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for Nature
더 이상 노마는 없지만 북유럽 퀴진은 여전히 자가발전 중이다. 지역 식자재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식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현대 북유럽 퀴진의 핵심.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3인의 셰프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위대한 자연의 미학을 찬미했다.

라스무스 코포에드
북유럽 자연의 경이로움
덴마크 태생의 라스무스 코포에드(Rasmus Kofoed)는 세계 최고의 셰프이자, 가장 창조적인 셰프 중 한 명이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그의 레스토랑 제라늄(Geranium)은 2016년 덴마크 최초로 미슐랭 별 3개를 받았으며, 올해도 이변 없이 영광의 별점을 지켜냈다. 2017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는 19위를 차지해 북유럽 레스토랑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사실 그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세계 요리 올림픽’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요리 대회, 보퀴즈 도르(Bocuse d’Or)에서 금메달(2011년), 은메달(2007년), 동메달(2005년)을 모두 수상한 인재 중의 인재니까.
라스무스 코포에드는 코펜하겐 콩겐스뉘토르(Kongens Nytorv)에 위치한 초특급 호텔 당글레테레(D’Angleterre)를 비롯해 벨기에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숄테스호프(Scholteshof)를 거쳤으며, 그 외에도 몇몇 일류 레스토랑에서 수석 셰프로 근무했다. 제라늄은 그의 첫 레스토랑이지만 오랜 기간 내공을 쌓은 그의 실력은 대중과 미식가, 까다로운 평론가의 입맛까지 금세 사로잡았다. 오픈 첫해인 2012년 미슐랭 별 하나를 받았고 2013년에 연이어 별 하나를 추가했다.
“지금의 저를 보면 신기하고 또 스스로 대견할 따름입니다. 어린 시절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TV도 없는 집이었으니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제가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된 건 TV나 레스토랑에서 접한 스타 셰프의 화려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남매의 맏이로 어머니의 식사 준비를 도우며 부엌에 드나들었는데 요리를 통해 농작물이 아름답고 먹을 수 있는 무언가로 변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죠. 특히 채식주의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수프를 끓이기 위해 야생 쐐기풀과 버섯을 따시던 모습을 기억해요. 순수한 자연의 재료를 이용하는 건 지금도 제가 종종 따라 하는 것이죠.”
그가 먹고 자란 식단은 철저히 허브와 채소가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그러한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지만 오늘날 제라늄에서 그가 요리하는 방식,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을 위하는 삶의 방식을 보면 자연주의 정신이 깊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라늄이라는 이름 또한 ‘초록 식물’이죠. 제라늄의 메뉴는 주로 채소와 계절 식물, 허브, 꽃 등으로 구성합니다. 고기는 그다지 내놓지 않죠. 우리는 좀 더 많은 양의 채소를 먹을 필요가 있어요. 반면, 고기 섭취량은 줄여야 합니다.” 셰프의 철학은 미래의 후손과 환경까지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식탁에 근거한다. 이를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 생물역학적 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와 함께 일한다. “땅에서 무언가를 가져갔다면 그 땅에 또 다른 무언가를 되돌려줘야 하죠. 그래서 다시 작물이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1 옐로 비트, 각종 씨앗과 요구르트 주스, 비치 플랜트 오일. 2 야생 허브와 꽃을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구이.
라스무스 코포에드의 요리는 지역과 계절성에 기반을 둔 신선한 식자재를 사용하는 북유럽식 요리로, 담백하고 현대적이다. 제라늄은 코펜하겐 중심부의 공원 파엘레드파르켄(Faelledparken)에 있는 건물 8층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수관(tree crowns)을 통해 계절의 추이를 느낄 수 있고 도시의 녹색 구리 지붕이 흘깃 내려다보이며, 멀리 외레순(Øresund)에 자리한 풍차도 조망할 수 있다. “제라늄의 메뉴는 이곳을 찾은 손님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나 있는 창문을 통해 공원을 바라보았을 때 눈에 띄는 풍경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름의 청량함과 푸른 기운, 가을의 노란 태양빛과 붉은 단풍잎, 때론 그것이 겨울의 헐벗은 나뭇가지가 되기도 하죠.” 자연은 그가 식자재를 채집하는 보고인 동시에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창밖을 바라보다 공원의 나무가 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내가 나무를 먹는다면, 그 나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맛이 날까 하고요. 그다음 날 바로 흑맥주와 말린 자두를 곁들인 훈제 헤비 크림으로 만든 디저트 메뉴를 고안해냈어요. 잎이 달리지 않은 나무 형상을 띤 요리로 ‘네이키드 트리(Naked Tree)’라고 이름 붙였죠. 자연은 늘 제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자연의 많은 부분, 색감과 형태, 그 속의 감정까지 모두 영감을 주죠. 애써 무엇을 꼭 찾아야겠다고 강박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저 세상에 나 자신을 열어두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감이 찾아올 거예요. 저뿐 아니라 누구라도 느낄 수 있죠.”
제라늄의 테이스팅 메뉴는 ‘제라늄의 우주(The Geranium Universe)’라는 이름으로 17~20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하나같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띠며 스칸디나비안 유기농 농작물의 풍미가 입안에서 폭발하며 탄성을 자아낸다. 그중 헤이크(hake, 대구과 생선) 케이크는 네이키드 트리와 더불어 제라늄을 대표하는 요리. 소금에 절인 헤이크 속살에 파슬리 줄기와 핀란드산 캐비아를 올리고 버터밀크를 뿌려 먹는 요리로, 오징어 먹물로 색을 낸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칩을 페이크 셸(fake shell)처럼 곁들인다. 제라늄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샴페인 컬렉션을 갖춘 자체 셀러를 보유했을 정도로 와인 페어링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더불어 알코올에 약한 사람이나 여성을 위한 주스 페어링도 마련했다. 다채로운 과채 주스에 담긴 자연의 진실성을 경험하는 일도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라스무스 코포에드와 자연의 연결 고리는 레스토랑 전체에 눈에 띄게 흩뿌려져 있다. 제라늄에서의 식사는 북유럽의 자연과 환경을 탐험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밝고 우아한 실내는 현대적이며 간결한 노르딕 디자인의 표본. 그는 항상 핀라이트를 밝힌 오픈 주방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고객이 누가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며 셰프 역시 누가 내 음식을 먹는지, 음식을 먹을 때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한 음식 평론가는 라스무스 코포에드의 요리에 대해 “최고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그의 음식은 매우 정교하고 우아하며 모든 감각을 위한 미식의 잔치”라고 묘사했다. “감히 완벽한 식사 경험이라 부를 만하다”고 덧붙였다. 제라늄의 공동 소유자이자 소믈리에인 쇠렌 레데트(Søren Ledet)가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하늘이 내려준 자연에 인간의 노력과 열정을 더해 빚어낸 음식, 여기에 정갈한 공간과 정성 어린 서비스, 끝까지 놓치지 않는 디테일을 더해 제라늄을 완성한다.

GERANIUM
ADD Per Henrik Lings Alle 4, 2100 København Ø, Denmark
TEL +45 6996 0020
WEBwww.geranium.dk

안토 비우르(왼쪽), 야코브 홀름스트룀(오른쪽).
스톡홀름의 미식 혁명가
풍부한 문화적 역사를 지녔으며, 음악과 기술, 디자인 산업 분야에서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 스톡홀름. 스웨덴의 수도인 이 작은 도시가 노마가 떠난 북유럽 미식의 수도를 노리며 부상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레스토랑은 2011년에 처음 등장해 오픈한 지 1년 6개월 만에 미슐랭 별을 받으며 미식가의 핫 스폿으로 등극한 가스트롤로기크(Gastrologik)다. 요리사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명적으로 주방에 들어선 야코브 홀름스트룀(Jacob Holmstrom)과 피에르 가니에르, 조엘 로부숑에서 수련한 페이스트리 셰프 안톤 비우르(Anton Bjuhr) 셰프는 감성이 기능에 우선하는 북유럽 디자인을 접시로 옮겨오는 예술가와 다름없다. 그들의 요리는 전형적인 스웨덴식이나 스칸디나비아식이 아니다. 본토의 농작물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아름답게 조합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정원의 자연적 리듬을 따르기 때문에 이곳의 메뉴는 그날그날 달라진다. “매일 일종의 서프라이즈 쇼가 펼쳐지는 셈이죠. 최고의 식자재를 찾기 위해 애쓰는데 이때 ‘최고’의 기준은 관습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양파도 송로버섯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품질이 뛰어나다면 말이죠.” 야코브 홀름스트룀의 말이다. 가스트롤로기크는 스톡홀름의 외곽 유르고르덴(Djurgarden)섬의 작은 농장 로센달스 트레드고르드(Rosendals Tradgard)와 탄탄한 관계를 구축했다. 생물역학 농법을 적용한 이 농장에서 채소와 허브, 꽃을 제공받는다. 올해는 레스토랑의 루프톱 테라스에 온실을 짓고 좀 더 가까운 채집을 시작했다.

3 정원의 꽃으로 장식한 야생 넙치 요리. 4 달고 시고 짠 3가지 맛의 칩스와 루바브를 곁들인 안젤리카 타르트.
가스트롤로기크의 공간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벽은 모두 흰색이고 테이블은 기능적이며 구리 램프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 간결함의 미학은 메뉴판에서도 이어진다. 3코스 혹은 6코스 2개 메뉴가 있다는 것을 소개할 뿐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이 미식의 신전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을지 예측할 순 없지만 장난기 넘치는 멋지고 기발한 방법으로 그들만의 독창적인 맛과 식감을 선사할 것을 믿어 의심치 말자. 그것은 해초와 홍합을 곁들인 베스테르슬렛스(Vasterslats)산 젖먹이 돼지 요리일 수도, 야생 꽃 수프와 자연산 가자미 요리일 수도, 가문비나뭇잎과 오이를 곁들인 그레베스타드(Grebbestad)산 굴 요리 혹은 송로버섯, 골파꽃과 함께한 발효 감자 요리일 수도 있다. 모든 요리는 각 재료의 단순한 합보다 훨씬 훌륭하며 경외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디저트 역시 인상적이다. 꽃가루와 밀랍을 혼합한 전통 꿀과 얼린 버터밀크, 사과를 곁들인 스펠트밀로 만든 포리지, 꿀벌의 화분에 보드카를 첨가해 얼린 프로폴리스 캔디도 맛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스톡홀름에서 단 하루의 저녁식사만 할 수 있고, 두말할 것 없이 멋진 저녁을 보내고 싶다면 가스트롤로기크로 가라. 물론 부지런한 예약은 필수다.

GASTROLOGIK
ADD Artillerigatan 14, 11451 Stockholm, Sweden
TEL +46 8 662 30 60
WEBwww.gastrologik.se

크리스티안 바우만
포스트 노마의 젊은 파워
크리스티안 바우만(Kristian Baumann), 아직 서른 살밖에 되지 않은 이 셰프를 주목하는 이유는 108의 수석 주방장이자 공동 운영자이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스하븐 스트란스하더 108번지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이 바로 그와 레네 레제피(Rene Redzepi)의 제휴로 탄생한 노마의 스핀오프 버전이다. 2016년 7월 오픈하자마자 그해 연말에 미슐랭 별 하나를 거머쥔 108은 크리스티안 바우만을 단숨에 스타 셰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외모가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크리스티안 바우만은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4개월에 덴마크 부모에게 입양되어 코펜하겐 외곽 간뢰세(Ganløse)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제 뿌리가 한국인이라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만날 수 있는 모임에 데려가셨어요. 쌀, 김치, 비빔밥 등을 그곳에서 접했죠. 하지만 일요일엔 늘 할머니 댁에 가서 덴마크 전통 음식인 구운 돼지고기와 삶은 감자, 그레이비를 먹었습니다.” 그는 지난 10년간 덴마크 레스토랑업계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발전을 기반으로 자신이 자란 환경과 열아홉 살에 노마의 견습생으로 시작해 북유럽과 프랑스의 여러 레스토랑에서 수학한 경력,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쌓아 108을 탄생시켰다. “108을 통해 어번 레스토랑의 새로운 본질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는 채집, 발효, 농부와의 긴밀한 협업이라는 3가지 원칙을 따르죠. 3종의 시소와 5종의 오이, 11종의 돼지감자와 13종의 아티초크를 포함해 190여 가지 작물을 재배하는 자체 농장을 보유하고 있어요. 매일 아침 농장에 들러 그날 사용할 식자재를 직접 수확합니다.”

염장 구스베리와 해초, 전나무 오일을 곁들인 고등어 요리.
108을 통해 그는 신선하고 세련된 동시에 편안해 보이는 멋진 메뉴를 소개한다. 발효, 절임, 훈제와 같은 북유럽의 고전적 조리법을 아주 기술적으로 구사하면서. 단순해 보이는 고등어 요리라 해도 맛의 차원이 다르다. 고등어를 얇게 저며 소나무 소금에 절인 후 셀러리 식초로 씻어내고 염장 구스베리와 약간의 해초, 전나무 오일과 함께 제공한다. 가벼운 신맛과 함께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다양한 맛의 층이 겹겹이 펼쳐지는 요리다. 각종 향신채를 넣고 삶은 소꼬리를 도넛 모양으로 담고 발효시킨 보리에 글레이즈한 솔잎으로 장식한 요리는 숲의 청량함과 달콤함, 바삭한 식감에 이어 진한 고기 풍미에 한 방 크게 얻어맞는 듯한 기분 좋은 충격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귀꼬리구이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정제 버터를 발라 훈연한 아귀에 각각 스톡, 버섯과 해초, 미소 된장을 조려 만든 4가지 소스를 끼얹으며 35~40분간 그릴에 구워내죠. 많은 노동이 필요하지만 감칠맛이 정말 끝내줍니다. 새로 개발한 블루베리 디저트도 경이로워요. 블루베리를 자작나무 시럽에 가볍게 재운 후 민트꽃, 아니스꽃, 옥수수꽃을 올리고 소나무 소금으로 간하죠. 그다음 구운 해초와 에일청을 넣어 만든 더블 크림을 두 국자 가득 얹어 냅니다.”
가격과 분위기, 이용 가능성 면에서 108은 노마보다 더 다가가기 쉽다. 항구의 창고를 개조한 인더스트리얼풍 공간 한편에 위치한 카페 더 코르네르(The Corner)에서는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비롯해 점심에는 도시락, 저녁에는 와인을 즐길 수 있다. 108에서는 10개의 단품 메뉴와 3개의 셰어링 메뉴를 선보인다. 분명 노마와는 다르지만 노마의 DNA를 이어받은 이곳에서 북유럽 미식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았지만 세심한, 북유럽 특유의 따뜻한 환대와 함께.

108
ADD Strandgade 108, 1401 København K, Denmark
TEL +45 3296 3292
WEBhttps://108.dk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글 손희란(미식 칼럼니스트)