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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프리즈 서울 제2회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는 최고은이다. 오는 9월 아트 페어 신작을 선보일 그녀에게 작품을 마주하기 전 알아두면 좋을 것을 미리 물었다.

작업실이 넓고 쾌적합니다. 요새 젊은 작가님들은 이런 아파트형 공장에서 많이 작업하더라고요. 후암동 작업실은 정리한 건가요?후암동 작업실은 그대로 있어요. 곧 있을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일 작품의 규모가 크다 보니 단기로 빌린 거예요. 이곳 향동동에 별다른 연고는 없지만 익숙한 편이에요. 작업 재료를 다룰 수 있는 공장들이 경기도권에 있다 보니 오가며 자주 지나쳤거든요. 들어온 지 두 달 정도 됐는데, 꽤 만족스럽습니다. 후암동 작업실은 주거 지역에 있어 소음 등 신경 쓸 부분이 여럿 있는데, 이곳은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죠. 또 창밖의 아파트 풍경이 작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사용하고 버렸을 에어컨, 냉장고로 만든 작품들 말이죠.
작가님은 기성품을 분해하거나 절단해 새로운 체계로 조합하는 작업으로 알려졌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은 전시장에 냉장고 일부를 배치한 2016년 김종영미술관 개인전 였죠. 한데 작가님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초기에는 점토로도 작업한 것으로 압니다. 꽤 오래전 일입니다만, 기성품을 작업에 끌어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돌이켜보면 제 손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하나의 고유명사를 창조하는 작업 방식으로는 세계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자연스레 주변의 기성품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디자인이나 규격 등 기성품이 품은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이야기하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맥락은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의 조건, 소비 양태 같은 것들이고요. 하지만 2021년 P21 개인전 [Vivid Cuts]를 기점으로 선보이는 동파이프 작업은 성격이 조금 다르지 않나요? 이전 작업이 기성품의 재가공을 최소화해 ‘제시’했다면, 동파이프 작업은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냉장고나 에어컨은 대체로 직사각형이잖아요. 정적인 여운이 있지만 형태를 가지고 노는 데는 한계가 있죠. 벽에 튀어나온 보일러 배관에서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파이프 역시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기성품이지만, 속에서 뭔가가 움직인다는 특성이 변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벽 이면의 동파이프를 전시장 가운데에 두고, 아예 지붕에 올려 공간 자체를 좌대로 삼는 등 실험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선의 조형성 덕분에 작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르고 펼쳐내는 등 동파이프를 다루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른 재료와 같아요. 즉 의미는 다르지 않은 거죠.

[Point Counter Point]전에서 선보인 ‘화이트 홈 월’.

누군가는 작가님의 작품을 조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설치로 분류하더군요. 여러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님의 작업이 두 장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조각으로서 보여줄 때도, 설치로 제시할 때도 있어요. 앞서 말한 [Torso]전의 경우 동선상 김종영 작가님의 조각을 모두 감상하고 나서야 제 작업을 볼 수 있었는데요, 여기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보니 잘린 기성품을 신체 일부인 토르소처럼 여길 수도 있겠더라고요. 전시명과 작품명 모두 ‘토르소’라고 지은 이유입니다. 앞뒤 상황을 고려하면 이건 설치일 거예요. 결국 조각인지 설치인지는 장소성에 달린 셈이죠. 장르의 경계가 희미한 것은 제 작업의 취약점이자 가능성입니다.
그런 작가님의 작업을 곧 있을 프리즈 서울에서 만날 수 있죠.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서 ‘화이트 홈 월: 웰컴’과 ‘글로리아’ 신작 두 점을 공개한다고요.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고, 한편으로는 놀랐습니다. 올해 아티스트 어워드 주제인 ‘첨단 기술(advanced technologies)’이 제게 적합한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첨단 기술이라는 단어에서 인공지능(AI) 같은 비물질적인 것이 떠오르는 반면, 제 작업은 ‘기계’에 가깝게 느껴졌죠. 다만 이런 이미지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더군요. 몇 년 전 데이터 센터 화재 발생 당시 인터넷 서비스가 줄줄이 먹통이 된 것도 그렇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기술의 물질적 부분에 주목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두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됩니다. ‘화이트 홈 월: 웰컴’은 2018년 아트선재센터 그룹전 [Point Counter Point]에서 선보인 ‘화이트 홈 월’과 형태적으로 유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비슷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어요. 이번에는 생산 연도순으로 스탠딩 에어컨 커버를 나열합니다. 나열 규칙은 전시마다 다르지만, 모두 기성품에 남은 흔적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죠. 또 반원 형태로 행사장 입구 앞에 넓게 두를 생각인데, 많은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는 아트 페어의 특성에서 일식(eclipse)의 움직임을 떠올렸어요.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한 느낌도 주고요. 바로 옆 8m 길이 벽에 설치할 ‘글로리아’는 동파이프 작업으로 드레스 뒷자락이 펄럭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할 계획입니다. 동시에 벽을 관통한 동파이프의 모습은 다소 폭력적인 측면이 있죠. 편리함과 잔인함, 기술이 지닌 양면성 같달까요.
프리즈 서울을 찾는 이들이 두 작품에서 무엇을 얻어 갔으면 하나요? 제 작업은 서포터적 성격을 띱니다. 작품에 담은 내용 외에도 그것이 놓인 공간에 관해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요. 프리즈 서울은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서 오늘날 미술 시스템을 상징하죠. 이 아트 페어가 지닌 많은 의미를 두 작품을 통해 환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