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ling with Jewels
가브리엘 샤넬이 거쳐갔거나 머무른 곳은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남부의 리비에라 해변에 위치한 별장 라 파우자(La Pausa) 역시 그녀에게 수많은 영감을 잉태시킨 곳이다. 그녀가 즐겨 타던 요트의 이름을 딴 하이 주얼리 컬렉션 ‘플라잉 클라우드(Flying Cloud)’를 선보이는 곳으로 이보다 완벽한 조합은 있을 수 없다.

Endless Knot Earrings. 총 4.67캐럿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 2개와 18K 화이트 골드, 총 2.02캐럿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 2개와 140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이어링. ⓒCHANEL Fine Jewelry
샤넬의 하이 주얼리는 여타 브랜드의 주얼리와 다른 매력이 있다. 대다수의 주얼리 브랜드가 새롭게 내놓는 하이 주얼리에 독특한 주제와 의미를 부여하지만, 샤넬은 더 나아가 특별한 ‘스토리’를 담을 때가 많다. 그 스토리는 무엇보다 특정 장소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브리엘 샤넬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상처를 보듬고자 찾은, 베니스의 상징인 사자상에서 영감을 받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나 어릴 적 오바진 수도원에서 영향을 받은, 별을 주제로 한 컬렉션 등은 주얼리 감상에 앞서 가브리엘 샤넬의 삶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1, 2 하이 주얼리 프레젠테이션이 열린 라 파우자 전경.
샤넬이 프랑스 니스로 초대했을 때 에디터는 ‘이곳에도 뭔가 감춰진 이야기가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떨칠 수 없었다. 지중해의 항구도시 니스는 연중 온화한 기후의 리비에라 해안가에 위치한 유명한 휴양지다. 산과 절벽을 따라 고급 별장과 휴양지가 그림처럼 둘러싼 곳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면 가브리엘 샤넬이 별장으로 애용하던 라 파우자에 다다른다. 아름다운 풍광과 온화한 기후로 리비에라 해변에 위치한 많은 도시가 샤갈이나 피카소 등의 예술가에게 창작의 근원지가 된 것처럼 라 파우자에서 지내는 동안 가브리엘 샤넬도 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며 영감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3 라 파우자에 전시된 하이 주얼리. 4 가브리엘 샤넬이 머물던 방.
하이 주얼리 컬렉션 이름인 ‘플라잉 클라우드’는 벤더라는 애칭으로 불린 제2대 웨스트민스터 공작 휴 그로스베너가 소유한 요트의 이름이다. 1923년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작은 플라잉 클라우드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만남이 지속되어 1928년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경이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플라잉 클라우드에서는 축하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요트 안에서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29년 지중해 크루즈 여행 중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 에메랄드를 선물했으나 샤넬은 이를 바다로 내던졌다고 전해진다. 가브리엘 샤넬이 당시 여성들과 달리 독립적이고 당당한 애티튜드를 지니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5 보트 위 가브리엘 샤넬과 루시의 모습(1935년). ⓒAll Rights Reserved 6, 7 1926년 플라잉 클라우드에서의 가브리엘 샤넬. ⓒPrivate Collection

8, 9, 10 1926년 플라잉 클라우드의 내부모습. ⓒPrivate Collection
라 파우자 근처에는 장 콕토가 살았던 집도 있다. 이 빌라에는 방의벽마다 장 콕토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 있어 가히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곳은 현재 하루에 몇 명씩 제한된 인원에 한해 투어가 가능하다. 주변의 환경 덕에 가브리엘 샤넬은 라 파우자에서 당대의 예술가인 달리, 피카소와 장 콕토 등과 어울렸다. 1929년에 지은 이 집은 가브리엘 샤넬이 손수 모든 곳을 장식해 그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커다란 올리브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는 집에는 그녀가 어릴 적 생활한 오바진 수도원의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는데, 교차 볼트로 디자인한 입구, 바실리카 스타일 현관 등이 그것이다. 후에 가브리엘 샤넬이 이곳을 팔아 다른 이가 오랫동안 소유했으나 2015년 샤넬 하우스에서 사들였다. 다시 샤넬의 소유가 된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행사는 그래서 의미가 각별하다.

11 Endless Knot Necklace. 3.51캐럿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 총 6.19캐럿의 2개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 2637개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 106개의 로즈 컷 다이아몬드와 18K 화이트 골드가 조화를 이룬 네크리스. ⓒCHANEL Fine Jewelry
12 Azurean Braid Bracelet. 총 14.96캐럿의 쿠션 컷 블루 사파이어 2개, 390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18K 화이트 골드가 어우러진 브레이슬릿. ⓒCHANEL Fine Jewelry
13 Azurean Braid Ring. 11.49캐럿의 쿠션 컷 블루 사파이어, 112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18K 화이트 골드로 이루어진 링. ⓒCHANEL Fine Jewelry
14 Golden Braid Ring. 3.02캐럿의 쿠션 컷 다이아몬드, 67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18K 옐로 골드로 구성한 링. ⓒCHANEL Fine Jewelry
15 Yachting Day Ring. 18.03캐럿의 무색 오벌 컷 사파이어, 51개의 브릴리언트 컷 블루 사파이어, 65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18K 화이트 골드로 이루어진 링. ⓒCHANEL Fine Jewelry
하이 주얼리의 이름인 플라잉 클라우드는 검은색 선체에 흰색 목재 갑판이 깔끔하게 어우러지고 4개의 돛을 단 요트로 40여 명의 선원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손님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한다. 플라잉 클라우드는 단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당시 상류사회의 여유로우면서도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곳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 컬렉션 곳곳에서 요트와 바다의 모티브가 눈에 띈다. 주로 사용한 컬러도 화이트와 블루이며 골드를 악센트 컬러로 활용했다.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두 가지 챕터로 소개하는데, 첫 번째 챕터는 바다 생활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필요한 요소를 재창조했다. 양식 진주를 사용해 조각한 부표, 스파클링 라인 컬렉션의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만든 로프, 요팅 데이 세트의 화이트 골드로 만든 앵커, 세일러 타투 세트의 화이트 또는 옐로 골드로 만든 돛과 나침반, 고동 등이 흥미롭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여름 의상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해 선보인다. 특히 선원복의 갖가지 요소를 차용해 자유로운 움직임을 강조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선원들이 즐겨 입은 줄무늬 저지 톱과 풍성한 와이드 컷 트라우저, 헐렁한 블랙 넥타이, 베레모 등에서 많은 요소를 가져왔다. 서머 크루즈 세트에는 딥 블루 사파이어 또는 화이트 골드, 양식 진주, 옐로·화이트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밴드가 번갈아 등장하고, 골든 브레이드에서는 선원복에서 볼 수 있는 브레이드(수술) 장식을 묘사했으며, 세일러 슈트 컬렉션에서는 선원복 재킷에 달린 커다란 단추를 옐로 또는 화이트 골드로 표현했다. 매듭지은 로프 모양의 골드 브레이슬릿, 화이트 골드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비브 네크리스도 주목할 만하다. 유연한 로프를 모티브로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엔들리스 노트 라인의 네크리스가 특히 눈길을 끈다.

16 Turquoise Waters Necklace. 2.58캐럿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 12개의 쿠션 컷 블루 사파이어, 34개의 오벌 컷 블루 사파이어, 3개의 페어 컷 블루 사파이어, 2개의 라운드 컷 블루 사파이어, 총 23.84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1552개와 18K 화이트 골드로 이루어진 네크리스. ⓒCHANEL Fine Jewelry
17 Precious Float Necklace. 1.5캐럿의 라운드 컷 다이아몬드, 100개의 일본 양식 진주, 라피스라줄리, 232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18K 화이트 골드가 어우러진 네크리스. ⓒCHANEL Fine Jewelry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좋아한 보석 진주도 빠질 수 없다. 네크리스 등으로 표현한 진주는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가브리엘 샤넬은 하얗게 빛나는 진주가 구릿빛 피부와 이루는 대비를 좋아해 이미 1920년대에 이 같은 모습을 즐겨 연출했다. 그녀는 폴 모랑에게 “검게 그을린 귓불에 새하얀 귀고리를 착용한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이 주얼리를 펼쳐 보인 라 파우자는 가브리엘 샤넬의 생전 모습처럼 아름답게 치장하되 과하지 않은 모습이다. 울창한 올리브나무 사이사이에 놓인 벤치들은 평화로운 휴양지의 모습을 전하며, 실내에서는 요트를 연상시키는 장치와 소품을 통해 플라잉 클라우드의 존재감을 일깨웠다. 마치 바다 위를 유영하듯 전시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음미하다 보면 이곳에서 예술가들과 담소하고 때론 논쟁했을 가브리엘 샤넬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찬찬히 하이 주얼리 컬렉션 사이를 누비고 다니노라면 요트 위에 누워 바람과 햇빛을 느끼고 누렸을 샤넬의 시간을 몸에 두르는 듯한 기분에 젖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샤넬의 주얼리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에디터 이윤정(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