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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Dallas

FASHION

샤넬의 공방 컬렉션은 창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감(Inspiration)’임을 깨우쳐준다. 이번 공방 컬렉션의 주제는 댈러스. 댈러스에서 만난 샤넬은 낭만적인 개척자들의 역사가 파리 스타일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1 파리-댈러스 컬렉션이 열린 댈러스 페어 파크  2 영화 <더 리턴>의 한 장면  3 쇼에 참석한 포피 델러바인  4 쇼에 참석한 알렉사 청

2002년부터 칼 라거펠트는 공식 쇼 스케줄과는 별도로 매년 12월 ‘공방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였다. 샤넬 하우스와 관련 있는 과거와 현재의 도시를 선택해 브랜드의 역사를 보여주고 샤넬의 코드를 재해석하는 기회를 갖는 것. 커스텀 주얼리와 단추를 만드는 데뤼, 깃털과 꽃 장식 공방 르 마리에, 자수 장식 공방 르사주, 모자 공방 메종 미셸 등과 협업해 완성한, 기존 쇼에서는 보기 힘든 장인의 숨결이 깃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간 뉴욕, 몬테카를로, 런던, 모스크바, 상하이, 뭄바이, 에든버러 컬렉션 등을 통해 샤넬의 뛰어난 노하우와 기술을 아낌없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이번에 샤넬이 지목한 도시는 댈러스! 지난해 12월 댈러스의 심장부로 1936년 텍사스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 댈러스 페어 파크(Dallas Fair Park)에서 2013/2014 파리-댈러스 컬렉션을 공개했다.
부유한 목장에 초대된 듯 게스트들은 가벼운 흥분을 말아 쥐고 수많은 빈티지 자동차로 가득 찬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칼 라거펠트가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새 영화 <더 리턴(The Return)>을 감상했다.

 

 

영화 <더 리턴>은 가브리엘 샤넬이 그녀의 패션 하우스를 1954년 다시 열기까지 여정을 그려냈다. 이미 15년 전 패션에서 손을 뗀 가브리엘 샤넬이지만 그사이 여러 패션 하우스가 내놓은 작품에 실망한 그녀는 다시 쿠튀르로 돌아가고자 했다. 당시 71세였지만 그녀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새로운 컬렉션은 모국인 프랑스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 대신 대서양 건너편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음에도 샤넬은 미국 바이어와 언론의 지지에 힘입어 다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1958년 컬렉션은 그녀의 위상을 더욱 굳건하게 하며 유행이 한참 지났다고 여긴 울과 트위드 재킷, 슈트가 샤넬의 시그너처 스타일로 자리 잡았고, 샤넬 하우스 최초의 백인 2.55 퀼팅 클래식 핸드백과 투톤 펌프스를 선보였다.

1 파리-댈러스 컬렉션이 열린 댈러스 페어 파크  2 제럴딘 채플린  3 로런 허턴

마드모아젤 샤넬 역을 맡은 제럴딘 채플린, 샤넬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낸 <보그>의 패션 에디터 베티나 발라드 역의 아만다 할레치, 프랑스 여배우 델핀 세리그 역을 맡은 아나 무글라리스, 미국인 기자 역의 루퍼트 에버릿 등이 출연한 <더 리턴>은 캉봉 가의 실제 아파트와 살롱, 아틀리에를 완벽히 재현한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제럴딘 채플린은 인터뷰를 통해 “코코 역을 연기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칼과 일하는 것은 더욱 신납니다. 칼은 재미있고 천재적인 감독이에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드라이브 인 표시와 클래식한 자동차 사이로 팝콘과 캐러멜, 아이스크림과 핫초코 등 미국이 사랑해 마지않는 스낵을 제공한 자동차 극장은 자유롭고 투박한 텍사스의 흥취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자 게스트들은 로데오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무대로 안내되었다. 밝은 브라운 컬러의 건초가 깔린 캣워크와 통나무로 만든 좌석에 자리 잡으니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느낌. 칼 라거펠트가 소개한 컬렉션은 한마디로 파리의 우아함을 덧입은 카우보이와 카우걸. 밋밋한 카우보이 룩이 아니라 미국 시민전쟁 이전, 진정한 텍사스에서 영감을 받은 세련되고 멋을 아는 카우보이 말이다. 샤넬의 오리지널 슈트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넉넉한 사이즈의 재킷 소매에는 별과 술이 달려 있고, 플레어 미디스커트에는 부츠를 함께 매치했다. 니트 담요 같은 두꺼운 코트는 자수를 놓은 옷깃과 소매 장식이 돋보이고, 케이프와 판초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텍사스에서 빠질 수 없는 청바지는 깃털로 장식하고, 카프탄 드레스와 층진 아이보리 컬러 스커트에서도 깃털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웨스턴 새들 백, 카우보이 부츠, 트롱프뢰유 타이츠, 미니 카우보이 모자, 빅 버클 벨트 등은 잠시 잊고 있던 미국 패션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한다.

 

컬러와 텍스타일의 조합은 더욱 와일드하다.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대표 컬러인 화이트·베이지·레드·네이비·블랙에 핑크색 터치와 대초원을 연상시키는 브라운과 밀 컬러를 사용하고, 실크·새틴·트위드를 가죽과 데님에 매치해 이질적이면서 매력적인 룩을 소개한다.
칼 라거펠트가 댈러스를 새로운 공방 컬렉션의 주제로 삼은 것은 샤넬과 미국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1914년 가브리엘 샤넬이 프랑스 도빌의 부티크에서만 자신의 의상을 판매할 때부터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말 드미트리 대공은 가브리엘 샤넬에게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을 소개해주었다. 골드윈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패션에 변화를 가져오고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데 샤넬만 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해 그녀와 함께 <오늘 밤> 등 3편의 영화를 작업했다. 샤넬과 미국의 우정은 1954년 가브리엘 샤넬이 복귀하며 내놓은 컬렉션을 통해 한층 깊어졌다. 프랑스 언론은 혹평 일색이었지만 미국의 언론은 호의적이었다. 미국의 <라이프(Life)>는 1954년 그녀의 두 번째 컬렉션을 보고 “샤넬이 이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71세의 샤넬이 패션 이상의 무엇, 즉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1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 스탠리 마커스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가브리엘 샤넬. 1957년, 댈러스  2 가브리엘 샤넬의 1957년 모습. 마크 쇼 촬영

“나는 미국을 동경하고 사랑합니다. 미국은 나를 부유하게 만들어준 곳입니다. 많은 미국인에게(…) 나는 또한 프랑스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 폴 모랑의 <알뤼르 오브 샤넬(Allure of Chanel)>(1996년, 허먼 출판) 중 가브리엘 샤넬의 말

1957년 가브리엘 샤넬은 드디어 댈러스에 도착했다. 1907년 댈러스에서 처음 문을 연 니먼 마커스 백화점의 창립자 스탠리 마커스는 1938년 ‘패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니먼 마커스 패션 어워드를 제정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이 상을 수상하고 니먼 마커스 포트나이트(Neiman Marcus Fortnight)에 참석하기 위해 댈러스를 방문했다. 포트나이트는 니먼 마커스 백화점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스탠리 마커스가 낸 아이디어로 일종의 축제였으며, 이 방문을 계기로 미국 언론은 다시 한 번 가브리엘 샤넬이 미국에 프렌치 시크를 전달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가브리엘 샤넬 역시 따뜻하게 자신을 맞아주고 지지해준 미국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쇼가 끝난 후 파리-댈러스 컬렉션의 새 얼굴인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럴딘 채플린, 로런 허턴, 다코타 패닝, 릴리 콜린스, 아나 무글라리스 등의 게스트들은 자리를 옮겨 파티를 즐겼다. 프렌치프라이와 나초를 잘근잘근 씹고, 밴드의 로큰롤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고, 칼 라거펠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경쟁적으로 로데오를 시도했다. 형형색색의 불빛을 뿜어대는 주크박스와 바삭거리는 건초 속에 어우러진 미국의 낭만과 프랑스의 세련미는 상상외로 훌륭한 조합을 이루었다. 미국의 패션이나 문화라면 언제나 한 수 아래로 보는 몇몇 유럽 브랜드와 달리 샤넬은 미국 특유의 실용적 아름다움을 프랑스의 우아함에 접목하는 데 확실히 성공했다.

에디터 이윤정 (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샤넬(ch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