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 in Film
패션 하우스와 영화가 맺어온 아름다운 관계에 대하여.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열세 번째 단편영화 〈카르멘〉. 클로에 세비니 감독의 작품이다.
패션과 영화, 두 예술적 언어는 역사 속에서 밀접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이들은 ‘예술’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공명하며 모두 ‘사람’을 주인공 삼아 시대를 기록하고 감정을 입히며 저마다 고유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그리고 2023년 칸 영화제 레드 카펫에 생 로랑의 로고가 선명히 찍힌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하며 패션과 영화의 관계가 새삼 조명받았다. 디자이너 안토니 바카렐로가 설립한 생 로랑 프로덕션(Saint Laurent Productions)은 패션 하우스가 이제 단편영화를 직접 기획하고, 감독을 섭외해 만든 상업 영화를 공개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인지 보여줬다. ‘영화’라는 예술 장르가 출현하고 할리우드가 생긴 후 1920년대부터 패션 브랜드는 영화에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샤넬, 디올, 구찌는 영화제를 후원하고 감독의 작품 제작을 지원하며 조용하지만 영향력 있는 페이트런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위 생 로랑 프로덕션의 〈에밀리아 페레즈〉. 2025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4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래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한 장면.
패션과 영화의 만남, 시대를 담다
영화는 ‘시대의 스크린’이라고도 불린다. 한 사회의 단면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스토리텔링과 이미지로 응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스크린 위에서 패션은 인물의 정체성과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또 하나의 조형 언어가 된다. 어떤 면에서는 패션이 시대와 인물, 더 나아가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패션 하우스는 오랜 시간 영화를 후원하며 자사의 미학을 당대 문화에 스며들게 했다. 일례로 디올은 1950년대부터 매릴린 먼로, 그레이스 켈리 등 당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우아함’과 ‘로맨티시즘’을 확립했다. 샤넬도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마르첼로 미오〉, 〈스피릿 월드〉 같은 영화를 통해 브랜드의 미학을 관객과 공유했다.
하지만 패션 하우스의 영화 의상 지원은 사실 가장 작은 단위의 후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굵직한 영화제의 공식 파트너가 되어 영화 예술의 매력을 공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디올은 2020년부터 상하이 국제영화제(SIFF)의 공식 파트너로 지난해까지 총 네 차례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현대 여성의 성장과 변화를 탐구하는 ‘Embrace and Reshape’라는 주제를 걸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디올은 중국의 영화 신을 대표하는 상하이 빅토리아 시네마에서 포럼을 개최해 예술 창작 과정에서 여성 캐릭터의 묘사, 여성의 성장, 영화 산업의 혁신과 지속 가능한 발전 등 핵심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샤넬은 또 어떤가.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부가 되어라”라는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의 바람에 따라 영화계를 이끌 젊은 영화인과 학생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영화제와 파트너로 인연을 맺으며 영화에 대한 샤넬의 진심 어린 사랑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베니스는 샤넬에 영감의 원천인 도시다.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오랜 세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참여해왔다. 지난해에는 알리체 로르바케르와 JR의 〈알레고리 시타딘〉 제작을 지원, 다양한 의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프랑스 도빌에서 열리는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와 6년 연속 맺은 파트너십도 화제였다. 당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버지니 비아르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1966)에서 영감을 받은 2024~2025 가을 · 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 캠페인 영상을 상영하며 도빌을 기념하기도 했다. 이처럼 패션 하우스는 의상 협찬부터 영화 제작 지원 및 흥행, 그리고 이를 다시 자사의 예술로 순환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위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스물네 번째 단편영화는 카를라 시몬 감독의 작품 〈아들을 위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다.
아래 왼쪽 무용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실리아 롤슨-홀의 〈(The [End) of History Illusion]〉은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열네 번째 작품이다.
아래 오른쪽 마시 태지딘은 미우미우 ‘우먼스 테일’의 네 번째 이야기 〈It’s Getting Late〉를 통해 LA의 황혼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여성 4명의 삶을 조명했다.
후원을 넘어 창작으로
최근 몇 년 사이 패션 하우스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영화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예가 바로 앞서 언급한 생 로랑 프로덕션이다. 생 로랑은 2023년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사를 출범하며 필름 프로덕션을 보유한 첫 번째 패션 하우스로 이름을 올렸다. 그해 칸 영화제에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장-뤼크 고다르, 파올로 소렌티노 같은 거장 감독의 단편과 장편영화를 연이어 선보이며 후원에 그치지 않고 ‘창작’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바카렐로는 영화가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해온 인물이다. 영화인과 함께 일하며 그들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생 로랑 프로덕션이 만드는 모든 영화의 커스텀 의상 제작은 물론,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여하며 패션 하우스가 어떻게 면밀한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해내고 있다.
조력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패션 브랜드가 있다. 바로 미우미우. 미우치아 프라다가 설립한 이래 미우미우는 ‘우먼스 테일(Women’s Tale)’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여성 영화감독을 지원해왔다. 2011년부터 15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29편의 단편영화를 선보였다. 우먼스 테일의 차별점이 있다면 첫째 여성 감독만 지원한다는 것, 둘째 그들에게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미우미우의 의상과 제품은 각 작품의 중심이 되어 독특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미우미우는 이 단편영화 프로젝트를 통해 패션을 조형 언어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또 단편영화를 현대미술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2024년 10월 아트 바젤 파리 기간에 팔레 디에나에서 〈테일즈 & 텔러스(Tales & Tellers)〉전을 통해 그간 공개한 28편의 작품과 그 장면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현대미술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미우미우의 패션과 영화를 엿볼 수 있었다.

2024년 샤넬의 아이코닉 핸드백 캠페인. 클로드 를르슈의 〈남과 여〉에 대한 오마주로 샤넬 하우스에 의미 있는 도시 도빌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패션과 영화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션은 또 영화와 여러 층위에서 긴밀하게 얽혀 있다. 모두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삶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패션이 옷을 통해 개인의 삶을, 더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를 비춘다면, 영화는 타인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이들의 긴밀한 관계는 그것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아주 작은 후원의 단위부터 예술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영화가 관계를 맺는 범주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나갈지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에디터정송(song@noblesse.com)
사진 미우미우, 샤넬, 생 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