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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houette Matters

FASHION

실루엣을 잘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트렌드에 가까워지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 2015년 봄과 여름을 지배할 실루엣에 대해 이야기한다.

1 Gucci 2 Louis Vuitton 3 Tom Ford 4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5 Prada

실루엣. 매달 여러 개의 패션 기사를 써 내려가며 수백 번도 썼을 법한 말이건만, 이 세 음절의 단어가 갖는 무게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옷의 전체적인 윤곽선을 지칭하는 단어로, 혹은 컬렉션의 전반적 컨셉을 설명하기 위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무심코 쓰고 읽었을 뿐.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인체의 곡선을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왜곡하는 실루엣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 시즌마다 컬렉션 전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반전시키는가 하면, 새롭게 유행할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니 말이다. 더 나아가 실루엣에는 비단 옷에 대한 미학적 관점뿐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까지 깃들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온몸을 구속하며 과장된 실루엣을 연출하던 코르셋과 버슬이 사라지고, 발목을 가리는 길이의 스커트가 종아리 위로 한층 짧아져 활동성을 강조한 것만 봐도 확인할 수 있을 듯.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에는 전쟁 중 궁핍한 삶과 획일적인 유니폼에 염증을 느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여성의 우아한 곡선을 살린 디올의 뉴룩이 등장했고, 1980년대에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해 남성복을 응용한 오버사이즈 피트의 재킷과 슈트가 유행했으니, 실루엣은 시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렇다면 2015년 S/S 시즌 현재의 실루엣은 어떠한가.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가 하면, 더욱 미래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내비치고, 과감하고 극단적인 취향을 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단편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우선 런웨이를 레트로 무드로 물들인 디자이너의 ‘실루엣 놀이’를 살펴보자. 루이 비통 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적절히 믹스한 듯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이를 위해 A라인으로 퍼지는 미니 드레스와 밑단으로 갈수록 통이 넓게 퍼지는 발목 길이의 벨보텀 팬츠, 디스코 룩을 재현한 아슬아슬한 실루엣의 브라톱을 내놓았다. 구찌 역시 1970년대 초반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는 이 컬렉션의 무드를 완벽하게 살리기 위해 라인과 실루엣을 정확히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녀의 말처럼 A라인으로 떨어지는 무릎 바로 위 길이의 미디스커트와 드레스, 과감하게 접어 올린 커프스가 특징인 로웨이스트의 와이드 팬츠, 낙낙한 기모노 소매의 톱 등은 치밀한 계산 아래 연출한 실루엣의 효과를 여실히 증명했다. 그 밖에 프라다는 직선적이고 견고한 실루엣의 코트로, 생 로랑은 헴라인이 짧은 퍼 재킷과 핫팬츠로, 톰 포드는 통이 넓은 플레어 팬츠로 1970년대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충족했다.

6 Balmain 7 Calvin Klein Collection 8 Dior 9 Bottega Veneta 10 Balenciaga

이들과 상이하게 디올의 라프 시몬스는 미래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모던함의 근간을 아주 먼 과거로 상정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개념을 결합한 실험적 디자인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이를테면 18세기 궁정 복식과 벨에포크 시대의 에드워디언 룩, 파일럿과 우주 비행사의 유니폼 등에서 가져온영감을 한데 아우르는 식. 이를 연출하기 위한 실루엣도 범상치않다. 허리 양쪽을 컷아웃한 슬림 피트의 톱에 양옆을 잔뜩 부풀린 파니에 스커트를 매치해 하나의 드레스를 만드는가 하면, 매끈한 A라인 프록코트는 과장되게 긴 실루엣이 특징이다. 압권은 우주 비행사를 연상시키는 화이트 컬러 점프슈트. 목부터 발목까지 일체형으로 길게 툭 떨어지는, 별다른 기교 없는 라인에 손등을 덮는 긴 소매와 보디라인을 확인할 수 없는 낙낙한 실루엣은 지금 바로 우주로 향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한편 발렌시아가의 알렉산더 왕은 엄격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브랜드 고유의 트라페즈 실루엣, 기둥 실루엣을 응용한 기하학적 라인을 강조했다. 바닥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트라페즈 코트, 롱 실루엣의 테일러 더스터 코트와 슬립 드레스, 허리 위에서 직선으로 잘려나간 구조적 디자인의 볼레로 재킷 등이 하우스의 동시대적 모던함에 힘을 실어준다.
그렇다면 극단으로 향하는 취향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은 어떨까. 우선 올리비에 루스텡의 발맹을 살펴볼 것. 관능미의 중요성을 복창하며 구조적 실루엣과 유연한 실루엣을 능수능란하게 오간 그는 가슴만 겨우 가린 한 뼘 너비의 브라톱에 가늘고긴 실루엣의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매치하는가 하면, 기하학적 격자무늬의 가죽 틀에 온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스루 패브릭을 덧대어 리얼웨이에서 응용하기엔 무리인 아슬아슬한 실루엣의 원피스를 만들어냈다.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는 댄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볼레로 톱과 드로즈를 매치한 과감한 실루엣의 투피스를 연출했고, 스윔웨어를 연상시키는, 다리를 훤히 노출한 일체형 이너웨어 위에 긴 카디건만 걸쳐 애‘ 슬레틱 룩’을 완성했다. 반면 셀린느와 캘빈 클라인은 가늘고 긴 실루엣의 코트, 원피스 등에 날렵한 라인이 살아 있는 퀼로트, 비스코스 스커트 등을 레이어링해 ‘롱 오버 롱(Long over Long)’ 실루엣을 연출했다. 이처럼 디자이너는 실루엣으로 시대를 읽고 패션의 흐름을 제안한다. 그러니 이번 시즌엔 무작정 컬러와 소재에만 집중하지 말 것. 실루엣을 현명하게 즐기는 것이야말로 동시대의 가장 트렌디한 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요건이다.

에디터 이혜미 (hm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