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ing Innovator
심미성과 독창성, 그리고 유연함을 담은 그만의 언어와 색으로 물들여온 규리킴(GyoureeKim)이라는 무한한 세계.

디자이너 김규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면? 한국에서 패션을 전공한 후 문화적 배경이 다른 영국으로 넘어갔다. 2018년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준석사과정을 시작으로 유학 생활을 했으며, 이후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여성복 디자인 석사과정을 밟았다. 독창성과 디자인 콘셉트를 기반으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탐구했고, 옷에 대한 레퍼런스가 없어도 무형의 어떤 것에서 영감받아 패션이 탄생할 수 있음을 배웠다. 패션이 단순히 의상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교육·퍼포먼스·전시 등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다렸다는 듯 기량을 펼치고 있다. 영국 알렉산더 맥퀸에서 잠시 근무하며 크리에이티브 패턴 커터로 드레스와 코르셋의 드레이핑 업무를 맡았다. 동시에 런던 칼리지 패션과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테크니션으로 패턴과 디자인 실무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내 브랜드를 꿈꾸며 옷을 디자인했다. 꾸준히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방 안이 옷으로 가득 찰 만큼 자연스레 아카이브가 쌓였다.
첫 컬렉션과 최근 컬렉션이 궁금하다. 처음 계획대로 시즌에 얽매이지 않고 S/S와 F/W의 구분 없이 1년에 한 번씩 컬렉션을 진행하고 있다. 규리킴이라는 브랜드로 처음 선보인 쇼는 2022년 일본에서 열렸다. 공모전 형식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합격한 이들에게 도쿄 패션 위크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어 2023년 2월 런던 패션 위크에서 2023 F/W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이는 브랜드가 세상에 알려지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2024년 9월에도 2025 S/S 컬렉션을 진행했다.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cherubs)의 신비로운 힘에서 영감을 받아 전통적 아이코노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튈, 새틴, 깃털 등 가벼운 텍스처의 레이어는 천사들의 장난기 많고 신비로운 본질과 무중력 속 우아함을 담아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만의 정체성이나 아이덴티티가 있느냐는 것이다. DNA는 코르셋이다. 샤넬의 저지 드레스가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듯, 코르셋은 오랫동안 여성의 신체적 자유를 억압하는 아이템으로 인식되어왔다. 규리킴은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코르셋을 신체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보호막으로 재해석한다. 로맨틱 쿠튀르, 로 에지, 빈티지, 클래식, 리본, 중세 고딕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녹여낸다.
존 갈리아노, 비비안 웨스트우드, 알렉산더 맥퀸 등 빅토리안 패션을 동양화한 느낌이다. 장 폴 고티에와 메종 마르지엘라를 좋아한다. 아주 오래된 컬렉션을 이번 시즌 컬렉션이라고 소개해도 될 만큼 동시대적 느낌이 강하다.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규리킴의 룩들이 염색되지 않은 아이보리 계열의 컬러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하학 형태, 다양하고 생경한 조합, 실험적 디자인. 이런 유니크함이 정체성을 형성하고 대체 불가능하게 만든다. 작업하다가 또 다른 영감을 받는 스타일이다. 그럴 땐 기존에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방향을 틀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 기획하지 않은 전혀 다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최근 페티코트를 만들다가 문득 머리에 얹어봤는데, 모자로 만들면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어울리는 레이스 원단을 더해 영국 왕실에서 쓸 법한 모자를 제작했다. 이렇듯 규리킴에게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3이 될 수도 있고, 5가 될 수도 있다.
샘 스미스 및 도자 캣과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영국 뮤지션 아시니코와 작업한 경험이 있다. 이후 그녀의 스타일리스트를 통해 샘 스미스의 스타일리스트로부터 ‘I’m Not Here to Make Friends’ 뮤직비디오 백댄서들의 의상 제작 의뢰를 받았다. 개개인의 사이즈에 맞춰 패턴을 제작한 뒤, 다음 날 직접 가서 피팅을 진행하며 가봉과 수정을 거쳐 의상을 완성했다. 도자 캣 역시 영국에 있을 때 스타일리스트에게 연락을 받았고, 한국에 들어와 신발 작업을 시작하자 고맙게도 다시 연락이 왔다.
지속 가능한 패션 방법론에 대해 어떻게 탐구하는가? 평소에도 환경오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영국 석사과정 시절부터 미역이나 전분 등 다양한 친환경 소재를 활용해 옷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주로 사용하는 소재는 데드 스톡 패브릭, 빈티지 커튼 원단, 전에 사용하고 남은 원단 등을 업사이클링해 완성한다. 오래된 것이 지닌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보존하고 아끼는 데서 영감을 받는 편이다. 자연에 해를 끼치는 패션 제작 과정을 최소화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추구하는 슬로 패션은 어떤 의미인가? 디자인, 패턴 제작, 소재 개발, 봉제까지 혼자서 진행한다. 특히 데드 스톡 원단을 활용해 디자인을 하다 보니 같은 옷을 다시 만들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에서 규리킴의 모든 옷에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완성하는 장인정신이 담겨 있다. 옷뿐 아니라 신발, 양말, 모자, 장갑, 가방, 주얼리 등 다양한 아이템에 대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공격적 마케팅 없이, 상업적 옷보다는 김규리가 만들고 싶은 규리킴만의 독창적 작품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가치 있는 옷을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며, 이러한 철학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자 한다.
에디터 손소라(ssr@noblesse.com)
사진 박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