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 of Perfume
헤네시 가문의 상속자이자 향수 브랜드 킬리안을 창립한 킬리안 헤네시를 만났다. 황태자를 인터뷰한 칼럼에 붙이는 제목으로 다소 직접적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 이보다 제대로 설명하는 수식은 없을 듯하다.

1 아르데코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컨셉으로는 세계 최초로 한국에 문을 연 킬리안 단독 부티크.
2 케이스의 스컬 조각이 인상적인 블랙 팬텀 메멘토 모리. 보물이 가득한 유령 해적선을 상상하며 달콤한 구어먼드 우드 향을 그려냈다. 오는 8월 말, 이 팬텀 컬렉션에서 새로운 제품을 런칭할 예정이다.
코냑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코냑이 익어가는 오크통이 가득한 셀러에서 뛰놀던 소년은 청년 시절을 거쳐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 아마 가문의 전통을 잇는 코냑 마스터나 코냑으로 대표되는 럭셔리 하우스의 경영자쯤이 가장 쉬운 예상일 거다. 이 예상은 맞고도 틀리다. 소년은 코냑이 아닌 향수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고, 그 향수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를 이끄는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는 바로 헤네시 가문의 상속자이자 하이엔드 퍼퓸으로 향수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 킬리안의 창립자, 킬리안 헤네시(Kilian Hennessy)다. 그동안 국내 백화점이나 편집숍 등 몇몇 매장에서 만날 수 있던 킬리안이 신라 호텔 서울 아케이드에 단독 부티크를 열었다. 기존 브랜드 컨셉과는 다른 스타일로 문을 연 최초의 매장이라고. 단독 부티크 오픈과 함께 국내 공식 런칭을 기념해 지난 5월 중순, 킬리안 헤네시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장마 같은 폭우 속에서도 성황을 이룬 런칭 기념 나이트 파티를 조금 앞둔 시간, 신라 호텔 아케이드의 새로운 부티크에서 그를 직접 마주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지금까진 완벽해요. 평소 한국인에 대해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이엔드 제품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를 즐기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갖췄다고 생각했거든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신라 호텔 서울 아케이드에 킬리안의 단독 부티크를 열었어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새로운 컨셉으로 꾸민 첫 매장이라 더 애착이 가요. 기존 부티크는 오스만풍을 가미한 파리지앵 아파트 컨셉이었죠. 화이트 몰딩과 블랙 카펫 등을 연상하면 될 거예요. 이제는 컨셉을 조금 달리하려 해요. 기하학적 패턴, 철제 프레임 등이 조화를 이룬 아르데코에서 영감을 받았죠. 이 부티크 오픈으로 한국에 올 수 있는 좋은 핑계가 생긴 듯해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이제 향수 이야기를 해볼까요? 럭셔리 분야를 대표하는 가문에서 태어난 만큼 선택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했을 거예요. 그중에서 향수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향수를 선택한 게 아니에요. 향수가 절 선택했죠. 파리의 CELSA 재학 시절 ‘향의 의미’에 대한 논문을 썼어요. 논문 준비를 위해 조향 학교 프로그램을 병행했고, 수업 첫날 에센셜 오일 향을 맡는 순간 향수가 제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향의 의미’라는 주제를 선정한 것부터 운명적 이끌림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런 주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논문을 쓰기 1년 전, 겐조 퍼퓸에서 인턴십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향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마주할 수 있었죠. 향에 대한 논문을 찾아 읽던 중 향을 묘사하는 데 정해진 기준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색깔이나 음표에 대해서는 누구나 당연하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수선화 향을 맡았을 때 그 향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뭐라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복잡하면서 미묘한 향의 세계에 대해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수많은 향을 음미하면서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는 향은 존재할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코냑 셀러에 가는 것을 좋아했어요. 코냑을 담은 오크통 향이 뇌리에 남아 있죠. 굉장히 달콤하면서도 스모키하고, 우디한 향이에요. 어린 시절 뇌리에 박힌 그 향은 킬리안 향수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킬리안 향수에서 나는 우드나 바닐라 향은 바로 그 추억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죠.
코냑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는 것 외에 킬리안의 특징을 꼽는다면 바로 스토리가 아닐까 싶어요. 핵심 성분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이는 여느 향수 브랜드와 달리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제목, 여기에 부제목까지 붙인 향수를 선보이고 있으니까요. 바로 그 서사성이 킬리안의 차별점이라 할 수 있어요. 향수 이름을 통해 한 가지 원료만 표현하고 싶진 않거든요. 또 같은 원료라 해도 그 향의 느낌은 절대적으로 달라요. 저는 영화 제작에 앞서 시나리오가 존재하듯 향수를 만들기 전 제목을 먼저 붙여요. 이것이 향을 만드는 저만의 방법이에요.
향수 이름을 지을 때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요? 모든 것에서요. 음악과 그림, 책, 조각 등 편식 없이 폭넓게 여러 작품과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장르와 분야에 점점 더 눈을 뜨는 기분이고요.
킬리안 향수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평생 소장할 수 있는 향수라는 점이죠. 보틀이나 케이스는 평생 소장 할 만한 오브제에 가까워요. 진정한 명품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되거든요.
향수를 만들 때 고유의 방법을 고수하는 만큼 본인만의 기준이 엄격할 것 같아요. 킬리안 헤네시는 어떤 사람인가요? 맞아요. 디테일에 매우 깐깐한 사람이에요. 그 부분만큼은 거의 악마에 가깝죠. 그리고 열정적인 사람이고요.
어떤 이들은 지금을 ‘취향의 시대’라고 말해요. 어떤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킬리안 향수를 선택했으면 하나요? 전 그 반대로 생각해요. 프랑스에 ‘당신의 옷차림이 당신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거든요. 전 그 의견에 동의해요. 킬리안 향수는 특정 취향에 갇히지 않고, 누구나 사용해도 좋은 향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향수만큼 제목을 짓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서, 당신을 인터뷰한 이 칼럼의 제목을 스스로 지어본다면요? 음, 조금 어렵지만 제 인터뷰 기사를 떠올려 보자면, ‘프린스 오브 퍼퓸(Prince of Perfume)’이라는 제목이 기억에 남아요.
에디터 이혜진(hjlee@noblesse.com)
사진 정동현(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