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EK PHILIPPE] The Peak of Manufacturing
파텍필립이 최고의 워치메이커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계 제작 노하우에 있다.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매뉴팩처 파텍필립의 진면모를 공개한다.

제네바 주의 플랑레와트에 위치한 파텍필립 매뉴팩처.
Manufacture Patek Philippe
사람들은 파텍필립을 최고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은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세계 유수의 경매시장에서 파텍필립의 아카이브 모델을 사기 위해 낙찰가를 최고로 끌어올리고, 파텍필립의 시계를 손목에 얹기 위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을 기다리기도 한다(현재 한 해 시계 생산량이 5만8000개에 달함에도!). 사람들은 파텍필립의 어떤 면모에 매료된 걸까. 그리고 파텍필립은 어떻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여타 브랜드를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파텍필립의 매뉴팩처에 숨어 있다.

1 하이 컴플리케이션 부서에 근무하는 수석 워치 메이커 폴 부클랑. 2 2017년 바젤월드 신제품인 컴플리케이션 5960/01G-001.
현재 파텍필립의 매뉴팩처는 워치메이킹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스위스의 여러 도시에 분산돼 있다. 1996년 제네바 플랑레와트에 건립한 매뉴팩처에는 본사와 워크숍(부품의 가공 및 무브먼트 조립, 시계를 완성하는 곳)이 자리 잡았고, 그곳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생티미에에는 카드랑 플뤼키거(Cadrans Fluckiger) 다이얼 공방, 라쇼드퐁에는 2010년 케이스와 폴리싱, 젬 세팅 공방을 한데 모은 뉴 프로덕트 센터가 있다. 각 공방에서 제작한 부품은 플랑레와트 매뉴팩처로 집결하고, 전문 워치메이커의 손을 거쳐 시계로 완성된다. 현재 파텍필립은 5만개의 기계식 시계, 8000개의 쿼츠 시계를 생산하며, 16개의 베이스 무브먼트를 통해 45가지 이상의 다채로운 시계의 심장을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만드는 부품의 종류는 1만 개, 그 수는 1600만 개에 달한다. 제네바를 비롯한 여러 공방에서 1600여 명의 직원이 최고의 시계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매뉴팩처에서 근무하는 워치메이커들.
Living by Our Values
시계를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모든 브랜드가 비슷하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온 전통 워치메이킹 방식에 각자 보유한 혁신적 기술력과 신소재를 결합하는 방식. 하지만 파텍필립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독자적 가치(value) 10가지를 제정, 이를 기반으로 시계를 만든다. 일종의 매뉴팩처 운영 수칙! 이를 바탕으로 파텍필립은 시계 기업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더욱 잘해내고 있는 셈이다.
1. 독립성(Independence) 파텍필립은 자사를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독립성을 중시한다. 연구 개발부터 브랜드의 발전 방향 등 모든 일에서 자사의 판단을 믿는다. 이는 가족이 운영하는 워치 매뉴팩처의 장점이다.
2. 전통(Tradition) 아티스틱한 장인과 워치메이커가 일궈온 전통 시계 제조 방식은 현재까지 변함없이 이어진다. 1839년 창립 이래 파텍필립이 만들어온 독창적 유산은 제네바 지역의 시계 제작 전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전통 기술은 현재의 진보한 테크놀로지와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3. 혁신(Innovation) 전통과 함께 혁신은 매뉴팩처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가치다. 파텍필립은 연구 개발 부서를 운영하며 현재 80개가 넘는 특허를 획득했다. 새 기능을 더한 칼리버, 새 디자인의 케이스와 스트랩은 물론 무브먼트의 신뢰성 개선을 위한 연구도 혁신의 일환이다.

3 파텍필립을 이끄는 스턴 가문. 4 카탈로그나 매장에서 찾기 어려운 레어 핸드크래프트 돔형 탁상시계. 5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탑재한 칼리버 324 S Q.
4. 품질 및 장인정신(Quality and Fine workmanship) 품질과 장인정신은 파텍필립의 시계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무브먼트와 케이스, 다이얼 등 시계를 위한 모든 부품은 기술적·미적 측면을 만족해야 한다. 스틸, 골드, 젬스톤 등 소재 역시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고른다. 보통 시계 한 점을 만들기 위해 1200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치며, 새 범용 무브먼트 개발에는 3년에서 5년이 걸린다. 완성 후에는 600시간 이상의 품질 확인, 30일간의 테스트를 거친다. 2009년 제정한 파텍필립 실 역시 혁신적 제품 개발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5. 희소성(Rarity) 파텍필립은 자사의 시계를 독보적 창조물(exclusive creations)로 여긴다. 그리고 생산한 모든 제품의 정보를 정확하게 기록해놓기에 진본성을 보증한다. 현재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장착한 200여 종의 모델 중 10개 정도만 생산하는 제품도 있고 대중적 모델조차 수백 개 이하로 생산량을 조절한다.
6. 가치(Value) “당신은 파텍필립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맡아두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광고 캠페인 문구처럼 이들은 세대를 거쳐 지속 가능한 시계를 생산한다. 실제로 파텍필립의 시계는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하며, 여러 경매에 출품되는 낙찰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파텍필립 실 인증을 받은 무브먼트.
7. 미학(Aesthetics) 파텍필립의 시계는 시대를 초월한 미학적 완벽함을 추구한다. 스케치부터 실제 제품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클래식과 모던의 완벽한 균형점을 찾는다. 그리고 고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즉 무브먼트의 부품과 부품 사이에도 다양한 장식 기법을 구사한다.
8. 서비스(Service) 몇 세대를 거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시계를 만들지만 가끔 크고 작은 수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커스텀 서비스는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매뉴팩처에 도전적인 그리고 불가피한 임무다. 하지만 파텍필립은 자사에서 생산한 그 어떤 시계도 수리 가능하며, 브랜드 창립 초창기에 선보인 모델의 부품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직원에 대한 투자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다.
9. 감성(Emotion) 파텍필립의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별하고, 개인적이고, 소중한 기억을 선사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것 역시 이에 속한다. 파텍필립의 시계를 소유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다.
10. 헤리티지(Heritage) 현재 파텍필립을 이끄는 티에리 스턴은 스턴 가문의 4세대다. 그는 그의 선조와 다음 세대인 후손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파텍필립이 창조한 작품을 소유하는 건 워치메이킹 분야의 전통과 미적 감각을 미래의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시계 장인이 과거의 장인에게 습득한 기술을 견습생에게 전수하듯 말이다.

7 케이스와 다이얼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화려한 아쿠아넛 루체 Ref. 5062/450R-001.
8 주얼리 워치의 경우 주얼리 장인이 원석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세팅한다.
9 수작업이 절대적인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파텍필립의 자랑이다.
Embody the Values – Patek Philippe Seal
이러한 10가지 가치를 바탕으로 시계를 제작하는 파텍필립은 2009년부터 자체 품질 인증 마크인 ‘파텍필립 실’을 제정해 자사의 창조물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이전에는 제네바 홀마크 인증을 거쳐 제품을 출시했다). 파텍필립 실 인증을 받기 위해 이들이 생산하는 모든 시계는 엄격한 테스트를 거치는데, 그 범위는 무브먼트를 비롯해 케이스, 다이얼, 핸드, 크라운과 푸시 버튼, 스트랩과 브레이슬릿, 버클 등 하나의 시계를 이루는 모든 부품을 아우른다. 즉 정확성과 미적인 부분 모두에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 특히 무브먼트는 무엇보다 정확성이 중요한데, 지름 20mm 이상 무브먼트의 경우 일 오차가 -3초부터 +2초, 지름 20mm 미만인 경우에는 -5초부터 +4초까지만 통과할 수 있다. 이는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인 COSC의 기준보다 까다로운 수치이며, 무브먼트 자체와 무브먼트를 탑재한 케이스를 모두 체크한다.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리피터의 경우에는 회장이 직접 시계의 소리를 확인할 정도다. 자사 제품을 내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이러니할 수 있지만 공식 인증 기관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압도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Innovated by Patek Philippe
파텍필립이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시계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연구 개발의 결과 덕분이다. 1920년대에 크기가 큰 회중시계에만 탑재하던 더블 크로노그래프와 퍼페추얼 캘린더를 작은 손목시계로 옮기며 주도한 하이엔드 컴플리케이션의 소형화(이는 새 무브먼트의 개발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드레스 워치의 표준을 만든 칼라트라바 출시, 프리스프렁 밸런스 개발(레귤레이터로 헤어스프링의 길이를 조절하지 않고 밸런스의 관성 모멘텀으로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 칼리버 89와 스타 칼리버 2000 등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이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듯. 여기에 더해 마모와 효율성 등 금속 소재 부품의 문제를 해결한 밀레니엄 시대의 신소재 실리시움(실리콘 소재를 아우르며 실린버ⓡ, 자이로맥스ⓡ, 스파이로맥스ⓡ, 오실로맥스ⓡ가 여기 속한다)은 기계식 시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파텍필립은 한 가문이 이끄는 브랜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쉼 없는 도전과 노력을 통해 시계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에디터 이현상(ryan.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