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SPECIAL: Art & Environment
신록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던 3월 마지막 주, 논현동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열린 박형진 작가가 포함된 단체전을 찾았다. 멀리서 보면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기 힘든 희끄무레한 화면을 자세히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찰나, 작가가 옆에서 쓱 나타났다. 작품만큼이나 담백한 인상의 작가와 담백한 대화를 나누었다.

1 2018년 OCI미술관에서 열린 < Cre8tive Report >전. 왼쪽의 회화는 ‘넓은 산_가리왕산과 올림픽’, 오른쪽 초록색 회화와 드로잉, 하얀 좌대 위 설치 작품은 ‘녹조 드로잉_강물은 다시 흘러야 합니다’.
박형진 Hyungjin Park
포괄적 환경에 대한 고찰

2 자연의 자본주의적 변화에 대해 고찰하는 박형진 작가.
박형진
박형진은 성신여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4년 첫 개인전 < 익숙해진 풍경 >(57th 갤러리, 서울)을 열었다. 이후 개인전 < 좁은 방 넓은 들 >(아트팩토리, 서울, 2016)과 함께 < 겸재 내일의 작가 >(겸재 정선미술관, 서울, 2015), < 예술가의 시선 1: 조감적 시야 >(스페이스 캔, 서울, 2017), < CRE8TIVE REPORT >(OCI미술관, 서울, 2018), < 미묘한 삼각관계 >(갤러리 로얄, 서울, 2019)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올해 하반기 양주와 서울에서 열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자연의 자본주의적 변화
박형진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한곳에서 살고 있다. 본인 나이만큼의 세월을 보낸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은 당연히 남다르다. 그녀는 오래된 기억 한쪽에 선 아버지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가정과 일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자연을 늘 곁에 두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신 분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는 세입자가 살던 공간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정원을 만들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환경의 변화에 환호했다.
하지만 정원 가꾸는 일은 열정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비용, 가족 모두의 노력으로도 버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원은 어느덧 가족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일요일 늦은 아침까지 자고 있으면 아버지가 잔디를 깎는 소리가 들렸죠. 가족 중 아버지만 끝까지 정원에 정성을 기울이셨어요. 아버지 혼자 정원에 물줄기를 대고 있는 뒷모습에서 ‘외로움’이란 감정을 발견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녀가 자연과 자연을 가꾸는 일을 작품 소재로 삼은 건 당시 아버지의 모습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거주하던 도시 외곽은 지역 토박이가 대부분으로, 외지인이 많지 않은 한적한 동네였다. 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과 학교, 놀이터와 골목, 개울과 산은 조금씩 변해갔다. 놀이터가 있던 자투리 땅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동네 뒷산 나무들이 베이면서 장묘장으로 개발되었다. 작가는 이를 “산이 반 토막 났다”고 표현했다.
놀이터가 사라지면서 아이들은 흩어졌다. 한적하던 동네는 장묘장이 들어서면서 휴일이면 외지에서 온 차들로 넘쳐났다. “동네 사람들은 원하지 않았던 그 개발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교외 자투리 땅조차 그대로 두지 않고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산하고야 말겠다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참지 못하는 조급함과 어색함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변화에 숨기려고 해도 고스란히 드러나죠.”
그녀가 어린 시절 종종 갔던 서울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드림랜드. 강북에 위치한 대규모 놀이공원이던 이곳은 그녀가 소풍이나 나들이로 드나들던 추억의 장소였다. 드림랜드는 2008년에 운영을 중단하고, 2009년 10월에 녹지 공원 ‘북서울꿈의숲’으로 거듭났다. “낡고 오래된 놀이공원에서 깨끗한 녹지 공원으로 변모한 이곳을 그리면서 처음으로 모눈종이를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공원은 시민의 여가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촘촘한 계획에 의해 조성되었다. 그녀는 화면에 촘촘히 교차하는 수직선과 수평선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공원의 나무, 풀, 꽃과 같은 자연물과 벽, 아치형 햇빛 가림막, 휴게 시설 같은 인공물을 따로 그렸다.
공원을 소재로 그린 풍경화는 디오라마 제작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처럼 보였다. 숲인 듯, 숲이 아닌, 숲 같지 않은 어색함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自然)은 원래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숲으로 온전히 존재하기보다 무언가의 숲으로, 무엇을 위한 숲으로 도시계획 속에 콕 박혀 있는 숲은 그 자체로 인공적인 자연물이자 자연스러운 인공물이다.

3 좁은 방 넓은 들, 장지에 먹 채색, 145.5×224cm, 2016
이렇듯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볼 때 그녀가 4대강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는 2016년부터 개발 사업 이후 강을 뒤덮은 두꺼운 녹조층과 관련한 기사를 접하고 실제 강을 찾았다. 흙탕물로 변한 강을 뒤덮은 녹조의 모습을 담은 A4 사이즈의 작은 드로잉을 녹조층과 같은 8cm 높이로 쌓았다. 드로잉은 말하자면 녹조 덩어리를 그린 것이다. “탁한 녹색이 아이러니하게도 예뻐 보였죠.” 보기 좋은 것은 또 있었다. 작가가 OCI미술관이 운영하는 인천의 레지던시에 거주할 무렵이었다. 레지던시가 경인방송국 내에 위치한 터라 방송국 옥상을 자주 올라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 눈에 띄는 커다란 웅덩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 갖가지 물건을 매립하면서 생겨난 물이 바닥에 고인 거였죠.”

4 주인 있는 땅_송현동 48-1, 장지에 먹 채색, 145×136cm, 2015
땅에 대한 동상이몽
박형진 작가의 ‘주인 있는 땅’ 시리즈는 도시 곳곳의 벽, 담장, 가림막 너머에 존재하는 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송현동, 상암동, 성북동 등 서울 곳곳에 위치한 땅은 자로 그린 듯 기하학적 형태를 띠었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건물과 잡초가 무성한 바닥, 그마저도 없는 공터가 대부분이었다. 주인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은 모두 주인이 있는 땅이다. 작가는 지도에서 땅을 확인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전체를 보면서 세필 드로잉을 완성했다. 기사와 자료를 통해 소유의 변천과 역사도 파악했다. “땅엔 늘 자본과 사람이 존재해왔어요.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런 상태의 땅은 개발 전쟁 중 잠시 쉬고 있는, 휴전 상태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 이름 없는 공원, 장지에 먹, 채색, 136×145cm, 2013
일찍이 우리는 땅에 갖가지 이름을 붙여 물적 가치를 부여해왔다. 땅을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 용어인 토지(土地), 일정 범위로 구획된 필지(筆地), 건축할 수 있는 대지(垈地), 건축이 예정된 부지(敷地), 건축되어 있지 않은 나대지(裸垈地) 등과 용도에 따라 붙인 명칭까지 합하면 수십 개에 달한다. 작가의 눈에 포착된 땅 중 송현동과 상암동의 땅은 이미 건축이 예정된 혹은 예정될 부지로, 매입과 매각 과정, 개발을 둘러싼 소송, 이를 통한 가치 변화가 세상에 알려진 것들이다. 그중 송현동 부지는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소유권 이전, 매입과 매각, 개발 추진과 좌절을 반복하며 한국 근현대 역사를 집약적으로 거쳤다. 조선 말 왕가 친척의 집, 일제 지배회사의 사택, 미대사관 숙소로 각 시대마다 권력 주체에 의해 용도가 변경되었다. 1997년 삼성생명이 1400억, 2008년 대한항공이 2900억에 매입한 이래 2019년 현재 송현동 부지의 가격은 업계 추산 5000억대에 이른다. 하지만 이 땅은 2002년 이래 공터로 남아 있다.

6 녹조 드로잉_강물은 다시 흘러야 합니다, 326장의 녹조 드로잉, 모눈 트레싱지 위에 녹색 혼합 재료, 21×29.7cm, 2016~2017, 아크릴 상자, 2017
7 중앙에 놓인 ‘푸른 물’의 설치 전경. 푸른 물, 장지에 먹 혼합 재료, 130×162cm, 2016, 전시 장면, 아트팩토리(2016)
어마어마한 부동산 가치에 부합하는 개발 용도와 이익에 대한 전망으로 관심이 높아졌지만, 고급 주택단지와 호텔, 복합 문화센터, 공원 등 땅의 미래는 각기 동상이몽이다. 땅을 둘러싼 현 상황과 달리 세밀한 선을 쌓아 그린 그림 속 땅은 살짝 든 바람도 눈에 띌 만큼 모든 것이 조용하다. “종이와 먹을 흡수하는 장지, 얇은 선을 긋고 풀을 쌓는 노동 집약적 과정이 방치된 풍경이 지니고 있는, 오랫동안 멈춘 장소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개인과 기업, 각 기관의 이권이 각축을 벌이며 날 선 욕망을 드러내는 동안 방치된 땅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 오랜 시간 도시에서 사는 자연의 생존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류정화(전시 기획자) 사진 김제원(인물) 사진 제공 박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