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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in Neshat 시린 네샤트

ARTNOW

시린 네샤트는 이란 여성의 억압받는 삶을 사진과 영화로 표현해온 세계적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고향인 이란(이슬람) 문화에서 출발한 개인적 문제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보일지를 묻는다. 개인의 생각, 이란과 무슬림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문화적 이슈로 풀어내는 것. 이슬람 여성의 삶과 자유를 ‘인권’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표현하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온 그녀의 대규모 회고전이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열린다. 전시가 한창이던 지난 5월 그녀와 함께 정치와 미술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1 뉴욕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열중인 시린 네샤트 / The photographer’s credit is: David Regen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인전 전경 3 남성들을 떠나 먼 바다로 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영상 3부작 중 하나인 ‘황홀’(1999) / Courtesy the Shirin Nesha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시린 네샤트는 1957년 이란 태생의 작가다. 이란 역사상 비교적 진보적인 시대에 자란 그녀는 열일곱 살 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한동안 귀국하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아픔을 겪었다. 1982년 UC 버클리에서 회화와 미술 이론을 전공했지만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95년, 17년 만에 이란에 돌아가 후퇴한 여성 인권과 사회·정치 시스템의 보수 일변도를 목격하는 ‘믿기 어려운 강렬한 경험’을 한 뒤다. 현재 그녀는 뉴욕을 기반으로 사진과 영상, 영화를 넘나들며 무슬림 문화에 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흑백사진 위에 페르시아어 텍스트와 이슬람 전통 문양을 그려 넣은 사진 연작 ‘알라의 여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2채널 흑백 영상인 <격동>으로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황홀>로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으며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2009년엔 영화 <여자들만의 세상>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UC 버클리에서 회화와 미술 이론을 전공했는데 이후 작품은 사진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학교에서 페인팅을 했지만 한 번도 제 작업에 만족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사진을 시작했죠. 당시 제 관심이 소셜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만큼, 그림보다는 사진이 제 작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초기의 사진 연작 ‘알라의 여인’ 위에 직접 쓴 페르시아 글씨가 인상적입니다.
텍스트는 제가 존경하는 이란 여성 시인의 시입니다. 침묵하는 듯 보이지만 할 말이 너무 많은 여성의 마음을 나타내죠. 제가 사진 위에 텍스트를 쓰는 것은 사진 작품에 서정성을 더하는 작업입니다.
사진이든 영화든 흑백을 즐겨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작업이든 색이 개입하면 산만해집니다. 흑백사진이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통렬함을 컬러 작업에선 발견하기 힘들죠. 전 영화든 사진이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제한적으로 색을 넣습니다.
사진과 영화를 넘나들며 작업해왔습니다. 각각의 작업에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전 사진을 하나의 시로 보고, 비디오를 하나의 스토리로 봅니다. 특히 비디오 설치 작업은 관람객에게 공간적 경험을 선사하고, 그들이 제 작품에 몰두하는 것을 즐기죠.
그 두 가지를 같이 하다 보면 분명 머리 아픈 일도 생길 것 같은데요?
영화와 사진 작업을 병행하다 보면 예술적으로나 직업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생각보다 머리 아픈 일은 없어요.(웃음) 사진 작업은 스튜디오 중심적입니다. 작가가 많은 일을 해야 하죠. 서체 작업이나 프린트 등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결과물로 사진이란 물건이 나오면 그것을 갤러리나 미술관에 전시합니다. 물론 관람객도 미술계 사람이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예술적 관점에서 사진에 어떤 개념을 담고자 합니다. 제 작품은 항상 인물 사진입니다. 이런저런 차이가 있지만, 모든 작품이 매우 현실적입니다. 흑백인 데다 텍스트를 삽입해 의미의 층위를 더하죠. 한편 영화는 1998년부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통해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개념적 인물 사진을 넘어 이야기 만드는 법을 배웠죠. 단순히 사진 하나를 만드는 것과 달리, 이야기를 만들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익혔습니다. 영화 제작은 팀 작업입니다. 끊임없이 사진작가, 작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배우 등과 협업해야 하죠.

1 남성들을 떠나 먼 바다로 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영상 3부작 중 하나인 ‘황홀’(1999) / Courtesy the Shirin Nesha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2 이란 쿠데타를 배경으로 네 여인의 삶을 그린 영화 <여자들만의 세상>(2009). 시린 네샤트는 이 작품으로 200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 Courtesy the Shirin Nesha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3 가장 최근의 사진 시리즈 ‘열왕기’ 중 ‘브라함’(2012) / Courtesy the Shirin Nesha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4 시린 네샤트가 처음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흑백 사진 시리즈 ‘알라의 여인들’ 중 ‘침묵의 저항’(1999) / Courtesy the Shirin Nesha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두 작업은 관객층도 서로 다를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사진은 주로 미술 관계자가 관람객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좀 더 다양한 관객층을 만날 수 있죠. 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대중문화와 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갤러리나 미술관을 벗어나 영화에 도전하면, 미술이 생소한 일반 관객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저는 앞으로도 사진과 영화 작업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당신을 소개하는 텍스트엔 늘 ‘망명’이란 단어가 따라붙습니다. 이란을 떠나 뉴욕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오랫동안 이란에 대한 저항적 작업을 한 이유로 1996년부터 아예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없는 것이 제일 슬프죠. 하지만 특별히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지금은 고향인 이란보다 미국에서 생활한 날이 많아 어느 정도 적응도 됐고요. 전 대개 뉴욕이나 미국의 시골에서 지내는데, 그곳이 제 고향처럼 느껴져 편하고 좋습니다. 지금으로선 이게 제가 살아가야 할 삶인 것 같습니다.
200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여자들만의 세상>주1은 1953년 이란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이란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것입니다. 1953년이면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인데,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술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이란 쿠데타에 흥미를 느껴왔습니다. 이란의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그 쿠데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란에선 미국 CIA의 배후 조종으로 쿠데타가 일어나, 이란의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민주적 정부인 모사데그 정부가 군부 세력과 왕에게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때의 쿠데타를 이슬람 혁명의 기반이라 보고, 또한 미국 사람에 대한 이란의 적대감이 생긴 원인으로 보고 있죠. 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인지 모두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외국의 개입이 이란의 현 정치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 같아요. 저는 당시의 상황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종종 미술가이기 이전에 정치인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그간 이란의 정치 상황을 표현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런 의견에 대해선 사실 유감스럽습니다. 저는 정치인이 아닌 아티스트입니다. 제 목소리와 미술 작업이 정치와 떨어질 수 없는 건 그것이 제 개인의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난 작업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이란인으로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마주하는 이슈들 사이를 항해하는 것, 그것이 제 작업의 본령입니다. 그리고 그 이슈는 저라는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고요.
당신의 한국 전시 소식을 알리는 기사 중 한국인 전남편에 대한 얘기도 있었습니다. 실제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사진이 이번 전시작의 일부로 등장하기도 했고요.
재미 건축가로 제2회 광주비엔날레의 커미셔너인 박경과 결혼했다 헤어졌습니다. 그와 행복한 몇 년을 보냈고, 아들도 낳았죠. 돌이켜보면 그와 함께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그는 여전히 제가 아는 가장 지적이고 창조적인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와 함께 맨해튼에서 미술과 건축을 위한 대안 공간 ‘스토어프런트 포 아트 앤 아키텍처(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를 운영한 적도 있습니다.
당신같이 사회적·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 지망생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전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작품으로 표현할 순 없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떤 이슈를 작품으로 표현하려면 직접 경험하고 느껴봐야 합니다. 스튜디오 안에 머물면서 직관적으로 만든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곤 생각지 않아요. 작가는 몸소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전히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배우는 예술에 반대합니다. 예술가는 재능을 타고났고, 자연스레 무의식 세계를 작품으로 창조해낸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작품을 만들려면 그에 상응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제 굳은 신념입니다. 예술가는, 특히 젊은 예술가는 그런 성숙함을 추구해야 해요. 그러지 않다면 세상과 동떨어져 평범함에 안주할 위험이 있어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주1
<여자들만의 세상>(2009년)은 샤누시 파시푸르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53년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의 배후 조종으로 일어난 이란 쿠데타를 배경으로 네 여인의 운명을 그려낸다. 한 아름다운 과수원에서 네 여인은 자립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 위안을 얻으며 동료애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미국이 만들어낸 이란의 왜곡된 이미지에 도전하면서 이란 여성의 삶과 정치의 관계성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