울 바다에 우리의 희망과 분노를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여자를 꼬실 것이고, 꼬시는 걸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할 계획이었다. 기차 안에서 우리는 허풍을 안주 삼아 과음을 했고, 광석이가 어찌어찌하다 손가락을 다쳐 피를 철철 흘렸고, 새벽 3시쯤 어떤 캄캄한 탄광촌에서 내려 보건지소를 찾았다. 칼바람이 부는 새벽 철로 가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돌아가며 광석이에게 거친 욕설을 한 바가지씩 먹였다. 걱정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너무 추웠다. 간신히 도착한 강릉도 이 세상이었고, 우리를 반겨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정 동안 여자들과 마주 앉아보기는커녕 무서운 아저씨들에게 죽을 뻔했고, 심야 다방에서 자느라 허리만 아팠다. 바다를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지만 후련해지기는커녕 더 답답하기만 했다. 우리에게 강요된 미래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리라. 마지막 행선지는 오색이었다. 며칠 만에 목욕한 우리는 행복했고 너그러워졌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엔 우리뿐이어서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흘러가는 한계령을 바라봤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가 흘러나왔다. 우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씩 웃었다. 노래가 좋기도 했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린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스스럼없이 노출했고,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부둥켜 안아줬고, 그래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보잘것없는 있는 그대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도 각자의 외로움은 결국 각자의 몫이었다.
난 서른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지금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 괜한 광석이만 엉뚱한 이유로 서른 조금 넘기고 가버렸다. 떠나간 그녀와 광석이는 노래를 남겨줬고, 그들 덕분에 나는 저작권으로 돈을 번다.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이 내게 준 대가다. 하지만 난 그런 대가보다는 내 곁에 그들이 있었으면 한다. 뭐, 정말 곁에 있었으면 지금 내 아내나 내 친구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듯 시들해졌겠지만….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김창기(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전 그룹 동물원 리더)   사진 곽기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