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celain Master
인류 역사상 도자기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면서 오래 사용한 문명의 이기가 또 있을까. 도자기에는 전통의 깊이와 품위는 물론 사람을 매료시키는 화려함, 채색의 마술사 같은 현란함이 깃들어 있다.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며 최고급 품질과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도자기, 그중에서도 종주국인 중국을 넘어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한 유럽 도자기 명가를 소개한다.

1 섬세하고 화려한 꽃 장식이 돋보이는 스노볼 블라섬의 화병.
2 시그너처 패턴인 블루 어니언의 플레이트.
3 백조의 모습을 양각한 스완 서비스 컬렉션.
4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노블 블루 컬렉션.
유럽 최초의 백색 자기
17~18세기 무렵, 유럽 왕실과 귀족의 도자기 사랑은 유별났다. 보석보다 값지고 귀한 물건으로 추앙했으며, 도자기를 구한 날에는 손님을 초대해 축하 파티를 열기도 했다. 당시 유럽은 중국처럼 품질 좋은 백자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도자기 개발은 금맥을 찾아내는 일만큼이나 횡재로 여겨 왕실과 도공이 모두 이에 매달렸다. 유럽 최초의 백색 자기를 만든 것은 1710년. 독일 드레스덴 서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마이센(Meissen)에서 흙의 미학이 오색찬란한 꽃을 피웠다. 컵과 소서, 접시, 볼 등 오늘날 사용하는 서양식 테이블웨어의 기본 형태가 만들어진 것은 물론 풍경과 정물,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포슬린 페인팅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도 마이센의 모든 패턴과 그림은 숙련된 장인에 의해 100%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초기에는 중국과 일본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 동양적 화풍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며 조각적이고 회화적인 유럽 자기의 초석을 다졌다. 마이센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패턴은 ‘블루 어니언’이다. 중국 청화백자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석류를 양파로 오인해 만들어졌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대나무, 연꽃, 양파를 정교하게 새긴 블루 & 화이트 패턴은 클래식과 우아함을 대변하며 세계적으로 수많은 모방과 변종을 낳았다. 지금도 식기는 물론 화병, 욕실용품에 이르기까지 750가지 이상의 품목에서 이 시그너처 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선보인, 블루 어니언의 변주인 노블 블루 컬렉션은 패턴을 정제하되 블루와 레드, 골드 컬러를 가미해 현대적 미감이 돋보인다. 마이센의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다. 작고 섬세한 꽃 장식을 일일이 수놓은 ‘스노볼 블라섬’, 백조가 물결을 거스르며 헤엄쳐 나아가는 모습을 양각한 ‘스완 서비스’, 호랑이와 용, 봉황 등을 모티브로 만든 ‘가키에몬’ 등이 대표적. 동서양을 넘나드는 감성과 정교한 디테일을 앞세운 이 컬렉션들은 뒤늦게 빛을 발한 유럽 자기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300주년이 되던 해, 마이센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40대의 젊은 CEO 크리스티안 쿠르츠케를 영입했다. 그가 이끄는 21세기 마이센은 옛 작센 왕국 수도인 드레스덴의 왕궁 벽면 타일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등 기존 아이덴티티를 보존, 전승하면서 끊임없이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5 헤렌드 도자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내부.
6 익스클루시브 리저브 컬렉션 중 ‘Carnival Woman with Hat’.
7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주문으로 완성한 퀸 빅토리아 라인.
왕실과 귀족을 사로잡은 헝가리 도자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융 재벌 가문 로스차일드. 지난 250여 년간 8대에 걸쳐 전 세계 금융자본을 지배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 위대한 가문에 1860년부터 테이블웨어를 공급하는 브랜드가 있다. 헝가리의 명물인 헤렌드(Herend). 1826년에 탄생한 이 브랜드는 마이센보다 116년이나 뒤늦게 출발했는데도 유럽 4대 도자기에 이름을 올릴 만큼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비결은 품질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에 있다. 헤렌드 도자기는 10여 차례의 엄격한 품질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단 한 개의 티끌도 용서하지 않아 완성품 중 20~30%를 불량으로 처리할 만큼 완벽을 기한다. 이런 노력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디너 세트가 그랑프리를 수상한 직후부터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눈에 띈 헤렌드는 윈저 성의 식탁에 오를 테이블웨어를 제작할 기회를 얻었고, 총천연색 꽃과 나비, 새싹과 꽃봉오리가 움트는 나뭇가지가 봄날의 초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왕실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 디자인은 여왕의 이름을 본떠 ‘퀸 빅토리아’ 라인으로 명명했고, 헤렌드 최고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과 일본, 독일 도자기가 독점한 유럽 왕실과 귀족의 주방 식기를 대대적으로 바꾸면서 성공한 가마로 이름을 떨친 헤렌드. 오늘날 그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면서 창조적 예술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도자기 애호가를 위해 한정 판매하는 익스클루시브 리저브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금 알을 낳는 어미 새가 둥지에 걸터앉아 아기 새와 교감하는 모습,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축제에 참여한 미스터리한 여인 등 오직 마스터 페인터의 손을 거쳐 완성한 피겨린은 전 세계 컬렉터를 환희에 빠뜨린다.

8 화려한 골드 트리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한 오오와죠 컬렉션.
9 도토리와 나뭇잎, 금빛 테두리가 조화를 이룬 콘스탄스 컬렉션의 티컵과 소서.
리모주의 특별한 흙으로 빚은 예술품
프랑스에서 도자기 제조의 씨앗을 뿌린 곳이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리모주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세기 초 리모주는 동양의 백자를 모방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생산하는 도자기의 80%를 해외로 수출하는 프랑스 도자기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그 중심에 베르나르도(Bernardaud)가 있다. 5대째 전통을 잇고 있는 베르나르도는 세계 유수의 도자기 회사와 달리 창립 직후부터 왕실에서 열리는 리셉션 테이블웨어로 사용할 정도로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고령토와 석영, 화강암이 섞인 리모주의 특별한 흙으로 빚은 자기는 유난히 얇고 견고했다. 실제로 찻잔이나 접시를 들어 밝은 조명에 비춰보면 빛이 도자기를 투과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좋은 재료와 장인의 정성 어린 손길이 만났을 때 나타나는 결과다. 수준 높은 장인정신은 마감 처리에서도 빛이 난다.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도토리와 나뭇잎 그리고 금빛 테두리가 조화를 이룬 ‘콘스탄스’, 화려한 골드 트리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한 ‘오오와죠’ 컬렉션 등을 보면 베르나르도가 골드 페인팅의 귀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숙련된 장인의 수공 연마를 통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매끈하게 공정하는 골드 페인팅 기술은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최고급 품질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살아 있는 문화유산 EPV 라벨을 받은 베르나르도는 프랑스 명품 위원회 코미테 콜베르(Comite Colbert) 멤버로 가입하며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오는 2월부터 국내에서는 바카라 코리아를 통해 베르나르도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아티스트와 꾸준히 협업해온 베르나르도가 제프 쿤스와 컬래버레이션한 접시와 티 세트도 소개할 예정. 도자기 표면을 특수 가공 처리해 스테인리스스틸처럼 보이게 한 벌룬 도그 접시는 제프 쿤스만의 키치한 예술성과 베르나르도의 기술력이 만난 최고의 역작이라 칭할 만하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