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YAKILI_ 루디 아킬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가 현대미술의 온상지가 되기를 바라는 컬렉터가 있다. 인도네시아 미술의 힘을 키우려면 좋은 작품을 집에만 걸어놓지 말고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 그들에게 감상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믿는 컬렉터가 있다. 현대미술 활성화의 선두에 선 인도네시아의 톱 컬렉터 루디 아킬리다.
인도네시아 최고의 아트 컬렉터로 알려진 루디 아킬리
동남아시아 미술계에서 최강의 바잉 파워를 지니고 있는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은 그 누구보다 인도네시아의 예술가를 사랑한다. 자국의 예술가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인도네시아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가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데에는 이런 컬렉터들의 영향이 컸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슈퍼 컬렉터 루디 아킬리(Rudy Akili)는 2006년 자카르타에 아킬리 미술관을 짓고 아킬리 어워드를 제정해 인도네시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중국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든든한 미술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여행을 통해 얻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변한 과정, 그리고 무엇이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에게 그토록 미술에 대한 애정을 불어넣고 있는지 등에 관한 궁금증을 그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루디 아킬리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아킬리 뮤지엄.
본격적인 컬렉션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진지하게 컬렉션에 열정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즈음입니다. 미술계에 있던 친구 하나가 저를 미술관과 갤러리, 작품 경매 현장에 데리고 다녔죠. 그런 경험이 저에게는 미술학교가 된 셈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예술에 대한 지식과 감식안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여행사를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컬렉터가 되셨나요?
1970년대에 관광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여행사가 됐죠. 현재 자식들이 경영하고 있어요. 관광 사업에서 성장해 라이프스타일 분야, 가령 부동산이나 레스토랑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사업차 출장과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러면서 예술가들과 하나둘 친구가 되기 시작했고 그들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 존경심으로 변한 것 같아요.
컬렉팅을 할 때 어떤 기준이나 원칙 등을 지키고 계신가요?
어떤 작가가 눈에 띄면 저는 그들의 작품을 가능한 한 많이 보고 공부합니다. 한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게 살펴보면 작품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각각의 개별적인 작품의 퀄리티도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일정한 컬렉션 기준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특정 작품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작품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컬렉션의 성격을 설명해주실수 있습니까?
인도네시아 모던아트를 대표하는 헨드라 구나완, 아판디, 리만퐁, 바소에키 압둘라 등의 작품이 컬렉션의 한 부분입니다. 다른 한 부분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한 서양인 예술가로 르 마이예, 루돌프 보넷, 뷜렘 게라르드 호프커 등의 작품 컬렉션이 있죠.
주로 인도네시아와 관련된 작가에게 중점을 두시나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세계적인 조각가 마놀로 발데스, 스페인의 국민 화가 안토니 클라베,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 같은 작가의 작품도 구입했습니다. 중국의 근대 거장인 우관종, 자오우지, 주더췬, 왕이둥, 천옌닝, 양페이윤 등의 작품도 좋아합니다.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 작가로는 크리스틴 아이 초, 에코 누구로호, 헤리 도노, 에스 테디, 좀펫 쿠스위다난토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죠. 또 그로데스크한 그림을 그리는 호세 레가스피나 팝아트적인 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로날드 벤투라 같은 필리핀의 미술 경향도 좋아합니다. 아데 다르마완, 아리야 판자루, 라트나 울란 등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주고 있고요.
현대 사실주의 미술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현대 사실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네, 맞습니다. 현대 사실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놀랍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대 사실주의는 사물을 자연적 상태에서 묘사하죠. 포토 리얼리즘이 보여주는 과장성도 없고요.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런 분야에 초점을 맞춘 예술가가 실제는 사실주의 배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 중 많은 수가 매우 단단한 학구적 배경에서 추상미술로 시작했죠.

컬렉션의 대표 작품은 무엇인가요?
전 컬렉션의 모든 작품이 각각의 시대와 양식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컬렉팅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나요? 혹은 개인의 신념에 따르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전문가들과 상의하고 조언을 얻는 방식으로 컬렉팅합니다.
개인 컬렉션으로 지난 2006년 자택 옆에 아킬리 미술관을 오픈했습니다. 미술관을 열기 전과 혹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예술에 대한 즐거움과 지식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미술관 설립을 결정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공공 미술관의 활동이 다른 국가만큼 활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작품은 개인 컬렉터들이 주로 소장하고 있죠. 미술 운동을 활발히 하고 일반인의 미술 감상 기회를 지원하기 위해 그런 작품은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제 미술관을 보고 다른 컬렉터들도 미술관을 열도록 장려하고 싶었습니다. 바람이라면 자카르타가 현대미술의 온상지가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립 미술관 설립이 가속화되어 이 플랫폼을 튼튼하게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의 좋은 예를 들자면, 만약 몇몇 사립 미술관이 함께 후원하는 강력한 전시가 자카르타에서 열린다면 정말 멋있지 않을까요?
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킬리 미술관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요?
전시는 누구든 관람이 가능합니다. 미술관 프로그램이라면 매우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는데, 제 개인 미술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개최하는 것, 해외 미술관 작품을 초대하거나 전시를 교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큐레이터와 상의하고 있습니다. 또 흥미로운 전시를 유치하고자 노력하죠. 몇 년 전에는 중국의 대가 여러 명을 초대했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상적인 컬렉터상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 작품을 일반 대중과 함께 감상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죠.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예술가상은 뭔가요?
자신의 생각에 진실한 예술가, 자기만의 철학을 지닌 예술가, 자신의 발전 과정을 그려내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입니다.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는 작가가 있나요? 컬렉션 가운데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소장한 작품은 물론 모두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제 컬렉션에 있는 거니까요. 각 예술가는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모두 소중합니다.
직접 지원하는 가까운 작가가 있나요? 어떤 컬렉터는 예술가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네, 물론입니다. 미술품을 수집하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일이니까요. 예술가의 작품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우정이 쌓여가죠.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아시나요?
아직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공부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양혜규나 서도호 같은 한국 작가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한국에 가봐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 한국 사람들을 만나 알게 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언제 컬렉터로서 행복감을 느끼나요?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매우 행복합니다. 좋은 와인과 음식이 있으면 물론 더 좋고요.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드디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의 자상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 시간과 일정을 직접 문자로 확인하고 답변을 주는가 하면 인터뷰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도 재차 문의하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란다.
1 Le Mayeur, St. Tropez.
2 Eko Nogroho, Seneng Kuwi Larang Regane, 2009.
Wu Guan Zhong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현대미술계의 거두로 올라선 작가 우관종(1919~2010년). 그는 젊은 시절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조국에서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 회화 작품을 선보여 수많은 후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다. 다양한 풍경과 자연의 한순간을 동양화적 화풍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미술 시장이 비교적 활성화되지 않은 1990년대에도 큰 인기를 누렸다. 미술을 통해 문화 혁명을 이뤄냈다고 평가받는 그는 지난 2010년 92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Jompet Kuswidananto, Cortege on Third Realm, 2010.
Jompet Kuswidananto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자국의 정서를 실체화하는 좀펫 쿠스위다난토(1976년~)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할 차세대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고국의 풍부한 전통문화와 포스트 식민 시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함께 담아낸 설치 작품으로 아시아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 A3 아시아 현대미술상 최종 후보 작가 6인전 >을 통해 국내 시장을 노크한 바 있다.
Zao Wou Ki, 2 June 61.
Zao Wou Ki
먹으로 서예의 느낌을 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색을 조합하는 자오우키(1921년~)는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국의 전통 미술에 서양 회화를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항저우의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뒤 파리 작가들의 작품에 깊이 매료되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파리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독자적인 작업을 전개해 지금의 화풍을 완성했다.
Manolo Valdés, Mujer Con Abanico III, 2006.
Manolo Valdés
세계적 조각가 마놀로 발데스(1942년~)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1964년 후안 톨레도, 라파엘 솔베스와 함께 ‘Equipo Cronica(만성적인 팀)’이라는 소그룹을 창설해 활동했다. 이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비유적 작품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으며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과 미술의 역사를 비평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현재, 팀은 해체되었지만 렘브란트, 루벤스, 마티스의 영향을 받은 마놀로 발데스는 빛과 색으로 촉감을 표현하는 강렬한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김정연(스페이스 코튼시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