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ously Sweet Wines
달콤한 인생의 짜릿한 편린이 되다. 달콤한 황금빛 와인의 유혹.

와인에 관한 한 슬픔이나 속상함을 느낄 일이 거의 없지만, 달콤한 와인을 향한 대중의 시선을 접할 때면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질 좋은 달콤한 와인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그래서 몸값이 비싼 와인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이러한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랴. 우리가 달콤한 와인에 대해 오해하는 연유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첨가해 단맛을 낸 저질 와인이나, 인공감미료를 더한 그야말로 보기 좋은 떡에 불과한 색색의 와인을 맛본 탓이 크다. 게다가 와인 공부를 하며 (실제로 그 와인에 당분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는 상관없이)’드라이하지 않은 와인’에 대해 다소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달콤한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은 단맛과 신맛의 ‘완벽한 조화’에서 기인한다. 알코올화하지 않은 포도에 축적된 당분이 가져온 불쾌할 정도의 강한 단맛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적할 만큼 강렬한 신맛이 필요하다. 양질의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나무에 매달린 채 포도를 얼려 얼어붙은 수분을 제외한 포도의 농축된 당과 산미를 뽑아낸 아이스와인. 또 가을에 비가 내리지 않는 온화한 기후에서 포도의 수확을 미루거나 가지를 잘라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당분을 응축시키기도 한다. 비가 내릴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포도를 따 환기가 잘되는 방의 서까래에 매달거나, 좀 더 흔하게는 얕은 쟁반에 담아 실내에서 건조시킨다. 이렇듯 말린 포도를 이용하는 것은 고대부터 이어 내려온 방식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전역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토 주 발폴리첼라 지역을 대표하는 진한 풍미의 레드 와인 아마로네가 바로 이 기술을 이용한다.
보트리티스 균이 침투한 포도. 귀부 와인이 이 포도에서 탄생한다.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방법은 완숙한 포도에 ‘고귀한 부패(귀부)’로 불리는 회색 곰팡이균, 보트리티스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곰팡이는 생육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 햇빛과 수분(소나기나 이슬)의 영향을 번갈아 받아야 나타난다. 곰팡이가 피었다고 해서 전부 농축된 포도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속까지 부패해 포도송이째 버리는 일이 흔하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최고급 귀부 와인을 생산하는 소테른과 바르사크에서는 한 농장에서 열 번에 거쳐 포도를 수확하기도 한다. 세미용 품종과 일부 소비뇽 블랑 품종은 포도를 수확할 때마다 따로따로 착즙해야 해 대단히 노동집약적이다. 하지만 이처럼 공들여 완성한 달콤한 보르도 화이트 와인이 같은 태생의 레드 와인에 비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필자는 부당하게 느껴진다. 샤토 라피트에서는 라피트 와인 주문 시 소테른 지역에서 생산한 샤토 리외세크 와인을 추가로 끼워주는 것을 관례로 삼아왔다. 소테른의 평균 수확량은 1헥타르당 1000리터에 불과한 반면 레드 와인은 4~5배나 많은데도 사정이 그러하다. 어쩌면 문제는 당분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보편적 인식(어차피 와인 애호가는 다량의 발효된 당분을 알코올 형태로 섭취하게 마련)과 달콤한 와인은 식사의 마지막에 마셔야 한다는 편견 때문일 수 있다. 소테른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와이너리인 샤토 디켐이 LVMH에 흡수되기 전 당시 소유주인 알렉상드르 드 뤼르 살뤼스 백작과 오찬을 함께한 적이 있다. 양파 타르트와 진한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요리, 로크포르 치즈와 과일 디저트로 이어진 식사 코스에 맞춰 그는 다양한 빈티지의 샤토 디켐을 내놓으며, 자신의 달콤한 와인이 얼마나 다재다능하게 음식과 어우러지는지 입증해 보였다. 그때 마신 와인의 황금빛 광채를 떠올리기만 해도 당장 책상에서 일어나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알렉상드르와 그의 아들 필리프는 LVMH와의 씁쓸한 다툼을 뒤로하고 이제는 디켐이 아닌 소테른의 또 다른 포도원 샤토 드 파르그에 열정을 쏟고 있다. 필리프는 35년 전 필자가 처음 만난 그의 아버지처럼 재치 넘치는 화술을 발휘해 달콤한 와인이 과거에 종종 그래왔듯이 머지않아 다시 유행할 것이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붉은 고기와 채소만 먹는다면 소테른 와인이 손해를 보겠죠. 하지만 그 밖의 요리엔 괜찮습니다. 달콤한 우리 와인과 백색 육류, 조개류는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모든 요리와 궁합이 좋죠. 식전주로 마실 수도 있어요. 굴 요리와도 잘 맞고요.”
보트리티스 균이 침투한 포도. 귀부 와인이 이 포도에서 탄생한다.
진귀한 독일산 귀부 와인은 종종 샤토 디켐보다 비싼 가격에 팔린다. 특히 모젤 강 지류의 자르 지역에 위치한 에곤 뮐러 포도원에서 리슬링 품종으로 만든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TBA)가 대표적이다. ‘Winesearcher.com’에서 뽑은 세계 최고가 와인 50선을 보면, 에곤 뮐러 샤르츠호프베르크 TBA의 평균 가격은 병당 9000달러를 호가하며 이를 능가하는 와인은 로마네 콩티가 유일하다. 라인 강변에서 생산한 일반적 독일 와인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과 달리, 고귀한 곰팡이의 은혜를 입은 모젤 귀부 와인은 1921년에 시작해 아직 채 1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에곤의 아버지가 샤르츠호프베르크 포도원에서 처음 TBA를 만든 것 또한 비교적 최근인 1959년의 일이다. 두 번째 TBA를 만들기 위해 1971년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다음 빈티지는 1975년, 1976년, 1989년, 1990년으로 이어진다. 에곤 뮐러는 “요즘은 지구온난화 덕분에 TBA를 거의 2년에 한 번씩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찾는 것에 비해 아직은 너무 귀한 실정이다(1990년에는 겨우 120리터밖에 생산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호주 최초의 귀부 와인, 드 보톨리 와이너리의 ‘노블원’. Les Vins de Maeil
800년 역사가 넘는 독일 슐로스 폴라츠 가문이 라인 강가에서 만든 리슬링 아이스바인. Keumyang International
산토리니의 아시르티코를 볏짚 위에서 말려 당분을 농축시켜 만든 빈산토 와인. Greece Wine Center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터를 잡은 필리터리 이스테이트의 아이콘급 비달 아이스와인. Kiljin International

1 알자스의 와인 명가 도멘 바인바흐에서 만든 게부르츠트라미너 100% 스위트 와인이다. 장미 꽃잎, 모과류와 인동초의 우아하고 복합적인 향이 인상적이며 깊고 진한 맛과 함께 뛰어난 균형미를 보여준다. Nara Cellar
2 토카이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로열 토카이의 ‘베체크 2008’. 아몬드, 레드커런트, 녹색 자두, 미네랄의 풍미가 사랑스러운 달콤함, 생생한 산도와 함께 어우러져 긴 여운을 남긴다. Shandong Wine
3 클레멘스 부슈 ‘마린부르크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는 매혹적인 산도와 당도의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주는 와인으로 독일 TBA 중에서도 가장 농밀하며 집중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간 200~300병만 생산해 희소가치가 높다. Crystal Wine
4 소테른 ‘귀부 와인의 왕’으로 불리는 샤토 디켐. 한 잔에 세상의 모든 기분 좋은 달콤함이 들어 있다. 어릴 때 마셔도 한없이 멋지지만 100년을 묵혀둘 수 있는 와인. Keumyang International
헝가리 북서 지방에 위치한 토카이는 귀부 와인을 생산한 전통이 문서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무려 17세기 중반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과 인접한 오스트리아 국경 지대 부르겐란트 주 노이지들러 호숫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귀부 와인 집산지다. 호수에서 발생한 아침 안개가 보트리티스균을 활발히 퍼뜨리는 데 기여한다. 게르하르트 크라허 포도원에서는 단맛의 정도에 따라 번호를 매긴 TBA 와인을 매년 대략 10종씩 생산할 정도.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르하르트의 할아버지 알로이스는 능력 있는 포도 재배업자로 1958년에 포도원을 설립했다. 그의 아들 알로이스 또한 발군의 실력자로 아버지가 일군 포도원에서 얻은 귀부 와인의 잠재성을 간파했다. 1980년대부터 그는 벨슈리슬링, 쇼이레베, 샤르도네를 사용해 만든 부르겐란트 지역의 보물 같은 이 감미로운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벌였다. 1980년대 초 런던에서 샤토 디켐과 나란히, 그리고 당당히 다양한 오스트리아 귀부 와인을 선보이던 그를 기억한다. 디켐처럼 100년을 뛰어넘는 보존력은 아니지만, 그의 와인도 수십 년은 거뜬히 생생한 생명력을 기대할 수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그리피스 내륙 지방에서도 스위트 와인을 만날 수 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지역에서 양질의 귀부 와인을 만든다. 1982년 딘 드 보톨리가 과잉 생산으로 지나치게 완숙한 세미용 품종의 포도를 탈바꿈시켜 현재 호주를 대표하는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자,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노블원’을 탄생시켰다. 어떤 것이라도 좋다. 부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달콤한 와인을 마셔보기를 권한다.

잰시스 로빈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와인평론가이자 의 편집자. 휴 존슨과 함께 을 집필했으며 <파이낸셜타임스>에 매주 와인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TV 출연과 강연, 시음 행사 등 와인 관련 활동을 다양하게 펼친다. <노블레스>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와인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에디터 |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 박원태 글 |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스타일링 |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