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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SPECIAL: Art & Environment

ARTNOW

인간은 자연의 영향권에 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 역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으며,
그걸 토대로 만든 예술은
또 하나의 ‘새로운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아트나우>는 올여름 자연을 모든 예술의 근원으로 여기며 작업하는 작가들을 만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문제를 사진으로 시각화하는 크리스 조던과, 사람과 땅에 대한 고민을 회화 작업으로 풀어내는 박형진, 환경과 기술, 사회, 인간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과 생태 문제를 거론하는 각종 예술제 관계자를 만나 인간의 조형 의지와 미의식이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열망에서 시작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 밟고 있는 이 땅과 환경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아는 가장 효과적이고 놀랄 만한 자연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해답이 여기에 있다.

Khvay Samnang, Rubber Man, Three-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 Sound, 4min, Coproducers by Jeu de Paume, CAPA, FNAGP, 2014~2015

크리스 조던,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백문이 불여일견. 크리스 조던을 알기 위해서는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 새끼 앨버트로스와 교감하는 크리스 조던.
2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Pacific Dawn’(2017).

크리스 조던
미국 출신의 사진작가로 환경과 인간이 쓰고 버린 쓰레기를 주목한다. 환경문제, 특히 플라스틱으로 고통받는 자연 생태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하고 참여하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올해, 서울을 시작으로 제주까지 순회전을 한다. 가장 가까운 전시는 5월 24일부터 6월 30일까지 부산 F1963에서 열린다.

크리스 조던의 < 앨버트로스(Albatross) >는 조류의 왕으로 불리는 앨버트로스의 삶을 8년간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첫 시작은 드넓은 들판에 수많은 앨버트로스가 평화로이 모여 있는 장면이다. 알에서 새끼 앨버트로스가 태어나고, 새끼는 부모가 모이로 착각해 물어 온 플라스틱을 먹으며 성장한다. 곧이어 나오는 장면은 성장한 앨버트로스가 아닌 죽은 새끼를 부검하는 크리스 조던의 손과 배 속에서 줄지어 나오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이다. 만일 < 앨버트로스 >가 영화였다면 히어로가 나타나 이들을 구해줬겠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조작이나 과장은 없다. 크리스 조던은 플라스틱 때문에 죽어간 수많은 앨버트로스의 시체를 보여주며 이것이 현실이고 이 시대를 직시할 용기가 있냐고 묻는다. 그렇다. 이 인터뷰를 읽기 전, 아니 크리스 조던의 작품을 보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5월까지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 아름다움 너머(Intolerable Beauty) >전을 시작으로 부산, 전주, 순천, 제주까지 2019년 한국에서 순회전을 개최합니다. 아시아에서 개최한 개인전 중 꽤 큰 규모에 속하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네요.
매우 기쁩니다. 제 개인전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데, 개최지가 한국인 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 문화에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경이로움, 아름다움과 연결된 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또 이곳의 열려 있는 분위기가 영감을 불러일으키죠.

개인전 타이틀인 ‘아름다움 너머’가 당신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철학이라 느껴져요.
저에게 ‘아름다움’은 모든 것의 바탕입니다. 타이틀에 ‘견딜 수 없는(intolerable)’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서예요.

어떤 이유에서요?
인간의 자아에는 공포와 파괴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정작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광대하기까지 한 다층적 규모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죠.

찰리 채플린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죠. 당신의 평면 작업 시리즈 ‘숫자를 따라서(Running the Numbers)’를 보면 그 말이 떠올라요.
저 역시 그 말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서로 반대되는 두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게 작가의 과제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비극이나 희극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고 느껴요. 우리 모두가 속한 위대한 ‘신비’랄까요? 많은 예술 작품이 인간관계의 비극과 희극을 담고 있지만, 제 작품은 제 삶이라는 신비 사이의 개인적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숫자를 따라서’ 시리즈는 쓰레기를 직접 모아서 배치한 뒤 찍는 건가요?
수천 장의 사진과 디지털 작업으로만 완성했어요. 예를 들어 비닐봉지 이미지는 각기 다른 색의 비닐봉지 100개를 10개의 섹션으로 나눈 뒤 포토샵으로 색과 크기를 바꿔갔죠. 마치 화가의 팔레트처럼 제가 생각하는 작품에 맞는 색깔로 수천 개의 비닐봉지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그다음에는 사진을 계속 자르고 붙이며 큰 이미지를 제작했죠.

다큐멘터리 < 앨버트로스 >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장장 8년이나 촬영했어요.
처음엔 그저 새 몸 안에 든 플라스틱을 찍으러 미드웨이섬에 갔습니다. 그곳이 인류 문화, 생태계 그리고 인간 사이의 깨진(broken) 관계를 비추는 상징적 존재라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당시에는 앨버트로스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 섬에서 앨버트로스의 우아함과 영리함, 인간을 대하는 당찬 성격을 보고 난 뒤 사랑에 빠졌죠. 프로젝트가 처음에는 참상을 다루는 이야기로 출발했다가 사랑 이야기로 바뀐 것도 이런 이유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앨버트로스를 바라본 만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얘기해주세요. 아니,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끝내 넣을 수 없었던 한 장면이 있어요. 노란 만다라꽃 작업 직후였는데, 고통받는 새들의 모습에 큰 슬픔을 느낀 장면이었죠. 아마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운 날일 거예요. 제가 새들을 깊이 사랑하기도 했고, 너무 개인적인 부분이라 영화에 담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죠. 한편으론 슬픔이 부정적 감정이 아닌 나의 가장 깊은 부분과 연결된 문이라는 걸 알게 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그런 깊은 애도를 통해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도 느꼈고요.

3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시리즈 ‘Intolerable Beauty: Portraits of American Mass Consumption’. 그중 하나인 ‘Sand & Gravel Yard, New Orleans’(2005).
4 ‘Venus’(2011)는 아름다운 명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인간이 쓰고 버린 비닐봉지가 빼곡하다.

많은 관람객이 어미 앨버트로스가 자신의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물어다 주는 장면을 ‘충격적’이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직설적인 이미지예요.
‘이 시대의 진실을 직시하고, 알리려고 노력하자’라는 철학에서 비롯됐습니다. 섬에서의 경험은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눈앞에 놓인 참상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 했죠. 말씀하신 장면을 작품에 넣은 이유는 제대로 보는 과정이 저에게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에요. 앨버트로스를 보는 관람객도 저와 같은 심경을 느끼길 바라요.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예술이 직접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는 없을까요?
사람들에게 행동을 권하는 게 아티스트의 역할은 아니에요. 제가 담당해야 할 영역은 인간에게 잊힌 무언가가 상기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거죠.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하게끔 돕는 거죠. < 앨버트로스 >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하는 게 아닌, 내면 깊은 곳을 되찾기를 바라요. 감상 후에 그들이 내린 결정은 존중해야 합니다.

인간의 활동은 쓰레기를 남깁니다. ‘예술’도 예외는 아닙니다. 작업 후에 버려지는 다 쓴 물감 튜브, 유명 조각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람객이 남기고 간 쓰레기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이런 면에서 예술도 환경오염에 일조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중대한 사안이라 결코 편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네요. 제 작품은 크기도 있고, 고가의 전기 장비와 석유를 원료로 한 제품을 동원해 만들죠. 제게는 친환경적 행보와 동시에 친환경과 거리가 먼 부분도 있어요. 저라고 다를 게 없고 누군가를 가르칠 입장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를 수용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책임입니다.

약물 오남용, 흡연, 성형 수술 등 사회문제를 다루다 점차 환경으로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제 가족처럼 여겨졌어요. 덩달아 제 관심사도 사회 이슈에서 환경 쪽으로 서서히 옮겨갔죠. 또 미드웨이섬의 경험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어요. 사랑, 기쁨, 모험, 관계에 충실한 앨버트로스의 모습에서 영리함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인간의 파괴적 행위에 좌지우지되는 그들의 순수하고 여린 모습도 보았죠. 저는 그 새들이 저와 동등한 존재이자 가족처럼 느껴져요.

5 ‘Midway: Message from the Gyre’ (2009~2012). 우리가 자연을 조금 더 생각한다면 부모와 새끼 앨버트로스의 화목한 한 때를 지켜줄 수 있다.
6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앨버트로스의 시체를 찍은 ‘CF000478’ (2009)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예술가이기 전에 변호사였어요. 변호사에 비해 예술가는 직업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데다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환경 운동을 할 수 있는데 결국 예술가를 택하셨어요.
어릴 적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제 마음은 늘 창작에 가 있었죠. 로스쿨을 간 건 안정성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아티스트로서 실패하는 게 두려웠거든요.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인생의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제가 정말 원하는 걸 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때라는 걸 알았죠. 컬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된 건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모두를 닮기 위해서였고요.

예술가이자 환경 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환경 운동가 크리스 조던과 예술가 크리스 조던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요?
저는 스스로를 환경 운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환경 운동가’라는 카테고리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환경 운동가여야 하죠. 정직하거나 친절해야 하는 것처럼, 환경을 위하는 건 모든 사람이 취해야 할 행동이고 기본적인 ‘태도’죠.

7 크리스 조던이 파노라마로 촬영한 ‘Olympic Coast’(2017).
8 ‘Over the Moon’(2011)은 크리스 조던이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진행하는 ‘Running the Numbers: An American Self-Portrait’ 시리즈 중 하나로 2만9000개의 버려진 신용카드를 조합해 촬영했다.
9 미국에서 매 2분마다 소비되는 석유량을 보여주는 ‘Oil Barrels’(2008).

지구에는 수많은 환경문제가 있죠. 혹시 요즘 가장 크게 우려되는 이슈가 있나요?
인간이라는 집단의식에서 벌어지는 단절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린 가장 분명한 걸 잊어버렸어요. 우리가 이 세상을, 서로를, 나아가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매일 분주한 일상을 살며 돈과 지위 걱정에, 의미 없는 전자 기기에 사로잡혀 지내죠. 저는 인류가 가슴과 혼으로 생명과 연결되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돕고 싶어요. 그걸 우리 마음속에서 이룰 수 있다면 심각해 보이는 모든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금 또는 후대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있을까요?
< 앨버트로스 >를 보는 게 어때요? 보고 난 뒤에 무얼 할지 결정하면 되겠네요.(웃음)

한 강연에서 ‘이 시대를 직시할 용기가 있냐’고 물으셨는데, 당신이 갖고자 하는 용기는요?
의미 있는 질문이네요! 이 세상의 진실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가장 큰 도전입니다. 나쁜 소식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까지도요. 눈을 돌려 소소한 일면만 바라보긴 쉽지만, 저는 더 큰 걸 포용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은요?
우선 현재는 자연경관을 주제로 사진을 통해 이 세상의 오묘함과 복잡성을 들여다보려 해요. 새로운 사진전도 준비 중이고요. 생명을 기념하는 대규모 경치를 담은 사진을 선보일 거예요. 작가의 말이나 해명, 나쁜 소식 없이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만 조명하려고요.

10 ‘Whale’(2011)에 사용된 비닐 봉지는 바다에 버려진 비닐 봉지 수와 같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제공 크리스 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