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SPECIAL: Game and Art
해가 갈수록 고퀄리티 그래픽과 예술에 가까운 드로잉, 놀라운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게임이 등장하고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 게임이 지닌 인터랙티브 속성을 반영한, 관람자와 한층 더 깊은 상호작용을 꾀하는 예술가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예술로 평가받는 게임,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게임, 게임 형식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는 예술 작품이 더욱 눈에 띄는 요즘, 게임과 예술의 영역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비해 예술의 확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린 < borderless >전 전경.
파올라 안토넬리 Paola Antonelli, 당연하게도, 게임은 예술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컬렉션에 비디오게임이 이름을 올린 지 7년이 지났지만, 게임과 예술을 향한 논의는 식을 줄 모른다. ‘게임은 예술이다’와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컬렉션에 게임을 포함한 일등 공신 파올라 안토넬리는 단언한다. ‘게임은 예술’이라고.

1 벨브(Valve)의 ‘Portal’ (2005~2007).

2 뉴욕 현대미술관 건축디자인 부서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
파올라 안토넬리
이탈리아 출신의 파올라 안토넬리는 이 시대 최고 디자인 전문가로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4년부터 MoMA 건축디자인 부서 수석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며, <아트리뷰>가 선정한 ‘Power 100’에 선정됐다. MoMA에서 여러 디자인 관련 전시를 진행해 호평을 얻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디자인과 관련한 강연을 진행했으며, 저서로는 < 디자인, 일상의 경이 >가 있다.
뉴욕이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한 데는 뉴욕 현대미술관(이하 MoMA)의 공이 크다. 패션에 비유하면, 하이엔드 브랜드의 수장 격이라고 해야 할까. 화이트 큐브를 창시했고 실험적 예술 공간 ‘MoMA PS1’을 제안하는 등 MoMA는 언제나 동시대 미술 트렌드를 이끌었다. 그러던 2012년, MoMA는 다시 한번 미술사에 길이 남을 사건을 일으켰다. 건축디자인 부서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가 MoMA 컬렉션에 입성할 14개의 비디오게임을 발표한 것. 리스트를 공개함과 동시에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뉴욕> 매거진은 “대담하고 용감한 시도다”라며 다소 애매모호한 평을 했고, 영국 <가디언>은 “미안하지만 비디오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는 상호작용 디자인(interaction design) 관점에서 게임을 컬렉션에 포함한 것이다”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컬렉션을 활용한 전시를 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게임과 예술의 관계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여전한 것은, 둘을 논할 때 파올라 안토넬리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사실이다. <아트나우>가 게임과 예술을 논할 때 이름이 빠지지 않는 그녀를 만나 이번 특집의 포문을 열려 한다.

3 모장 AB(Mojang AB)가 제작한 ‘마인크래프트’ (2011)는 큐브 블록을 쌓아 세상을 만들고 모험을 떠나는 게임이다.
안녕하세요. 이번 < 아트나우 > 특집이 ‘게임과 예술’인 만큼 당신과 대화할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웃음) 이 자리를 빌려 폴 갤러웨이(Paul Galloway)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MoMA 컬렉션에 비디오게임을 합류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동료거든요.
먼저 게임과 예술에 대한 질문을 할게요. 2012년 말, 당신은 ‘팩맨’(1980), ‘테트리스’(1984), ‘더 심즈’(2000) 등 14개 게임을 MoMA 컬렉션에 포함했습니다. 왜 게임이었나요?
건축과 디자인 컬렉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였어요. 다양한 디자인 유형 중 하나로 비디오게임을 택했죠. 먼저 말씀하신 비디오게임과 ‘어나더 월드’(1991), ‘미스트’(1993), ‘심시티 2000’(1993) 등 14개를, 그다음에 ‘마인크래프트’(2011), ‘템페스트’(1981)를 포함해 7개를 추가했습니다. 고로 MoMA 컬렉션이 보유한 비디오게임은 총 21개네요.
게임이 MoMA 컬렉션에 들어간다는 건 곧 게임을 예술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 언론에서 신랄한 비판이 오갔는데, 당신은 게임을 상호작용 디자인 관점에서 봤다고 답했습니다. 즉 게임을 순수예술보다는 디자인적으로 해석한 건가요?
‘비디오게임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제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입니다. 동시에 비디오게임은 디자인입니다. 순수예술과 디자인, 게임의 경계를 명확히 정의하는 건 제 역량 밖의 일이지만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기 위해 제가 UCLA 강연에서 한 말을 다시 해볼게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사이에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아티스트는 타인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지 또는 아닌지 여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지만 디자이너에겐 책임감이 필수다.”
한데 여전히 게임을 예술로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많습니다.
MoMA가 소위 ‘예술’이라 불리는 작품만 전시한다고 생각한다면 많은 부분을 놓치는 거예요. MoMA는 초창기부터 ‘디자인’을 중시해왔거든요. ‘디자인은 현대적 창의력의 핵심 중 하나다’는 MoMA의 한결같은 믿음이죠. MoMA는 단순한 미술 박물관이 아니에요. 우리 주위를 둘러싼 세계를 고찰하는 실험실로, 세상의 모든 예술적 존재를 탐구하죠. 비디오게임은 상호작용 디자인을 설명하는 데 가장 탁월한 예시예요. MoMA는 이미 현대 디자인의 창의적 산실이자 논의 거리가 풍부한 게임을 두고 많은 연구를 하는 한편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4 애덤 솔츠맨(Adam Saltsman)이 제작한 비디오게임 ‘카나발트’(2009).
많은 연구라면 어느 정도까지 말하는 건가요?
게임의 시각적 요소와 심미적 경험뿐 아니라 코드의 우아함, 게이머의 행동 디자인입니다. 상호작용 디자인 관점으로 게임을 다양하게 바라보고 연구하죠.
보통 게임을 예술로 본다고 하면 시각적, 즉 게임의 그래픽 위주로 생각하는데 그보다 훨씬 확장된 범위입니다,
게임을 ‘디자인’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디자인은 사용자가 거의 인지하지 않는, 사용자의 일부가 되는 디자인입니다. 비디오게임의 그래픽도 유저에게 경험을 만들어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해요. 2013년에 개최한 < Applied Design >전에서 제가 추구한 목표는 관람객이 게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도록 돕는 거였죠. 그래서 미학만큼 캐릭터의 행동, 시간, 공간을 중요시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말하는 바는 비디오게임을 디자인적으로 보자는 거예요. 그렇게되면 MoMA 또는 디자인 미술관, 갤러리에서 자연스레 비디오게임을 전시로 접하게 될 겁니다.

5, 6 MoMA에서 2013년 3월 2일부터 2014년 1월 20일까지 열린 < Applied Design >전 전경.
MoMA의 게임 컬렉션 기준을 앞서 말한 네 가지 특성에 둔 것은 알고 있는데, 21개의 게임을 선택한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MoMA 큐레이터는 컬렉션에 뭔가를 추가할 때 역사, 문화, 심미성, 기능 등 다방면으로 살핍니다. 회화 같은 실제 사물뿐 아니라 인터페이스나 비디오게임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면, 비디오게임에서 제작 재료 격인 프로그램 언어와 퀄리티를 좌우하는 유저와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거예요. 이러한 요소를 모두 검토한 뒤 21개 게임을 최종 선택했습니다. ‘테트리스’ 같은 대중적 게임도 있는 반면 ‘드워프 포트리스’(2006)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게임은 유저에게 다채로운 도전, 보상 그리고 경험을 확실히 보장하죠.
미술관의 제1 역할은 후대에 전할 가치 있는 작품을 소장하는 것입니다. 회화나 조각은 구매를 통해 소장할 수 있지만, 게임은 사실상 완전한 구매가 어려울 듯합니다.
대부분의 회화는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있어 간단히 소장할 수 있지만, 요즘은 전통적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비디오게임은 상업 제품으로 게임 개발자가 지적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게임을 소장할 때는 개발자와 라이선스를 맺어요. 어떤 면에서 비디오게임 소장은 개발자와 긴밀한 관계를 확보하는 일이죠.
그렇다면 비디오게임을 소장한 뒤 어떻게 보존하고 아카이빙하나요?
비디오게임을 연구, 보존, 전시할 때 비디오게임 디자이너, 저널리스트, 학자, 게임 전문가로 구성한 자문위원단의 도움을 받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체크합니다. 특히 MoMA의 보존 전문 인력은 비디오게임이 활발히 플레이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죠. 어려운 경우는 수많은 유저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입니다. 게임 엔진의 유지와 보존은 가능해요. 하지만 유저 없는 게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온라인 게임뿐 아니라 게임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게임 세상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행동입니다. 게임 유저의 문화·역사적 보존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선 아직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7 데이브 터렐(Dave Theurer)의 ‘템페스트’(1981).

8 2004년 남코가 발매한 비디오게임 ‘괴혼: 굴려라 왕자님!’.
현재 MoMA의 게임 컬렉팅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추가할 예정인 게임이 있나요?
당연히 많죠. 하지만 나중을 위해 아직은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1994년부터 MoMA 건축디자인 부서에 재직 중이며, 현존하는 최고 디자인 전문가로 불리고 있어요. 당신과 디자인의 첫 만남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자랐습니다. 밀라노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디자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만큼 곳곳에 디자인이 녹아 있죠. 제가 처음 선택한 전공과 직업은 디자인이 아니었지만 디자인은 제 DNA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MoMA에는 잡지에 난 구인 광고를 보고 오게 되었어요. 평범하죠? 벌써 25년이나 흘렀네요.(웃음)
강연이나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셨습니다. 한국의 디자인을 꽤 많이 접하셨을 텐데요.
디자인적 이해도나 예술에서 한국만큼 세련된 나라는 전 세계에 몇 없을 거예요.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디자인 전시를 무리 없이 진행하고, 서로 다른 장르를 엄격히 구분하지도 않죠.
오는 9월 1일, 당신이 기획한 ‘제22회 밀라노 트리엔날레(XXII La Triennale di Milano)’가 막을 내립니다. 고향에서 큰 디자인 행사를 치른 만큼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이번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 Broken Nature >전은 정말 뜻깊었습니다. 인류의 종말과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큰 사랑을 받았어요. 아이들이 트리엔날레를 만남의 장소로 정하거나 참여국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크고 작은 변화도 많았죠. 지금은 오는 10월 21일로 예정된 MoMA 재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미술관 전체가 재정비 작업에 들어간 상태인데 살짝 공개하면, 에너지를 주제로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또 일상, 죽음, 노화 등 미술관이 인간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할지 모색하는 ‘MoMA R&D Salons’의 새 시리즈를 재개관에 맞춰 시작할 예정입니다. 비디오게임을 비롯해 앞으로 있을 전시를 위해 작품 수집도 꾸준히 하고 있죠. 제가 참여한 네리 옥스만(Neri Oxman)의 첫 개인전 < Material Ecology >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2020년 2월에 오픈할 예정이며 디자인, 아트, 과학, 기술이 결합한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MoMA 컬렉션 중 당신이 선호하는 게임이 있다면요?
디자인 큐레이터 입장에서 보면 ‘템페스트’입니다. 벡터만으로 정교한 비주얼과 우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부분이 정말 놀라울 정도죠.

9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심시티의 두 번째 시리즈 ‘심시티 2000’(1993)은 여전히 심시티 중 최고의 버전이라 평가 받는다.

10 이와타니 도루의 ‘팩맨’(1980)은 간단한 그래픽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