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of Tradition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여전히 아름답고 훌륭한 시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 시계를 소유한 인물 덕분에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는 과거 속 전통의 힘을 보여주는 시계에 대해.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사용한 회중시계가 2010년 경매에 출품되어 1억25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 회중시계는 과연 어느 브랜드였을까? 바로 바쉐론 콘스탄틴이다. 순종과 바쉐론 콘스탄틴이라, 그 의외의 조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이 외교를 시작한 1880년대, 가장 많이 들어온 외래 문물 중 하나가 회중시계였다(당시는 아직 손목시계가 나오기 전이었다). 이 시기에 왕실과 고위 관리 사이에서는 시계를 소유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특히 순종의 시계 사랑은 각별했다. 창덕궁에 있는 수많은 시계가 한꺼번에 제각각 다른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순간을 무척 즐겼다고. 덕수궁에서 지내는 고종에게 전화로 문안 인사를 할 때 고종의 시계 시각을 묻고는 자신의 시계와 창덕궁 시계를 맞추는 것 역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경매에 출품된 바쉐론 콘스탄틴 회중시계는 그의 국장 과정 등 장례에 대한 세세한 부분을 담은 <어장의 사진첩>에 부장품으로 기록된 시계와 동일한 것으로 시계 뒷면에 ‘李花文(이화문)’이라고 새겨져 있어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한 것임을 증명한다. 심지어 시계 뒤 뚜껑을 열면 이 시계를 제작한 바쉐론 콘스탄틴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더욱 특별하다.
1811년 나폴레옹 황제의 지시로 제작한 쇼메의 보석 시계는 최초의 주얼리 워치로 기록되어 있다. 기품 넘치면서 섬세한 자태가 지금 착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재클린 케네디는 피아제의 브레이슬릿에 대한 독보적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컬러 스톤 다이얼이 매력적인 골드 브레이슬릿 시계를 소유하기도 했다(현재 피아제가 경매에서 사들여 패트리모니 컬렉션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브레이슬릿은 최신 컬렉션에 영감을 주어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재등장했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생일 선물로 티파니 워치를 받았는데, 이후 역사적 얄타 회담에서 이 시계를 착용해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정갈한 인덱스와 반짝이는 베젤, 그리고 브라운 컬러 레더 스트랩이 클래식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까르띠에의 스테디셀러 탱크 컬렉션은 영화배우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잉그리드 버그먼부터 예술가 앤디 워홀,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카스텔 바작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많은 유명인사의 사랑을 받았다. 아직까지 그 인기가 식지 않은 것을 보면서 전통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여러 명사의 사랑을 받은 시계 브랜드로 파텍필립을 빼놓을 수 없다. 작년 브랜드 창립 175주년과 일본-스위스 국교 수립 15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열린 특별 기념 전시회 <파텍필립 전시회, 역사 속의 타임피스>에서 전설의 인물들이 사용한 흥미로운 시계를 만날 수 있었다. 런던 국제박람회에서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납한, 아름다운 블루 컬러가 돋보이는 펜던트 시계를 비롯해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기품 넘치면서 고급스러운 골드 회중시계, 퀴리 부인이 사용한 뒷케이스의 서정적 자연풍경이 돋보이는 회중시계 등이 그 예. 이외에도 소형 시계를 장착한 박스 형태의 오토마톤(새가 박스 위에서 지저귄다!), 꽃 모양 브로치를 세트로 선보인 펜던트 시계까지 지금 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피스들이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은 피스를 소개한다. 바로 브레게의 N°160(마리 앙투아네트 시계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18세기 파리에 매장을 오픈한 브레게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받았는데, 왕비의 추종자 중 한 명이 그녀를 위한 회중시계를 은밀히 주문했다. 당시 가장 복잡한 시계로, 실제로 그때까지 존재한 모든 컴플리케이션을 총동원한 제품이었다. 가격이나 제작 기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계가 완성된 1827년보다 34년 일찍 세상을 떠나 이 ‘놀라운 선물’을 누리지 못했다. 즉 이 시계는 주문 후 44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이후 1983년 예루살렘 박물관에서 도난당하는 등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의 운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2005년 브레게가 그 시계를 복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것. 심지어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베르사유 궁의 참나무가 베일 운명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브레게는 그 나무를 시계 상자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브레게 뮤지엄과 파리 예술 공예 뮤지엄 등에서 입수한 자료와 오리지널 드로잉을 대조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는 사라졌지만 역사 속 오리지널 모델을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력에 대해 밝혀낼 수 있었다(오로지 문서를 통해 이런 것을 밝혀냈다는 점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당시의 골드 배합률을 그대로 재현했고, 다이얼과 케이스 유리는 록 크리스털로 제작했다. 미니트리피터 기능에 풀 퍼페추얼 캘린더, 균시차, 점핑 아워, 스몰 세컨드,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온도계까지 모두 탑재해 2008년 복원을 완성한 피스는 그야말로 기술력의 향연을 보여주었다. 18세기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당시 시계업계에서 가능한 기술력을 총동원해 역작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 제작에 돌입했을 것이다. 21세기 메종 브레게는 그 전설의 시계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18세기와 현재를 잇는 과감한 도전에 성공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통의 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순종의 바쉐론 콘스탄틴 회중시계와 <어장의 사진첩>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이 생일 선물로 받은 티파니 워치
차이콥스키와 그의 파텍필립 회중시계

톨스토이의 파텍필립 회중시계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브레게가 복원한 마리 앙투아네트 시계
까르띠에 탱크를 착용한 앤드 워홀

까르띠에 탱크를 찬 클라크 게이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피아제 골드 브레이슬릿 시계

까르띠에 탱크를 착용한 잉그리드 버그먼

최초의 주얼리 워치로 꼽히는 쇼메 워치, 그리고 제작을 의뢰한 나폴레옹 황제
에디터 | 이서연 (janice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